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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과 백, 꿈과 현실 사이 그곳에 그림이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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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이병복씨가 전시장 한쪽에 권옥연 화백이 생전에 그림 그리던 환경을 되살렸다. 아무에게도 안 보여주던 작업실은 화구와 자료 뒤범벅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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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쪽부터 ‘부인 초상’(1951년 작), ‘무제’(연도미상), ‘기도’(1997년 작).

회색은 중간자(中間子) 색이다. 검은색과 흰색 사이에서 흔들리는 침잠과 침묵의 색이다. 튀지 않는 세련, 은근한 격조,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으려는 고집과 독자적 취향이 배어있는 색이다. 오방색 선연한 한국미술에서 회색은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색이었다. 서양화가 권옥연(1923~2011)은 감히 회색조 화면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삼았다. 60여 년에 걸친 작품생활 동안 그 어떤 사조나 단체에 속하지 않은 채 ‘권옥연 표’ 중성색을 견지한 그는 희귀한 모더니스트라 할 수 있다.

권옥연 화백 사후 4년 만에 회고전

중성색인 회색조 독특한 화풍
‘부인 초상’등 50여 점 한자리에
연극인 아내, 생전의 화실 재현

 11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리는 ‘권옥연 회고전’은 화가의 사후 4년 만에 열리는 첫 대규모 개인전이다. 1951년 작인 ‘부인 초상’부터 97년 작 ‘기도’까지 50여 점이 나와 작가의 고독한 내면을 재음미해 볼 수 있다. 고인의 예술적 반려로서 프랑스 파리 유학을 감행했던 연극인 이병복(88)씨는 “그이를 한국의 피카소로 만들겠다고 뛰던 젊은 날이 그립다”고 했다. 전시장에 남편 생전의 화실을 재현한 이씨는 “남에게 절대 안 보여주고 홀로 고투하던 그 쓰레기장 같던 작업실”을 추억했다.

 “그이 호가 무의자(無衣子)였어요. 옷을 입지 않은 벌거숭이, 태어난 대로 산다는 뜻이죠. 저더러 맨날 그래요. ‘여보, 나는 영원히 다섯 살이야.’ 서로 자존심이 땡땡해서 ‘그것도 그림이야’ ‘그것도 연극이야’ 서로 질투하고 미워했지만 그는 자신의 에고(자아·自我)를 온전히 그림에 바친 사람이에요.”

 권옥연의 화면은 수십 점 다른 그림과 섞어놔도 딱 ‘권옥연 꺼’라고 짚어낼 수 있을 만큼 체취가 독특하다. 작가의 말마따나 “그 사람의 시요 그 사람의 노래”를 부르기에 “섬뜩할 정도의 개성”을 풍긴다. 운명적으로 타고난 권옥연 그림의 톤은 몽환적인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옛것의 아스라함이다. 선배 김병기 화백이 지적했듯 “서구 전통적 기법과 초현실적 환상을 넘나들고 있고, 거기서 얻어진 화면은 기질적 낭만과 정서로 가득”하다.

 그가 고택(古宅) 아홉 채를 모아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에 자신의 호를 따 세운 ‘무의자 박물관’은 작가의 작품세계가 회귀하려던 원형을 보여준다. 오래 묵혀 발효하고 뭉그러진 색과 형태에 자신의 로맨티시즘을 뒤섞어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현실 저 너머의 세계를 그려냈다. 서구 전위미술운동을 이끌던 앙드레 브르통이 ‘동양적 초현실주의’라 불렀다는 전설이 여기 있다.

 전시는 내년 1월 24일까지. 11일 오후 5시에 이병복씨가 이끄는 연극인들이 고인을 위한 ‘씻김굿’ 등 퍼포먼스를 벌인다. 02-720-1020.

글·사진=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권옥연=한국 추상미술 1세대. 1923년 함경남도 함흥 권진사댁 5대 독자로 태어났다. 경성 제2고등보통학교(경복중고) 미술부에서 일본인 미술교사 사토 구니오(佐藤九二男)의 지도를 받고 42년 도쿄 제국미술학교 서양화과에 들어갔다. 57년 파리 ‘아카데미 뒤 페’에 유학, 다양한 작품 활동을 펼쳤다. 80년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국립현대미술관 ‘2001 올해의 작가’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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