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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위기가 오는데도 위기감 없는 한국”

“한국 경제는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서있는 미증유(未曾有)의 위기에 직면했다.” 지난 27일 1000명의 지식인들은 ‘백척간두’ ‘미증유’처럼 위기를 표현하는 가장 높은 단계의 언어를 동원해 현재의 경제 실정을 질타하고 대책을 촉구하는 ‘지식인 선언’을 발표했다. 지식인들은 현재 한국 경제 상황을 외환위기를 목전에 두었던 1996년 말과 유사하다고 진단했다.

 그렇잖아도 경제계에선 현 상황이 96~97년과 닮은꼴로 가고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었다. 미국의 예고된 금리 인상, 엔화 약세, 중국 위안화 절하 등의 대외 정황부터 흡사하다. 여기에다 당시 대내적으로는 노동개혁이 무산되고 경제정책이 겉돌았으며, 기아차 사태 등 노동쟁의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지금도 여야 정쟁으로 식물국회는 경제법안조차 처리하지 못하고 있고, 노동계는 노동개혁을 거부하며 폭력시위에 나서고 있다.

 문제는 현 상황이 외환위기 당시보다 더 나쁘다는 점이다. 암울한 경제지표부터 보자.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기업매출이 1.2% 줄어 통계조사를 시작한 이래 처음 마이너스 성장했다. 특히 제조업 매출은 마이너스 3.8%로, 수출 주도형 대기업들의 매출이 크게 줄어 한국 주력산업의 퇴행 조짐을 드러냈다. 연간 교역액 1조 달러는 2011년 달성 후 5년 만에 막을 내릴 전망이다.

 올 경제성장률 3% 달성은 이미 물 건너갔다. 한국은행마저 2.7%로 내려 잡고 있다. 내년 성장률 전망치도 정부와 관변 기관들은 3%대 회복을 기대하고 있으나 민간 경제연구기관들은 올해와 엇비슷한 2.6~2.8%로 점치고 있다. 원화가치 하락으로 올해 1인당 국내총소득(GDP) 역시 지난해보다 1000달러 정도 줄어들 전망이다. 여기에다 한국은 언제 터질지 모를 가계부채와 국가부채의 뇌관과 씨름 중이다.

 더욱 암울한 것은 눈앞에 다가오는 경제 위기를 타개할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식인들은 현 경제 위기의 가장 큰 원인 제공자로 국회를 지목했다. 정치권의 공방으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안 등 경제 활성화 관련 법안은 진척되지 않고 있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도 30일 논의키로 했으나 야당은 여전히 누리과정 국고지원 등과 연계시키며 발목을 잡고 있다.

 노동개혁과 고통분담을 거부한 채 투쟁에만 집착하는 노동계의 이기심도 만만찮다. 97년의 쓰라린 경험을 기억해야 한다. 당시에도 미리 대비한 삼성전자·현대차 등의 일부 대기업만 글로벌 기업으로 훨훨 날았고, 노동계는 투쟁만 거듭하다 수많은 노동자가 거리로 나앉지 않았던가. 그나마 당시엔 중국 등 신흥국이 부상해 우리 경제 회복을 도왔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보완시장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 경제를 도와줄 ‘대외특수’는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 경제가 백척간두에 섰다. 위기가 오는데도 위기감이 없다. 지금처럼 이기심과 투쟁에 매몰되면 모든 경제주체가 함께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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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