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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의 걷다보면] 보이지 않았던 것들과의 만남

제주올레 트레킹 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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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치 않았지만 며칠 혼자 걷다 보니 내 모습에 여러 가지 변화가 생겼다. 우선 외로움을 이겨내고 자유로움을 얻었다. 함께 움직이는 일행이 없으니 신경 쓸 일이 없다. 일어나야 할 시간도 구애받지 않고 내 맘대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걷는 속도다. 나 혼자 걸으니 걷고 싶으면 걷고 쉬고 싶으면 쉴 수 있다. 찍는 사진도 달라졌다. 길을 걸으며 보는 시각이 넓어진 것이다.

오늘 길은 아스팔트를 꽤 많이 끼고 걷게 되어 있다. 지나가는 자동차도 부쩍 늘었고, 제주도의 관광 중심인 서귀포 중문에 가까워진 탓인지 사람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아스팔트는 오래 걷는 사람에게 매우 어려운 길이다.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지열도 곤혹스럽고, 지나가는 자동차도 조심해야 한다. 무엇보다 발바닥이 무지 아프다. 나처럼 걷기 왕초보에게는 매우 조심해서 걸어야 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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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옷을 입은 게 한 마리가 곡예를 한다. 길 건너 바닷가로 나가려고 무단 횡단을 시도한다. 그 게뿐만이 아니다. 게 여러 마리가 길을 건너려고 애를 쓰고 있다. 마치 동물의 왕국을 눈앞에서 보는 기분이다. 바다 거북이가 알에서 깨고 나와 바다로 가기까지의 험난한 다큐멘터리를 나는 여기서 게를 통해서 보고 있다. 한 녀석이 속도를 낸다. 그러다 자동차가 다가와 지나가면 그 자리에 멈춘다. 아찔하다. 우연히(?) 자동차를 피한 녀석은 다시 눈치를 살피고는 게걸음으로 조금 더 전진한다.

그렇게 10분이 지났을까. 녀석이 도로의 노란 중앙선에 닿았다. 사람인 내가 보는데도 심장이 벌렁벌렁하는데 목숨을 건 질주를 하는 녀석은 오죽했을까. 아마도 그 10분의 시간은 녀석의 삶에 있어 결정적 시간일 거다. 그리고는 다시 반복되는 움직임. 결국 녀석은 가고자 하는 바닷가로 무사히 빠져나갔다.
 
 휴∼. 보는 내가 숨을 내쉰다.  

게와의 짧은 만남을 통해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삶도 이와 비슷하지 않던가. 매 순간이 삶을 건 곡예요, 결정적 시간이다. 결국 인생이라는 것이 이 녀석들과 별반 차이 없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저미어 온다. 무사히 안식처로 향한 게를 뒤로하고 다시 걷는다.

길이라는 것은 결국 모든 것을 뒤로하게 만든다. 제자리에 멈춰 정착하려고 애쓰는 우리의 삶과는 다르다. 느린 걸음이던 빠른 걸음이던 결국 길을 지나가 버리고 만다. 그렇게 지나가는 길이 못내 아쉬워 자꾸 뒤를 돌아본다. 내가 지나온 길이 어떻게 생겼는지, 또 얼마만큼 걸어왔는지 바라본다. 혼자 걷기 시작한 후부터 생긴 버릇이다. 이상하게도 막상 되돌아 본 길은 머릿속 생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걸으면서 보는 풍경은 지금의 나를 보게 한다. 되돌아본 풍경은 지난 시간의 나를 보게 한다. 그 미묘한 차이를 난 이 길 위에서 깨닫고 있다. 지금도 가끔 난 뒤돌아서서 나의 과거를 바라본다. 내가 지나온 수많은 길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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