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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택傳(9)] 장성택과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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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베이징에서 열린 북중 황금평-나선 경제지구 개발회의에서 친더밍 당시 중국 상무부장과 합의문에 서명한 뒤 자축하고 있는 장성택 당시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사진 중국 상무부 홈페이지]


장성택은 중국을 부러워했다. 사회주의를 유지하면서 경제성장을 해내는 중국이 신기하게만 보였다. 그래서 김정일· 김정은 부자에게 북한도 중국의 길을 따라야 한다고 자주 말했다. 북한이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일부 도입한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 2012년 6.28조치 등 도발적인 실험도 장성택의 잔소리 탓이다.

결과는 ‘절반의 성공’이었다. 장성택은 농장과 공장의 생산량 중 30%를 생산자가 자유롭게 매매할 수 있게 조치했더니 지금의 장마당처럼 시장경제가 자연스럽게 활성화됐다. 북한이 UN 제재를 받으면서도 버티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반면 농장과 공장을 수탈해 왔던 조선인민군에게는 장성택이 ‘눈에 가시’였다. 결국 그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장성택은 2004년 혁명화 교육을 받았고, 2013년 처형되기 전에는 인민군 보위사령부의 타깃이 됐다.

중국은 장성택에게 불가근불가원이었다. 배울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너무 많이 따라가다보니 내부에서 견제구가 날아왔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권력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새로운 제도는 기존 권력자의 기득권을 뺏을 수 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권력투쟁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장성택은 김정은이 권력을 잡자마자 중국에 바짝 다가섰다. 그 동안 잔소리 한 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불가근불가원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중국은 어린 김정은 대신에 평소 중국을 동경했던 장성택이 훨씬 편했다. 중국의 말을 잘 따르는 장성택을 밀어주는 것이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원자바오 총리가 2012년 8월 중국을 방문한 장성택을 만났다. 그에게 애정이 담긴 조언으로 북한의 법률 정비, 국경 지역과의 협력, 토지 세제 개혁, 기업 투자 장려, 세관 개선 등을 주문했다. 이유는 외자를 유치하기 위한 선결과제였기 때문이다. 중국 지도부는 장성택과 손을 잡는 것이 중국이 가는 방향과 부합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것이 장성택에게 비수가 됐다. 김정은은 장성택에 대한 중국의 대접에 시샘이 났고,인민군은 중국에게 북한을 판다며 장성택을 공격했다. 중국에서 받은 화려한 대접이 오히려 독(毒)이 된 것이다. 장성택에 대한 불만 세력은 장성택의 돈을 뒤졌다. 1980년대부터 귀금속을 모아온 장성택은 2009년 한 해에만 비밀금고에서 약 460만 유로를 사용할 정도로 거침이 없었다. 또 해외 도박장을 출입한 것도 문제가 됐다. 불만 세력들에게 공격당할 빌미가 많았던 것이다.

그리고 장성택이 실수한 것이 있었다. 중국에 대해 몰랐다. 중국은 장성택이든 그 누구든 자신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이 필요했을 뿐 장성택 개인을 좋아한 것이 아니었다. 장성택 처형 이후 중국이 북한에 차갑게 대한 것이 장성택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었지만, 그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중국은 장성택 보다 북한의 제3차 핵실험 때문이었다. 중국은 지난 10월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 70주년 행사에 류윈산 정치국 상무위원(서열 5위)를 보내 북·중 관계를 가볍게 복원시켰다. 장성택의 그림자를 지우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중국은 북한 내부에 장성택과 같은 사람을 친중 인사로 만들려고 한다. 제일 가능성이 높은 사람은 최용해 당 비서다. 그는 2013년 김정은의 특사로 중국을 방문했고, 지난 9월 중국의 전승절 기념행사에도 시진핑을 만났다. 지금은 지방에서 혁명화 교육을 받고 있다고 알려졌지만 조만간 복귀할 것으로 예상된다.

장성택은 중국이라는 ‘화로’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는 바람에 타버렸다. 강대국의 접대에 조심해야 했는데 말이다. 2인자는 자신의 분수를 알고 절제하는 것이 최선이다. 저우언라이(周恩來)가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준 것이 바로 절제였다.

다음은 [장성택傳(끝)] ‘제2의 장성택’을 기다리며 편입니다.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ko.soos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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