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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광장의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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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눈보라가 치는 날이 잦아진 걸 보니 겨울이 오긴 왔나 보다. 계절 바뀐 줄 모르던 플라타나스 잎사귀들이 눈의 일격을 맞고 추락했다. 따뜻했던 가을 날씨 탓도 있으려니와 자동차 매연, 행인들의 온기, 건물이 내뿜는 온풍이 가로수의 착각을 도왔을 것이다. 안 그랬으면 일찌감치 광합성 작용을 멈추고 떨켜층을 만들었을 것을, 그리하여 바람 속에 겨울 감촉이 조금만 포착됐어도 정겹던 나뭇잎과 미련 없이 작별했을 텐데.

 징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시민정치에 한파가 몰아치리라는 예감, 그 한파가 자기검열의 촉수를 일깨워 실어증이나 가위눌림을 자주 일으킬 거라는 두려움 말이다. 정권 초기 군 장성, 율사, 강성 관료들로 장벽을 둘러칠 때만 해도 무너진 국가 기강을 바로잡는 것이려니 했다. ‘법치주의’가 조성하는 정당한 아우라에 이의를 제기할 민주시민은 없다. 그런데 그 법치가 혹시 범부(凡夫)에게 겨누는 국가 권력의 칼날로 느껴질 때를 조심해야 한다. 원래 광장에 모여드는 시민들이 모두 뚜렷한 주관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대중의 반역’은 직업 선동가들, 불순세력에 의해 우연히 점화되기도 한다. 문제는 선거 때마다 힘껏 던지는 귀중한 주권이 결국 종이돌(paper stone)일 뿐이라는 절망감, 아무리 외쳐도 돌아오는 비답(批答)이 ‘법치’라는 철옹성 개념일 때 시민들은 광장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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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장은 원래 정치적이다. 분노와 절망이 표출되는 유일한 장소고, 정권과 시민이 벌거벗은 채 맞부딪치는 공론장이다. 시민혁명의 선두주자인 프랑스 레퓌블리크광장에도 정권과 시위대가 맞붙었다. 시민 의지를 표상하는 수만 켤레의 신발 속에는 불순세력의 신발도 섞여 있다. 우리의 광화문광장도 다를 리 없다. 지난 11월 시위에서 맹활약한 복면대원들은 불순, 불만 세력일 개연성이 높지만 그와 구별해 시민들의 분노 심리를 읽어내는 능력, 거기에 응답하는 진심이야말로 국가 법치를 시민 법치로 승격시키는 지혜다. 그러기에 ‘좋은 정부’의 가장 중요한 덕목을 응답력(responsiveness)이라 하지 않는가. ‘응답하라 1988’에 40, 50대가 열광하는 배경에는 호위무사로 나선 장관, 검찰총장의 일방적 발언이 도사리고 있다. 닭장차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젊은 날의 무모함 속으로 망명해서 법치의 시민적 기원을 되새기고 싶은 것이다.

 광화문광장은 주권 시민의 작은 외침들이 켜켜이 묻힌 거대한 역사적 공동묘지다. 1893년 겨울, 전봉준 이하 동학교도들이 지금의 교보빌딩 근처에 목을 조아렸다. 이른바 창교자 최제우의 억울한 누명을 벗겨달라는 교조 신원운동이었다. 척왜양을 주장한 것이 왜 사교(邪敎)인가를 따져물었다. 고종의 비답은 준엄했다. “감히 사악한 설로서 방자하게 대궐 문 앞에서 절규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꺼리는 것도 없는 행태가 극에 달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일어난 보은 집회에는 “너희들이 돌을 쌓아 진(陣)을 만들고 장대를 세워 기(旗)를 만들고 칭하되 ‘창의(倡義)’라 하면서 통문을 돌리고 인심을 선동하니…. 창의가 아니라 창란(倡亂)이다”라고 꾸짖었다. 창의와 창란을 헷갈린 국가는 스스로 붕괴의 길을 가야 했다. 광화문 집회를 ‘창란’의 프리즘으로만 보고 싶은 국가는 혹시 그 속에 위태롭게 매달린 시민적 공의(公義)를 놓친다. 눈보라의 일격을 맞고 떨어진 플라타너스 잎사귀처럼 말이다.

 시위대를 거들고 싶은 생각은 없다. 더군다나 폭력시위라면 우등 졸업장을 줘도 충분할 만큼 치열한 접전을 다 거친 게 한국이다. 민주주의 광장이라 해서 주관적 결단의 표출 형식과 행동양식의 자유가 무한히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노동 개악, 국정교과서, 폭력 과잉진압을 규탄하는 시위대의 함성에도 따져볼 것이 있다. 국가 권력의 가면을 벗으라는 민주노총은 혹시 조직 이익 극대화를 위한 가면을 먼저 벗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주최 측인 범대위와 시민연대회의 역시 ‘대중의 반역’을 대변할 만큼 범부들의 신뢰를 얻었는지도 자문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지난 주말의 평화시위는 다행스러웠다. 쇠파이프와 밧줄 대신 등장한 초록 바람개비와 꽃은 감동스러웠다. 아니, 눈물겨웠다. 무도회를 연상케 한 가면 행진은 ‘국가 법치’에 대한 해학적 풍자였다. 풍자는 힘 없는 피지배 집단이 선택하는 희극적 행동양식이지만, 냉소와 좌절이 섞여 결국 비극적 공감으로 전환한다. 풍자는 민란의 징후다. 동학도가 ‘보국안민’과 ‘오만 년 대의’를 내걸고 창란할 당시 민심은 권력집단에 대한 풍자로 가득찼다. 창란은 결국 작란(作亂)으로 진화했다.

 평화시위가 끝난 광화문광장은 일상을 회복했다. 그런데 광장에 피어나는 저 비극적 공감은 점점 드세질 겨울 강풍에도 불구하고 법치의 주인을 묻는 시민들을 불러모을 것이다. 시민정치의 난장이 서는 곳, 광장에 겨울이 온 듯하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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