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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주먹으로 마음을 살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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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
논설위원

9일자 중앙일보 1면에 실린 미국 해군의 차세대 구축함 줌월트함의 위용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길이가 182.9m에 배수량이 1만4564t이나 되는 이 거대한 군함이 상대방 레이더에는 작은 낚싯배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첨단기술을 적용한 스텔스함이기 때문이다. 이를 바탕으로 적국 해안에 은밀하게 접근해 심장부 깊숙이 미사일을 정밀 타격할 수 있다. 1척에 35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이런 군함을 마련할 나라는 지구상에 미국뿐이다. 10척이나 되는 핵 항공모함의 가공할 위력에다 이 같은 스텔스 구축함까지 갖춘 미국의 군사력에 무모하게 대응할 국가는 없을 것이다. 미국은 어느 나라도 범접하기 힘든 막강한 주먹을 바탕으로 한 세기 가까이 세계를 호령하고 있다.

트럼프 막말은 이슬람권 분노·원한만 더할 뿐
미, 중동서 힘보다 소프트파워 확산 주력해야


 하지만 이런 미국도 테러와의 전쟁에선 맥을 추지 못한다. 2001년 9·11 테러로 시작된 전쟁은 올해로 15년째지만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아프가니스탄의 카불과 이라크의 바그다드는 손쉽게 점령했으나 전쟁을 끝내진 못했다. 오히려 전장이 갈수록 확대돼 급기야 지난달 13일 프랑스 파리의 카페·공연장·축구장은 물론 지난 2일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버너디노의 파티장까지 범위를 넓혔다.

 이 전쟁은 돈 먹는 하마다. 미국 브라운대의 왓슨 국제문제연구소의 추정에 따르면 미국은 2001년부터 2020년까지 4조7000억~5조4450억 달러를 테러와의 전쟁에 쏟아부었거나 앞으로 퍼부을 예정이다. 실제 투입한 군사비에 군인 복지비 같은 사회적 비용, 관련 국채 이자까지 포함한 금액이다. 희생자는 갈수록 늘고 있다. 이라크에선 전쟁과 내란, 보복공격 등으로 최소 6만3570명에서 최대 112만4000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최소 1만960명에서 최대 24만9000명이 숨졌다. 이웃 파키스탄에선 1400~2300명이 드론 공격 등으로 죽었다. 미국도 6600명 이상의 미군과 3000명 이상의 9·11 희생자를 포함한 96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그야말로 대량학살의 시대다.

 최근 중동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때문에 테러와의 전쟁 목록에 새롭게 이름을 올린 시리아 내전에서도 죽음은 흔하다. 시리아인권관측소에 따르면 지난 10월까지 25만~34만 명이 숨졌으며 760만 명 이상이 집을 잃었고 400만 명 이상이 국외로 탈출해 난민이 됐다. 시리아 인구가 1700만 정도임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전 국민이 생지옥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이런 지옥에다 프랑스·영국·러시아까지 나서 미사일 몇 발, 폭탄 몇 개를 더 떨어뜨린다고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테러리즘은 적이 아니고 하나의 전술”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이 싸워야 할 대상은 테러라는 전술이 아닌, 극단주의라는 나쁜 생각일 것이다. IS나 알카에다 같은 극단주의 세력은 증오와 원한을 먹고산다. 서구는 적이므로 서구인은 민간인 구호요원을 포함한 누구나 죽여도 된다고 선동한다. 문제는 이 같은 증오와 원한의 발언이 민주주의 국가라는 미국에서 아무렇지 않게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공화당의 유력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도널드 트럼프는 “무슬림(이슬람신자)의 미국 입국을 막아야 한다”고 막말을 하면서 세계에 충격을 줬다. 모든 무슬림을 잠재적인 적으로 돌리는 이런 발언은 미국을 만든 민주주의·인권·합리라는 가치를 의심하게 한다. 벌써 중동·이슬람 국가 곳곳에서는 “그게 미국의 본심일 것”이라는 비아냥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이 이슬람과의 싸움이 아니라 극단주의와의 가치 투쟁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또 다른 극단주의 성향의 막말 정치인을 내부 정화하는 용기를 보여야 한다. 그래야 테러와의 전쟁에서 이길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이 전쟁에 들이는 전비의 10분의 1, 아니 100분의 1이라도 인도주의적 구호와 중동·이슬람 주민이 먹고살 수단을 마련하는 데 투입하는 정책 변경이 필수적이다. 마음을 사려면 주먹이 아닌 사람에 대한 따뜻한 배려가 필요하다. 군사력이 아닌 소프트파워를 동원해야 하는 이유다.

채인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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