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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유 “회사 적자 나 경영 복귀, 사이비 종교 교주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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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유 김영사 회장은 “이번 일로 국정감사에도 출석하고 공부를 많이 했다”며 “박은주 전 대표가 그동안 좋은 이미지를 잘 쌓아왔는데 왜 스스로 무너뜨리는지 안타깝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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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주

“김영사가 사이비 종교집단처럼 비춰지고 있어 저자 섭외에 어려움을 겪는 등 타격이 크다. 회사의 명예를 회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박은주 전 대표 폭로 그 후 5개월
그간 저자 섭외 어려움 등 타격 커
검찰서 배임·횡령 등 ‘혐의 없음’
박 전 대표 13년간 머물던 ‘법당’
『금강경』 공부하는 모임 장소일 뿐

 김강유(68) 김영사 대표이사 회장이 지난해 5월 박은주(58) 대표 사임 후 계속되고 있는 ‘김영사 사태’에 대해 처음 입을 열었다. 박 전 대표는 지난 7월 김 회장을 350억원대 배임·횡령·사기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고, 검찰은 이에 대해 지난달 24일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지난달 30일 서울 가회동 김영사 사옥에서 만난 김 회장은 “진흙탕 싸움으로 비칠까봐 그동안 발언을 자제해 왔지만, 저자나 관계사들이 김영사를 ‘이상한 회사’로 보는 등 오해가 많아 인터뷰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1976년 김영사(당시 이름 ‘정한사’)를 설립한 창업주이자 최대 주주지만 그동안 베일에 싸인 인물이었다. 89년 당시 32세의 편집장이던 박은주씨를 대표이사로 임명한 후 불교 수행에만 전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6월 다시 일선으로 복귀해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김 회장은 인터뷰에서 “매일 출근은 하지 않았지만 회사의 주요 사항을 수시로 보고 받아 결정했고, 도서 기획에도 직접 참여했다”며 “박은주 전 대표의 기획으로 알려진 많은 베스트셀러들이 사실은 내 아이디어거나 지인들의 도움으로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 배임·횡령·사기 혐의에 대해 검찰에서 ‘혐의 없음’ 결정을 내렸는데.

 “김영사에서 내게 돈을 지급한 사실은 맞지만, 경영 관리와 기획 등의 업무를 하며 급여로 받은 것이니 횡령이 아니라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형님이 대표로 있는 한국리더십센터(KLC)에 돈을 빌려주거나 연대 보증을 선 것도 사내 이사회 결의 등 내부 절차를 거쳐 경영상의 판단에 따라 이뤄진 것일 뿐, 개인적인 이해관계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박은주 전 대표가 2008년 말부터 매달 1000만원씩 내 통장으로 입금을 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경기도 용인에 있는 『금강경』 공부모임인 ‘법당’에 ‘보시(布施)’ 명목으로 보내겠다고 한 것이지, 내가 요구한 게 아니다. 당시 박 전 대표의 연봉은 8억원이었고, 난 8000만원 정도 받았다. 돈을 갈취하려 했다면 더 쉽게 내 연봉을 올리는 방법을 쓰지 않았겠나.”

 - 89년 대표이사 자리를 물려준 후 회사 업무에선 손을 뗀 게 아닌가.

 “수행을 위해 지방에 내려가 있던 몇 년을 제외하면 수시로 보고를 받고 중대사를 결정했다. 에릭 시걸의 『닥터스』의 경우, 작가의 전작 『러브스토리』를 관심있게 보고 박 전 대표에게 번역·출간을 지시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에세이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는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떠난 김 전 대통령을 박 전 대표가 무작정 찾아가 성사시켰다고 알려져있다. 사실은 내가 아이디어를 떠올려 고등학교 은사였던 김용운 전 한양대 교수를 통해 김 대통령에게 의사를 전달했다.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의 밀리언셀러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역시 박 전 대표가 기획한 것이 아니라 대우 측에서 먼저 책을 내고 싶다고 김영사에 연락을 해 온 것이다. ‘기획의 여왕’이라는 신화는 과장됐다.”

 - 경영에 참여할 거면서 왜 대표이사 자리를 맡겼는지.

 “경영을 하려면 사람도 만나고, 술도 마셔야 하는데 내가 외향적인 성격이 아니다. 그래서 열심히 하고 재주도 있는 박 전 대표에게 맡긴 것이다.”

 - 경영일선으로 복귀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내가 돌아와 문제가 불거진 게 아니라 문제가 생겨 돌아온 것이다. 김영사가 25년 간 꾸준히 흑자였는데 2012년과 2013년 연이어 적자가 났다. 원인을 조사해보라 지시했고, 사내 감사 과정에서 박 전 대표의 비리가 드러났다. 개인 부동산 관리에 회사 돈을 쓰고, 김영사에 마케팅 조직이 있는데도 자신이 관여해 세운 마케팅 회사와 계약을 맺어 수수료를 챙기는 등 여러 방식이 동원됐다. 그 액수가 200억원 정도 다. 문제를 추궁하자 본인도 인정했고, 책임 지는 의미에서 자신의 명의로 돼 있던 김영사 가회동 사옥과 회사 주식, 퇴직금을 포기하기로 한 것이다. 합의서에 직접 서명했고 공증도 받았다.”(박은주 전 대표는 고의적으로 회사 자금을 빼돌리거나 개인적으로 유용한 일이 없으며, 합의서 서명은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

 - 박 전 대표가 ‘법당’에 20년 간 머물며 전 재산을 바친 건 사실인가.

 “법당은 내가 거주하는 집의 가장 큰 방이고 이 방을 수행 장소로 쓴다. 서울대 의과대학 여학생 두 명이 거주하며 수련을 하고 있었는데 85년쯤 박 전 대표가 자신도 수련을 하고 싶다고 해 머물게 했다. 박 전 대표가 머문 기간은 유학기간 등을 빼면 13년 정도다. 전 재산을 보시했는지는 내가 돈 관리를 직접 하지 않아 정확히 모른다. 그랬다 해도 본인 스스로 결정한 일이다.”

 - 법당에서 ‘교주(敎主)’ 역할을 했다는데.

 “『금강경』 공부는 전통 불교의 수행법이다. 백성욱 박사(전 동국대 총장)를 스승으로 모시던 사람들이 모여 『금강경』을 공부하는 모임을 만들었고, 이를 지도한 것뿐이다. 요즘 참여하는 사람은 7~8명이고, 대부분 60대 이상이다. 신도 8명인 사이비 종교라니 말이 되는가. 불교는 내 개인적인 믿음일 뿐이며 회사와는 관련이 없다.” (김영사 전 직원은 “아침 조회에서 ‘김영사 사람이 알고 마음에 새겨 실행할 일’이라는 『명심문』을 낭송하거나 단체로 체조 등을 하기도 했다. 직접적인 교리 공부나 보시 압박은 없었다”고 했다.)

 - 박 전 대표와는 어떤 관계였나.

 “충성심도 있고 카리스마도 있었다. 회사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는 좋은 콤비였 다.”

 김영사는 조만간 주주총회를 거쳐 박 전 대표에 대한 고소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김 회장의 주장에 대한 의견을 듣기 위해 박 전 대표에게 수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박 전 대표와 함께 김 회장을 고소 했던 김형균 출판사 동쪽나라 대표는 “검찰의 불기소 결정에 대한 충격이 크다. 자료를 보완해 상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글=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영사=김강유 회장이 1976년 창업. 94년 주식회사로 법인 전환. 현재까지 인문·문학·경제경영·교양과학·철학·아동 등의 분야에서 3300여 종의 책 발간. 89년 펴낸 김우중 회장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가 출간 6개월 만에 100만 부 판매, 국내 최초 단행본 밀리언셀러 기록. 이후 『닥터스(1990),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1994),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1996), 『새 먼나라 이웃나라』(1998), 『아웃라이어』(2009), 『정의란 무엇인가』(2010) 등 연이어 대형 베스트셀러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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