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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해부! 김정은 시대 북한군부 파워 엘리트의 변화

군부 직책에 따라 교체 빈도수 큰 차이 보여… ‘싸울 수 있는 군대’ 만들기 위한 세대교체 박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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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7일 ‘전승명절’을 맞아 인민군 지휘부와 함께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은 김정은.(뒷줄 가운데) 이날 행사에는 황병서·박영식·리영길·김원홍·서홍찬· 노광칠·조남진·렴철성 등이 참가했다. / 사진·중앙포토


“김정은 군부의 황태자는 국가안전보위부장 김원홍”

군부 개혁 과정에서는 부분적인 동요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이를 북한체제의 불안정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다. 김정일은 선군정치를 계승하며 군 개혁에 몰두하고 있다. ‘급변사태’ 대비보다 북한군의 군사력 강화에 철저히 대응하는 자세가 바람직하다.

북한 군부의 핵심적인 3대 파워 엘리트로는 인민군 총정치국장, 총참모장, 인민무력부장을 들 수 있다. 이들 3인은 모두 장관급 인사로서 총정치국장은 북한군의 인사와 사상교육, 군대 내의 중요 정책결정 및 집행 등을, 총참모장은 인민군 훈련과 작전 등을, 인민무력부장은 군사외교와 후방사업 등을 관장한다.

 
?2010년 9월 제3차 당대표자회의에서 김정은 바로 오른쪽에 앉아 있는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원 안) 김원홍은 북한군부의 황태자 격으로 김정은의 신임이 매우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 사진·정성장
김정은의 금수산태양궁전 참배 시 동행하는 군부 파워 엘리트 중 공식적으로 호명되는 인사로는 국가안전보위부장과 인민보안부장도 있다. 국가안전보위부장과 인민보안부장은 장관급 인사로서 같은 장관급인 총정치국장, 총참모장, 인민무력부장 뒤에 그리고 제1차관급인 총참모부 작전국장,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 총정치국 조직부국장, 총정치국 선전부국장 앞에 호명된다.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 군부의 5대 장관급 핵심 직책 인사의 변동을 분석하면, 총정치국장은 1차례, 총참모장은 3차례, 인민무력부장은 5차례 교체되었고, 국가안전보위부장은 변동이 없었으며 인민보안부장은 1차례 바뀌었다. 이처럼 군부 직책에 따라 교체의 빈도수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냉정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김정은이 과연 즉흥적인 기분에 따라 군 인사를 단행하는지 아니면 일정한 목표(김정일 시대 지나치게 커진 군부의 특권과 영향력 축소, 군 상층부의 세대교체, 군 간부의 업무수행 능력 검증 등)와 기준에 따라 군부 인사를 단행하는지 심층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집권 4년 단 한 차례만 교체된 인민군 총정치국장

 
?현영철 전 인민무력부장은 김정은에 대한 불경죄로 숙청됐다. 지난 4월 26일 인민군 제5차 훈련일군대회에서 김정은이 발언하는 동안 졸고 있는 현영철의 모습이 보인다.(원 안) / 사진·정성장
김정은 시대에 군부에서 많은 엘리트 변동이 있었지만 북한군의 핵심 조직 중 가장 영향력이 크고 김정일 생시에 김정은의 핵심 군부 장악 기반이 되었던 인민군 총정치국의 국장은 김정은 집권 이후 약 4년간 한 차례만 교체되었다. 김정은 시대 첫 총정치국장에 임명된 최룡해는 군 출신이 아닌 당 엘리트 출신으로서 항일빨치산 2세라는 특별한 지위를 가지고 김정일 시대에 지나치게 비대해진 군부에 대한 당 통제를 강화하고 군부 세대교체를 주도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룡해(1950년생)는 북한에서 김일성 다음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항일 빨치산 최현의 아들로서 김일성종합대학 졸업 후 정치경제학 전문가 자격을 취득하고 청년동맹 중앙위원회 1비서, 황해북도당 책임비서, 당중앙위원회 비서 등을 거친 전형적인 당 엘리트다. 최룡해가 2010년 9월 27일 김정은, 김경희, 김경옥 등과 함께 대장 칭호를 받은 사실은 그가 오래전부터 김정은을 보좌하기 위해 내정된 인물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최룡해는 2012년 4월 군대에 대한 당의 통제를 보장하는 인민군 총정치국장에 임명되고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직에 선출되어 (김정은을 제외하고) 군부의 제1인자로 급부상했다. 그러나 2014년에 들어와 최룡해는 당뇨 증세가 악화되어 동년 4월 총 정치국장직에서 해임되면서 당중앙위원회 근로단체 비서를 맡게 된 것으로 판단된다. 최근에는 리을설 인민군 원수의 국가장의위원회 명단에 그의 이름이 빠져 실각설이 제기되고 있다.

최룡해의 후임으로 2014년 4월 총정치국장에 임명된 황병서(1940년생 또는 1949년생)는 주로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로 2005년 5월경에 조직지도부의 군사 담당 부부장에 임명되었다. 제3차 당대표자회 개최 전날인 2010년 9월 27일 김정은과 최룡해가 김정일 최고 사령관 명령으로 대장 칭호를 받을 때 황병서는 그보다 두 계급인 아래인 중장(별 2개) 칭호를 받았다. 그리고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최룡해와 장성택이 32명의 최고 핵심 엘리트로 구성된 당중앙위원회 정치국의 후보위원직과 124명의 핵심 엘리트로 구성된 당중앙위원회 위원 그룹에 선출되었을 때 황병서는 그보다 상대적으로 지위가 낮은 105명의 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 그룹에 선출되었다.

이 같은 사실은 황병서가 김정은의 측근이긴 했지만 제3차 당대표자회 개최 시점에만 해도 북한 지도부에서 그 위상이 높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2010년 9월 중장으로 진급한지 약 7개월 만인 2011년 4월 상장(별 3개)으로 고속 진급했다.

인민무력부장 5차례 교체된 이유

 
?북한군 최고사령관인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11월 7일 사망한 리을설 인민군 원수의 영구를 찾아 애도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2012년 4월 제4차 당대표자회 개최와 함께 김정은의 측근들이 당과 국가의 핵심직책을 차지할 때만 해도 황병서의 지위에는 특별한 변동이 없었다. 그런데 2014년에 들어와 최룡해가 당뇨 악화로 총정치국장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되면서 황병서의 지위는 급속도로 높아졌다.

2014년 3월 경 황병서는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의 군사 담당 제1부부장에 임명됐다. 군부 엘리트의 인사를 관장하는 요직이다. 그리고 2014년 4월 대장 계급으로 진급한지 채 1개월도 되지 않아 최룡해의 후임으로 인민군 총정치국장직에 임명되면서 차수 계급으로 진급했다. 황병서 총정치국장은 2014년 9월에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제13기 제2차 회의에서 전임자인 최룡해가 맡았던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직도 승계했다.

황병서는 2015년 2월에 개최된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현재 3명의 최고 핵심 엘리트로 구성된 정치국 상무위원회의 위원직에도 선출되어 그 위상이 비상하게 높아졌다. 황병서는 2014년에 총정치국장이라는 요직에 임명되고 나서도 전과 다름없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신중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북한 간부들 사이에서 매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정은 시대에 북한군의 3대 핵심 조직(총정치국, 총참모부, 인민무력부) 중 그 책임자가 가장 빈번히 교체된 조직은 군사외교와 후방사업을 담당하는 인민무력부다. 김정은이 소위 ‘경제강국’ 건설을 위해 군대를 각종 건설현장에 대규모로 투입함으로써 인민무력부장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업무추진능력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인민무력부장은 다른 군부 직책 인사보다 더욱 철저한 능력 검증의 대상이 되었다. 지난 4년 동안 인민무력부장은 5차례나 교체되었는데, 그 배경으로는 세대교체 차원의 2선 후퇴(김영춘), 리더십 부족(김정각, 장정남), 승진(김격식), 불경죄로 인한 숙청(현영철)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했다.

김영춘 차수(1936년생)는 2009년 2월 인민무력부장에 임명된 후 군부에서 공식적으로는 제2인자였지만, 조명록 총정치국장의 와병으로 실제적으로는 제1인자 지위를 누렸다. 그러다가 2010년 9월 제3차 당대표자회를 계기로 리영호 총 참모장이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직에 임명되고, 김영춘은 당중앙군사위원회의 위원직밖에 차지하지 못함으로써 군부에서 제2인자 지위로 밀려나게 되었다.

제4차 당대표자회 직전에 김영춘은 인민무력부장직에서 해임되고 당대표자회에서 ‘당중앙위원회 군사부장’ 직에 임명됨으로써 2선으로 후퇴하게 되었다. 그런데 김영춘은 인민무력부장직 해임 이후에도 오랫동안 김정은의 공개활동에 동행하는 등 군부 원로 대우를 받았다.

김영춘의 뒤를 이어 인민무력부장직에 임명된 인물은 2009년 초부터 김정은의 군부 엘리트 장악과 관련 핵심적 역할을 담당했던 김정각 인민군 총정치국 제1부국장(1941년생)이다. 김정각 총정치국 제1부국장은 2012년 2월 15일 차수 계급으로 진급했고 동년 4월 제4차 당대표자회 개최 직전 인민무력부장직에 임명되었다.

김정각은 제4차 당대표자회 때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에서 위원으로 승진했다. 그러나 그는 리더십 부족으로 2012년 10월 인민무력부장직에서 해임된 후 김일성군사 종합대학 총장직을 맡게 되어 김영춘처럼 2선으로 물러나게 되었다.

2013년 4월 1일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7차 회의에서 김정각은 ‘직무변동’을 이유로 국방위원회 위원직에서 소환되었다. 김정각은 2013년 4월 15일 김일성 생일을 맞이해 진행한 김일성군사종합대학과 김일성정치대학 간의 교직원 체육경기를 김정은 바로 뒤편에서 차수 계급장을 달고 관람했다.

2015년 11월 8일 북한이 발표한 리을설 원수의 국가장의위원회 명단을 보면 김영춘과 김정각의 이름이 제1차관급 인사들인 서홍찬 (총참모부 작전국장으로 추정), 노광철(인민 무력부 제1부부장) 등보다 먼저 호명되고 있다. 이는 이들이 여전히 원로 대우를 받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2012년 10월에는 김격식 4군단장(1938년생)이 김정각의 후임자로 인민무력부장직에 임명되었다. 김격식은 황해도와 서해 NLL(북방한계선)을 관장하는 4군단장 시절 2010년 3월의 천안함 폭침과 11월의 연평도 포격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군부 내 정치간부 영향력 확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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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최룡해의 방중에 동행한 리영길 상장.(원 안) 리영호·현영철·김격식에 이어 인민군 총참모장직에 올랐다. / 사진·정성장


김격식 인민무력부장은 2013년 3월 31일 개최된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보다 낮은 후보위원에 선출됨으로써 전임자인 김정각보다 낮은 위상을 차지했다. 국방위원회 산하기구인 인민무력부의 수장 자격으로 김격식은 2013년 4월 1일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7차 회의에서 국방위원회 위원으로 보선되었다.

그런데 2013년 5월 현영철이 총참모장직에서 해임되고 그 자리를 김격식이 차지하면서 인민무력부장도 장정남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 당시에만 해도 총참모장을 인민무력부장보다 먼저 호명했으므로 김격식이 총참모장직에 임명된 것은 승진으로 간주할 수 있는 인사였다.

2013년 5월 13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장정남을 인민무력부장으로 소개했다. 장정남은 2002년 4월 대좌에서 소장(별 1개)으로 승진했고, 김정은이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임명된 후인 2011년 4월 소장에서 중장(별 2개)으로 진급했다.

이때 김정은의 핵심 측근들인 오일정 당중앙위원회 민방위부장 및 황병서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부부장이 중장에서 상장(별 3개)으로 진급한 점에 비춰볼 때 장정남은 김정은의 눈에 들어 함께 진급한 것으로 판단된다. 중장 계급의 장정남이 2013년 5월 상장 계급을 달고 나타난 것은 그가 인민무력부장에 임명되기 직전 상장으로 진급했음을 의미한다.

2014년 6월경에는 장정남이 인민무력부장직에서 해임되어 5군단장으로 강등되고, 5군단장을 맡고 있었던 현영철이 인민무력부장직에 임명되었다. 장정남의 해임 사유는 업무능력 부족으로 추정된다.

현영철 전 인민무력부장은 2006년 2월부터 부총참모장직을 맡았고, 2010년 9월 제3차 당대표자회 개최 직전 김경희·김정은·최룡해 등과 함께 대장 칭호를 받아 김정은의 군부 장악을 보좌할 핵심인물로 주목받은 인물이다. 2010년 10월부터는 평안북도와 자강도 지역을 방어하고 이 지역의 군수공장들을 엄호하는 8군단장직을 수행하면서 김정일의 특별한 신임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2012년 7월 리영호 총참모장이 해임된 직후 현영철은 총 참모장직에 임명되면서 대장에서 차수 계급으로 진급했고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직에도 임명됨으로써 군부에서 최룡해 총정치국장 다음 가는 2인자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런데 현영철은 2013년 5월경에 총참모장직에서 해임되어 5군단장으로 강등되었다. 현영철은 2014년 6월경 인민무력부장직에 임명되어 군부의 3대 핵심 실세 안에 다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2015년 4월 말경에 김정은 비하 발언과 ‘군벌관료주의’로 처형되었다.

2015년 5월경 현영철의 후임으로 인민무력부장직에 임명된 인물은 박영식 총정치국 조직부국장이다. 정치간부인 총 정치국 조직부국장 출신의 박영식을 일반적으로 군사간부들이 맡게 되는 인민무력부장직에 임명함으로써 북한 군부 내 정치간부들의 영향력은 더욱 확대되는 반면 군사지휘관들의 입지는 더욱 줄어들고 김정은과 노동당의 군부 통제력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인민군 총참모장 교체의 다양한 배경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2013년 11월 말 백두산 지구인 양강도 삼지연군을 찾아 김일성 동상을 둘러봤다. 보름 뒤에 이뤄진 장성택 처형을 논의한 자리라는 관측이 나왔고, ‘삼지연 8인 그룹’으로 불렸다. / 사진·중앙포토
김정은 집권 이후 약 3년 9개월간 군령권을 가진 총참모장은 3차례나 교체되었는데, 그 배경으로는 군부의 이해 대변 및 김정은의 권위에 대한 도전(리영호), 군대 내 사건에 대한 집단책임(현영철), 취중 실수와 뇌물수수(김격식)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했다. 2013년 8월 총참모장이 김격식에서 리영길로 교체된 후 리영길이 현재까지 2년 넘게 총참모장직을 수행하고 있으므로 총참모장은 현재 인민무력부장보다 안정적인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009년 2월 총참모장직에 임명된 리영호(1942년생)는 2010년 9월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직과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직에 임명되어 군부 엘리트 중 사실상 제1인자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2012년 제4차 당대표자회를 계기로 최룡해가 공석 중이던 군 총정치국장에 임명되고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직에도 선출되면서, 리영호 총참모장은 군부의 2인자로 지위가 낮아지게 되었다. 리영호는 무기수출을 제외한 군부의 외화벌이 사업을 내각으로 이관하는 데 김정은 앞에서 이의를 강하게 제기하다가 불경죄로 동년 7월 15일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에서 ‘신병관계’로 모든 직무에서 해임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은 리영호를 총참모장직에서 해임한 바로 다음날인 2012년 7월 16일 평안북도와 자강도 지역을 방어하고 이 지역의 군수공장들을 엄호하는 임무를 가진 8군단장 현영철 대장에게 차수 칭호를 수여하는 결정을 채택했다. 그리고 동년 7월 18일자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현영철을 총참모장으로 소개하기 시작했다. 동년 7월 26일 조선중앙통신은 현영철의 직책을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소개함으로써 그가 리영호가 갖고 있던 이 직책도 승계했음을 공개했다.

2013년 5월 초 현영철 총참모장이 군대 내부 사건에 대한 집단책임을 지고 총참모장직에서 해임된 후 김격식 인민무력부장이 총참모장으로 보직 이동했다. 그런데 김격식은 현영철 전 총참모장처럼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직에는 임명되지 못했다. 김격식은 동년 6월 쿠바 방문 시 과도하게 술을 마신 상태에서 실수를 하고 뇌물수수 혐의가 포착되어 8월 총참모장직에서 해임되었다. 그런데 김격식은 이후에도 김정은의 금수산태양궁전 참배에 계속 동행하다가 2015년 5월 10일 급성호흡부전으로 사망했다.

2013년 8월 리영길 총참모부 작전국장이 김격식의 후임자로 임명되어 총참모장은 보다 젊은 인물로 교체되었다. 2013년 5월 최룡해가 김정은의 특사로 중국을 방문했을 때 동행했던 리영길은 동년 8월 총참모장에 임명되어 현재까지 그 직책을 유지하고 있다.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인민무력부장과 총참모장의 교체가 많았던 점을 고려하면 2년 넘게 총참모장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다소 예외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리영길 총참모장은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직에도 임명되지 못했고, 당중앙위원회 정치국에서 위원 아래의 후보위원 지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각종 행사에서 인민무력부장 다음에 호명되고 있어 총참모장의 위상이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하락했다.

국가안전보위부장 김원홍은 김정은의 군부 내 아바타

 
?리명수에 이어 인민보안부장을 맡고 있는 최부일.(원 안) 평양 아파트 건설현장 붕괴사고로 한때 두 계급이나 강등되는 수모를 겪었다. / 사진·정성장
북한 군부의 5대 핵심 장관급 요직 중 현재까지 그 책임자가 바뀌지 않은 유일한 직책은 국가안전보위부장이다. 김원홍은 2003년 7월부터 보위사령관직을 수행하다가 2009년 2월 김정은의 군부 엘리트 장악을 지원하기 위한 조치로 군 총정치국 조직부국장에 임명되었다. 2010년 9월 28일 개최된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김원홍은 김정은 바로 우측에 앉아 김정은의 핵심 측근으로 주목 받은 바 있다.

김원홍은 2012년 제4차 당대표자회 개최 직전 국가안전보위부장이라는 핵심 요직에 임명되었다. 국가안전보위부장직은 주로 당과 국가의 파워 엘리트들을 비밀리에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직책이기 때문에 김정일이 생시에 오랫동안 공석으로 남겨두다가 2009년 4월 김정은에게 직접 맡길 정도로 정권의 핵심 요직이다. 김정은이 이 직책을 김원홍에게 맡겼다는 것은 김원홍에 대한 그의 높은 신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김원홍은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직도 가지고 있지 못했지만 국가안전보위부장직에 임명되면서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 일약 정치국 위원으로 급부상했다. 김정은 집권 이후 3년 9개월 동안 군부의 핵심 직책 책임자가 대부분 바뀌었지만 김원홍이 국가안전보위부장직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것은 김정은에 대한 그의 충성심이 확고하고 리더십을 인정받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 주민을 직접 감시하고 통제하는 인민보안부장직도 지난 4년간 한 차례만 바뀌었다. 김정일 생시에 그의 공개 활동을 자주 수행했던 리명수(1934년생) 국방위원회 행정국장은 2011년 4월 7일 국방위원회 결정에 의해 인민보안부장에 임명되었다.

리명수는 2012년 4월 11일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과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에 보선되었고, 같은 해 4월 13일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5차 회의에서 국방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다. 그러나 리명수는 2013년 2월경에 인민보안부장직에서 해임되고 최부일(1944년생) 총참모부 제1부총참모장 겸 작전국장이 그 후임자로 임명되었다.

2013년 3월 31일 개최된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최부일 인민보안부장은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에 보선되었다. 그리고 다음날인 4월 1일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7차 회의에서 리명수는 국방위원회 위원직에서 소환되고 최부일 인민보안부장이 신임 국방위원으로 보선되었다.

리명수 전 인민보안부장이 2013년 3월 31일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개최에 앞서 김정은과 함께 금수산태양궁전에 참배했고, 동년 4월 1일 국방위원직에서 ‘직무변동’을 이유로 소환되었다. 이 같은 점에 비추어볼 때 리명수는 과오를 범해 해임된 것이 아니라 세대교체 차원에서 소환된 것으로 보인다.(당시 그는 79세로, 69세의 최부일보다 열 살이 더 많았다) 이후 리명수는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적은 명예적인 직책을 맡게 된 것으로 판단된다.

최부일이 2010년 9월 27일 김정은·김경희·최룡해·현영철과 함께 대장 칭호를 받은 사실은 그가 오래전부터 김정은을 보좌하기 위해 내정된 인물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최부일은 2010년 9월 28일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에도 선출되었다.

최부일은 9군단장을 맡고 있다가 2012년 4월경에 김명국의 후임으로 총참모부 제1부총참모장 겸 작전국장에 임명되었고, 2013년 2월 다시 인민보안부장으로 승진했다. 최부일은 2012년 11월 설립된 국가체육지도위원회의 부위원장직에도 임명되었다.

최부일을 잘 아는 한 고위 탈북자는 그가 “농구로 김정일 부자를 구워 삶았다. 출세가 예견된 인물”이라고 증언한 바 있다. 군 간부 추천으로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나와 장교가 된 그는 체육 특기를 살려 1990년대 중반 인민군 체육지도 위원장에 올랐다. 김정일을 ‘알현’할 기회가 잦아진 최부일은 어느 날 “농구가 아이큐를 높입니다. 그래서 미국 중고생들도 학교에서 농구를 배웁니다”라며 김정철·김정은 형제에게 농구를 시킬 것을 권했다고 한다.

김정일의 승낙에 따라 최부일은 평양 중구역의 국가대표 체육관(신암체육관)을 빼앗아 ‘왕실 농구단’을 출범시켰다. 그리고 농구 국가대표팀 전원이 차출돼 정철·정은의 농구 상대가 됐다. 덕분에 정철·정은 형제의 농구 실력이 부쩍 향상되자 김정일은 간부들을 불러놓고 두 아들의 농구 실력을 자랑했다고 한다. 이후 최부일은 승승장구했다.

숙청이 유일한 장악수단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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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부일은 2013년 2월경부터 2년 반 넘게 인민보안부장직을 계속 맡고 있으므로 매우 안정적인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그는 2014년 5월 인민보안부가 건설하던 평양 아파트 건설현장 붕괴사고에 대한 문책으로 상장에서 소장으로 두 계급 강등되고 이후 김정은의 금수산태양궁전 참배에 동행하지 못하는 등 수모를 겪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다시 대장 계급으로 진급한 것이 2015년 10월 19일 북한 조선중앙TV가 방영한 기록영화를 통해 확인되었다.

김정은 시대 북한군 핵심 요직의 파워 엘리트 변동 요인을 분석해보면 건강 문제(최룡해), 세대교체 차원의 2선 후퇴(김영춘, 리명수), 리더십 부족(김정각, 장정남), 승진(김격식), 불경죄로 인한 숙청(현영철), 군부의 이해 대변(리영호), 군대 내 사건에 대한 집단책임(현영철), 취중 실수와 뇌물 수수(김격식)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했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북한군 핵심 엘리트의 해임을 ‘숙청’과 동일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장관급 인사들 중 숙청된 인물들은 리영호와 현영철 두 명뿐이고 처형된 것은 현영철이 유일하다.

일부 전문가는 김정은의 공포정치가 북한체제의 불안정성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과거 레닌과 스탈린 모두 공포정치로 권력을 강화했다는 점에서 공포정치가 정권의 불안정성으로 반드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김영춘·김정각 전 인민무력부장, 리명수 전 인민보안부장 등은 해임 후에도 다른 보직을 맡고 원로 대우를 받았으며, 보다 젊은 간부들은 군부 내 다른 요직으로 옮겨졌다. 그러므로 김정은이 군부를 장악하기 위해 주로 숙청에만 의존하고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사실과 큰 차이가 있다.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 군부에서 군사간부들인 총참모장이나 인민무력부장은 불안정한 지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군사간부들을 통제하는 위치에 있는 정치간부인 총정치국장은 매우 안정적인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당과 국가의 엘리트들을 비밀리에 감시하는 국가안전보위부장도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김정은의 핵심 권력기반들인 총정치국과 국가안전보위부가 김정은을 떠받들고 이들 조직의 수장도 안정적인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파워가 약한 인민 무력부와 총참모부의 책임자들이 자주 교체된다고 해서 북한 지도부에 심각한 불안정이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일부 전문가는 김정은의 ‘즉흥적’인 결정에 의해 김정일 시대보다 더 많은 간부가 숙청되고 있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올해 여름 국정원은 김정은 집권 이후 약 3년 6개월 동안 약 70여 명의 간부가 숙청되었다고 밝혔다. 그런데 김일성 사망 후인 1996년부터 1999년까지 이른바 ‘심화조 사건’을 통해 숙청된 간부는 적어도 2천 명 정도로 추산된다. 70여 명의 숙청이 적은 수는 아니지만 김정일 시대 ‘심화조 사건’으로 숙청된 간부들에 비하면 3.5% 정도에 불과하다.

일부 전문가는 김정일이 군부를 능숙하게 관리했던 반면 김정은은 미숙하게 군부를 관리하고 있는 것처럼 설명하고 있는데 이 같은 지적도 실제와 큰 괴리가 있다. 김정일은 1992년 4월에만 해도 군 간부 524명을 소장으로, 96명을 중장으로 진급시키는 등 군부의 충성을 유도하기 위해 군 간부들에게 과도하게 많은 별을 달아주었다. 그 결과 북한 군부는 김정일에게 충성을 바쳤지만 인민군은 고위 간부가 지나치게 많은 비효율적이고 특권적인 조직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훈련강화와 계급강등으로 군기 잡아

2015년 7월 14일 한국의 국정원은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에서 김정은 공식 집권 이후 주요 간부들의 교체 실태를 분석해 본 결과 당과 정권 기관에 대한 인사는 20~30% 수준으로 최소화하여 당 중심 통치를 위한 조직의 안정성을 보장한 반면, 군은 40% 이상 대폭 교체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는 김정일 시기에 비대해진 군부의 세력화를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정은은 현재 김정일 시대에 지나치게 비대해지고 고령화되었던 북한군 상층부를 축소하고 세대교체로 연소화시키며 무사안일주의에 빠진 인민군 간부들을 훈련강화와 계급강등 등의 조치로 군기를 다잡고 있다. 그리고 지속적인 핵과 장거리 로켓 개발로 대량 살상무기 분야에서 남북간 군사력 격차를 벌여놓고 있다.

그러므로 김정은의 나이 하나만 가지고 그를 ‘미숙한 지도자’로 성급하게 단정하고 군부 개혁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부분적인 동요를 북한체제의 불안정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확대 해석하는 것은 부적절한 태도다. 김정일의 선군정치를 계승할 후계자로 키워지고 북한군을 ‘싸울 수 있는 군대’로 개혁하고 있는 김정은을 한국의 안보에 보다 ‘위협적인 군사 지도자’로 보고 북한 ‘급변사태’ 대비보다 북한군의 군사력 강화에 보다 철저한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글 =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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