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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금요일] ‘석유 7공주’ 힘 잃은 지 40년 … 이번엔 OPEC?

다시 ‘죽음의 골짜기(Death Valley)’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2일(현지시간) 배럴당 39.94달러에 거래돼 또 30달러대에 진입했다. 올 8월 이후 두 번째다. 석유회사들은 죽을 맛이다. 연쇄적인 채무불이행(디폴트)설까지 퍼지고 있다. 유가 하락 원인은 달러 강세다. 블룸버그 통신은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올해 기준금리 인상을 강하게 내비쳤다”며 “그 바람에 달러 값이 오르면서 국제유가가 떨어졌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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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55년 석유 카르텔
중동 산유국 주축으로 뭉친 OPEC
60년대 유가 주무르던 ‘7공주’ 제압
74년 세계를 ‘오일쇼크’ 몰아넣어
OPEC, 라이벌 셰일가스 맞서기 위해
최근 유가 하락에도 산유량 안 줄여
석유 시장 지배력 약화 … 분열 조짐

 달러 값만 기름값을 끌어내린 게 아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자기 파괴적(Self-destructive)’ 결정 가능성도 유가 추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CNBC가 최근 원유시장 전문가를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전원이 “4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리는 OPEC 총회에서 감산에 합의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회원국 간 이해관계가 제각각이어서다. 저유가의 직격탄을 맞은 베네수엘라·나이지리아 등과 상대적으로 부유한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 같은 중동 국가, 금수조치가 해제된 이란 등의 생각이 엇갈리는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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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9월 14일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열린 석유 수출국기구(OPEC) 첫 회의. [사진 OPEC]

 회원국 분열은 OPEC의 탄생과 묘한 대조를 보인다. OPEC은 서방 원유 메이저회사의 견제와 압력을 딛고 석유시장의 지배자로 성장했다. 1960년 이전만 해도 세계 석유시장은 7개의 메이저 회사가 쥐락펴락했다. 이 회사들을 ‘7공주(Seven sisters)’라고 불렀다. 스탠더드오일·텍사코·걸프오일·로열더치셸·BP 등 7개 사는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워 석유 생산과 유통·정제·판매 등을 장악했다. 당연히 외부의 도전은 거셌다. 이들이 횡포를 부리자 원유 수입국을 중심으로 강력하게 맞서는 그룹이 생겼다.

 하지만 7공주 대항 세력의 대표적 인물이 의문의 비행기 공중폭발 사고로 세상을 떴다. 62년 일어난 ‘10·27 공중폭발’이다. 10월 27일 이탈리아 시칠리아를 이륙해 밀라노로 향하던 이탈리아 국영석유회사 ENI의 전용 비행기에는 수장 엔리코 마테이가 타고 있었다. 비행기는 갑자기 폭음과 함께 공중분해됐다. 당시에는 폭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7공주가 개입됐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7공주가 자신들의 이익에 도전하는 사람이나 조직을 어떻게 다루는지 보여줬다는 음모론이었다.

 45년 ENI의 책임자로 임명된 마테이는 석유 메이저에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마테이는 원유 시장의 구도를 바꾸려 했다. 틈새를 파고들었다. 57년 7공주가 미처 손대지 못했던 이란에서 25년간 2만3000㎢ 구역에 대한 석유 독점 개발권을 획득했다. 수익의 75%를 산유국에 넘기는 파격적 조건을 앞세우고 딴 개발권이었다. 당시 석유 메이저의 이익 분배 구조는 50대 50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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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2대 석유장관인 아흐메드 자키 야마니.

 58년에 마테이는 소련과 석유 메이저의 공시 가격 이하로 원유를 수입하는 협정을 맺었다. 대규모 송유관망을 건설해 서유럽에 석유를 공급하려 했던 소련에 현금 대신 송유관을 제공하기로 했다. 마테이는 제철소에서 소련의 송유관 공사에 투입될 파이프를 생산하기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변을 당했다. 사고 발생 직후 로마 주재 미국 중앙정보국(CIA) 책임자인 토머스 카라 메신스는 종적을 감췄고 당시 CIA 국장이던 존 매콘이 석유회사 셰브론의 주식을 100만 달러어치 넘게 보유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때까지만 해도 국제 원유 시장에서 ‘7공주’를 막을 자는 없는 듯했다. 하지만 달도 차면 기우는 법이다. 석유 메이저의 새로운 대항마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산유국으로 이뤄진 OPEC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초대 석유장관 압둘라 타리키와 베네수엘라 석유장관 페레스 알폰소가 주도해 60년 창설한 OPEC은 석유 메이저의 횡포에 맞서 제값을 받는 게 목적이었다. 초창기 OPEC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하지만 OPEC의 운명을 바꾼 인물이 드디어 무대에 오른다. 사우디 2대 석유장관인 아흐메드 자키 야마니다. 73년 제4차 중동전쟁(욤 키푸르 전쟁) 당시 OPEC의 감산과 미국 등 서방 국가에 대한 금수조치를 진두지휘하며 세계를 ‘오일쇼크’로 몰아넣은 인물이다. 야마니가 주도한 OPEC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에 전 세계는 패닉에 빠졌다. 72년 배럴당 2.5달러이던 국제 유가는 74년에 11.6달러까지 치솟았다. OPEC이 세계 석유시장의 주도권을 쥐게 되는 순간이었다. 석유 전쟁을 주도한 총사령관 야마니는 ‘석유 황제’라는 칭호를 얻었다. 이때는 이미 에너지 수요의 중심이 석탄에서 석유로 옮겨간 탓에 7공주와 서방은 OPEC의 급습에 속수무책이었다. 산유국의 입김은 세졌고 원유 값이 오르며 나라 곳간은 두둑해졌다. ‘OPEC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OPEC은 국제 유가의 방향을 조절하는 명실상부한 ‘시장 지배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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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 OPEC의 활약은 화려했다. 세계 경제 침체로 석유 수요가 줄었다. 당연히 유가는 떨어져야 했다. 하지만 OPEC은 감산을 통해 유가를 안정적으로 지켜냈다. 그해 9월부터 12월까지 세 번에 걸쳐 하루 원유 생산량을 420만 배럴까지 줄이는 데 합의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원유 시장을 통제하는 OPEC의 영향력이 이때 강력하게 부각됐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OPEC의 압도적인 힘이 최근 들어 떨어지는 모습이다. 55년간 공고했던 ‘석유 카르텔’이 흔들리고 있어서다. 지난해 11월 OPEC이 유가 하락에도 원유 생산을 줄이지 않기로 한 결정이 대표적이다. 당시도 경기 침체에다 미국 셰일가스(오일) 등의 생산이 겹치면서 유가가 큰 폭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우디가 앞장서 초강수를 뒀다. 국제 원유 시장의 강력한 라이벌로 떠오른 미국 셰일업계를 고사시키기 위해 생산량을 줄이지 않은 것이다. 그 결과 지난해 6월 배럴당 110달러 선에 머물던 국제 유가는 2일 30달러대까지 떨어졌다.

 문제는 금방이라도 나가떨어질 듯했던 셰일업계가 여전히 굳건히 버티고 있다는 점이다. FT는 “국제 유가가 정치적 결정보다 시장의 힘에 좌우되면서 시장의 지배자라는 OPEC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세계은행은 올해 초 보고서에서 “OPEC이 산유량 조절로 가격을 유지하는 전략을 포기하면서 국제 원유 시장에서 ‘스윙 프로듀서(산유량을 조절해 유가를 조정하는 생산자)’의 역할이 셰일업계로 넘어갔다”고 지적했다. OPEC이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할 수단을 스스로 내던진 셈이다.

 OPEC이 국제 원유 시장의 종이호랑이로 전락할지, 기존의 영향력을 유지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골드만삭스는 국제 유가가 배럴당 20달러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저유가가 길어지면 생산량과 가격을 둘러싸고 OPEC 회원국 간 갈등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벌써 OPEC 회원국인 알제리의 전 에너지 장관 노르딘 라오신은 “회원으로 계속 남을지 말지 결정할 때가 왔다. OPEC이 유가 하락을 막을 생각은 안 하고 사우디 입장만 대변한다면 알제리가 OPEC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비관론 일색인 건 아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달 발표한 ‘세계 에너지 전망 보고서’에서 OPEC의 세계 원유 시장 점유율은 2020년 41%, 2025년에는 44%로 오히려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7년 전 OPEC을 탈퇴했던 인도네시아는 곧 OPEC에 재가입할 예정이다. OPEC의 영향력이 쇠퇴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에서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오세신 연구위원은 “향후 몇 년간 OPEC이 카르텔의 기능을 못할 가능성이 크지만 약한 연결고리를 유지하면서 산유국들이 느슨한 관계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4일 열릴 빈 정기총회에서 갈등이 폭발할 것인가. 세계 석유 시장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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