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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의 시시각각] 광화문에서 제 무덤 파는 민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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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논설실장

민노총이 5일 광화문에서 ‘2차 민중총궐기 대회’를 연다고 한다. 조계사에 숨은 한상균 위원장은 “서울이 아니라 나라 전체를 마비시킬 수 있다”고 했다. 그는 2009년 쌍용차 사태를 주도한 쌍용차 노조위원장 출신이다. 당시 쌍용차는 한 달 판매량이 고작 71대였을 만큼 완전 망했다. 디젤 값이 오르면서 소비자들이 무쏘·코란도 같은 낮은 연비의 프레임형 차체를 외면한 것이다. 그럼에도 ‘옥쇄파업’이 벌어졌다.

 쌍용차는 민노총 탈퇴 이후 부활하고 있다. 2010년부터 마힌드라의 과감한 투자가 시작된 것이다. 그해 연비가 좋은 모노코크형 ‘코란도C’를 출시하면서 회생의 실마리를 잡았다. 올해는 ‘티볼리’ 선풍이 대단하다. 올 4분기에는 영업흑자로 돌아설 전망이다. 희망퇴직자-해고자의 순차적 복직에 청신호가 켜진 것이다. 노동자의 운명도 ‘강경 투쟁’이 아니라 ‘경쟁력’에 좌우되는 세상이다.

 민노총이 안팎으로 위기다. 민노총은 광우병 파동,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제주 해군기지 반대, 세월호 사태 때마다 어김없이 마지막 주인공이었다. 촛불로 타오르던 민심은 민노총의 도심 폭력 시위를 보고서야 차갑게 돌아섰다. 이런 ‘닥치고 정치투쟁’에 현장 노조들부터 신물을 내고 있다. 민노총 탈퇴가 꼬리를 물면서 2006년 75만 명이던 조직원이 69만 명으로 줄었다. 요즘은 상급단체에 소속되지 않는 독립노조가 대세다. 2003년에 4만 명이던 독립노조원은 2007년 26만 명, 지난해 43만 명으로 가파르게 치솟았다.

 민노총 내부를 보면 앞날은 더 어둡다. 민노총 산하엔 ‘귀족노조’라는 대기업 중심의 금속노조가 14만 명이다. 그다음으로 공무원 노조 7만5000명, 전교조 6만 명이다. 조직원 6만5000명의 공공운수노조도 잘 살펴봐야 한다. 철도·지하철 등과 함께 발전·가스 등 공기업 노조가 주축이다. 민노총의 대다수가 공무원·대기업의 ‘철밥통’인 셈이다. 이러니 수수께끼 같은 통계까지 나온다. 노조 없는 기업보다 오히려 노조가 있는 기업의 정규직-비정규직 임금격차가 더 큰 것이다. ‘노조가 있는 대기업 정규직(100원)’ 대비 ‘노조 없는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상대임금은 38.6원으로, 10년 전의 44원보다 더 떨어졌다.

 일본의 노조총연합회(렌고:聯合)는 민노총의 반면교사다. 렌고는 공공부문과 교사 노조 중심으로 전투적 정치투쟁에 매달렸다. 하지만 1970년대부터 글로벌 경쟁에 노출된 민간기업 노조들부터 등을 돌렸다. 노사화합·상생 중심의 기업별 노조 비중이 커지면서 렌고의 자금줄은 쪼그라들었다. 여기에다 일본국철(JR)·우정(郵政)사업 민영화로 공공부문 노조의 철밥통이 깨졌다. ‘잃어버린 20년’ 동안 비정규직이 급증하고 고이즈미 전 총리가 우정 민영화로 총선에 압승하면서 렌고는 완전히 궁지에 몰렸다. 지금 렌고의 기치는 ‘스미와케(棲み分け)’다. ‘함께 살자’는 뜻이다. 투쟁보다 상생이 먼저로 돌아섰다.

 민노총도 같은 운명을 밟아가고 있다. 글로벌 경쟁에 노출된 한진중공업·쌍용차가 격렬한 파업 끝에 민노총을 탈퇴했다. 금속노조의 주축인 대우조선해양 노조도 파산에 몰리자 채권단의 구조조정에 합의했다. 민노총은 근거 없는 ‘민영화 괴담’을 퍼뜨리며 민영화에 결사 반대한다. 하지만 공공부문에도 언젠가 민영화 태풍이 불어닥칠 것이다. 이미 비정규직 급증으로 진보진영 2세대에겐 ‘노조 밖의 노동운동’이 핵심 이슈가 됐다. 민노총이 ‘귀족노조’ ‘공공노조’만 끌어안다간 언제 ‘민노충(蟲)’으로 손가락질 받을지 모른다.

 지금 N포 세대·비정규직에겐 싸움도 사치다. 축 처진 어깨로 도심 시위대를 비켜가는 이들에겐 싸움도 힘 있는 자의 전유물로 비친다. 어쩌면 민노총은 광화문 시위로 자기 무덤을 파고 있는지 모른다. 노동 전문가들이 쓴 『노동운동, 상생인가 공멸인가』엔 이런 대목이 나온다. “한국 노동계는 기업·정부보다 변화에 훨씬 뒤처져 있다. 지난 25년간 화석이 됐다. 지금까지 대립·투쟁에서 상생·협력으로 가기 위한 대대적인 자기혁신이 요구된다.”

이철호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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