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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독박 몰라주는 남편…산모 마음은 휑해집니다

 경기도 성남시에 사는 주부 박모(34)씨는 결혼 5년 만인 지난해에 딸을 출산했다. 고대하던 2세였지만 출산 뒤 박씨는 울적한 기분에 시달렸다. 아이를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잘 모르는 상황에서 갑작스레 ‘엄마 노릇’을 떠맡았다는 생각에 불안하기도 했다. 박씨는 “2주간 산후조리원에 있다가 나온 뒤부터 혼자 아이를 돌봐야 했는데 모든 게 서툴렀다. 나 때문에 애가 잘못되는 건 아닐까 겁이 났다”고 말했다. 박씨의 남편은 직장 생활로 바빴고, 친정은 다른 지역에 있어 도움 받을 곳도 마땅치 않았다. 24시간 아이를 보는 것은 오롯이 박씨의 몫이었다. 그는 “잠도 자지 않고 수시로 빽빽 울어대는 아이에게 화가 치밀어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그런 뒤엔 ‘엄마인 내가 왜 이럴까’ 싶고, 애한테 미안해 눈물을 쏟곤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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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목요일] 출산의 그늘, 산후 우울증

육아 부담으로 우울한 산모에게
“유난 떨지 마, 당신만 애 키워?”

산모 91%, 출산 직후 우울감 느껴
33% 자살 충동, 2%는 실제 시도

 한국의 산모 10명 중 9명은 박씨처럼 출산 직후 우울함을 느낀다.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지난달 10~15일 출산을 경험한 국내 20~40세 여성 1106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90.5%가 산후에 우울한 기분을 느꼈다고 답했다. 33%는 그로 인해 자살 충동을 느껴봤고 2%는 실제로 자살 시도를 해봤다고 답했다.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출산 후 6개월은 여성에게 정서적인 문제가 자주 발생하는 시기다. 산모의 85~90%는 출산 뒤 2주 이내에 집중력 장애, 눈물 흘림, 불면증이 동반되는 ‘산후 우울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엄마라는 새로운 역할에 적응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여성호르몬의 급격한 변화와 역할 변화에 따른 부담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일시적인 증세로 출산 2주 뒤엔 대부분 사라진다.

 하지만 이러한 증상이 그 이상 지속된다면 치료가 필요한 ‘산후 우울증’으로 봐야 한다. 전체 산모의 12~13%가 여기에 해당한다. 극소수(0.1%)는 더 심각한 ‘산후 정신증’으로 진행하기도 한다. 영아 살해나 자살 등 극단적인 행동을 저지르는 이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본인과 가족이 산후 우울증 발생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이 다양한데다 환자 자신이 드러내기를 부끄러워해서다. 김모(32·여)씨는 2013년 출산 3개월 만에 심한 산후 우울증을 앓았다. 김씨는 산후 우울증의 대표적 증상인 의욕 저하와 무기력증을 겪었다. 집안일과 아이 돌보기를 버거워하는 김씨에게 남편은 “왜 이렇게 무책임하고 게으르냐”고 면박만 줬다. 김씨는 6개월 만에 병원에 입원했다. 두 차례 자살 시도를 한 뒤였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미국·영국 등에서는 산후 우울증 선별 검사와 교육을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조기 치료를 지원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국내에선 환자 수 등의 실태조차 파악이 안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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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3년 아이를 낳은 여성은 42만3946명이다. 같은 해 산후 우울증으로 병원 진료를 받은 산모는 0.96%(4069명)에 그쳤다. 미국에서 매년 산모 10% 이상(약 50만 명)이 산후 우울증으로 치료받는 것과 대조적이다. 대한정신건강재단은 지난 4일 “한 해 평균 4만 명의 산모가 산후 우울증을 앓는다”는 분석을 내놨다. 백종우(정신건강의학과) 경희대 의대 교수는 “치료가 필요한 4만 명 중 겨우 10%(4000명)만 병원을 찾아 나머지 환자들은 사실상 방치돼 있다”고 지적했다. 백 교수는 “자기에게 문제가 있는지도 모른 채 병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여성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부담을 지우는 사회·가족 구조가 엄마의 우울을 부추긴다고 지적한다. 강영호(의료관리학연구소장) 서울대 의대 교수는 “우리나라에선 엄마에게만 양육 부담을 전가하는 ‘독박육아’가 흔하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의 여성에게 모성을 느껴야 한다고 강요하는 분위기는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엄마의 산후 우울증은 아이에게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2005년 미국에서 4800명의 신생아를 대상으로 3년간 진행된 추적 연구에 따르면 우울한 엄마의 아이는 그렇지 않은 엄마의 아이보다 건강 상태가 나빴다. 우울한 엄마의 아이는 45%가 응급실에서 한 번 이상 처치를 받았고 23%는 입원했다. 예방 접종률도 떨어졌다. 엄마가 그렇지 않은 경우 아이의 34%가 응급실 도움을 받았고 17%가 입원을 경험했다. 소아정신과 전문의인 신의진(새누리당) 의원은 “아기의 발달 단계에서 생후 2~3년 이 가장 중요하다. 산후 우울증을 겪는 엄마는 아이의 건강뿐 아니라 두뇌 발달도 해치는데 이런 영향은 아이의 평생을 좌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희대 백 교수는 “엄마가 산후 우울증을 오래, 심하게 겪을수록 아이의 고등학교 입시 성적이 떨어진다는 연구도 있다”고 설명했다.

 산후 우울증은 치료가 어렵지 않은 병이다. 삼성서울병원 전 교수는 “상담을 통해 자신이 힘들다는 사실을 주변에 알리기만 해도 치유 효과가 있다. 조기에 발견해 약물치료를 받으면 70~80%는 몇 달 내에 완치된다”고 설명했다. 경희대 백 교수는 ?우울해하는 산모에게 ?너만 애 키우느냐, 유난 떨지 마라?는 식으로 몰아붙이는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화를 키울 수 있으니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 의대 강 교수는 “무엇보다 가족의 관심과 육아 지원이 산모의 정신 건강에 보탬이 된다. 특히 남편은 ‘아이는 부부가 함께 기른다’는 마음가짐으로 양육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주일에 단 하루라도 남편 등 다른 가족이 아이를 대신 맡아 혼자 쉴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고, 산후 우울증이 의심되면 병원을 찾도록 권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멜라니 블로커-스톡스 마더스 액트(Melanie Blocker-Stokes Mothers Act)
2001년 딸을 낳은 지 3개월 만에 산후 우울증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 여성의 이름을 딴 미국의 법. 국가가 산후 우울증 조기 발견·치료를 위한 검사와 연구를 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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