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박정호의 사람 풍경] 구미서 ‘사랑고리’ 운동 성공회 김요나단 신부

기사 이미지

김요나단 신부는 이웃집 할아버지 같다. 웃는 모습이 보기 좋다. 별명이 ‘영원한 낙관론자(permanent optimist)’라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지난 25일 경북 구미시 도량1주공아파트 105동 105호. 43㎡(약 13평) 크기의 작은 아파트에서 한바탕 폭소가 터졌다. 김요나단(83) 신부가 방에 들어서자 정정기(77) 할머니가 “오빠 오셨네”라며 비닐에 싼 생강강정을 내밀었다. 김 신부가 “아이고, 쑥스러워라”며 반갑게 손을 마주잡았다. 105호는 이곳 아파트 단지의 사랑방이다. 70~80대 노인 10여 명이 매일 모여 점심을 같이 들고, 노래와 율동도 함께 즐긴다. 공식 명칭은 ‘은빛둥지’. 김 신부가 이끄는 구미시니어클럽이 운영하고 있다.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 없어 … 장애인도 남 살릴 수 있죠
국비유학생 1호 출신 미국 공학박사
60대에 뒤늦게 사제로 제2 인생


 은빛둥지는 어르신들이 잠시 놀다가는 노인정과 조금 다르다. 이곳에선 노인도 일을 한다. 몸이 성한 어르신은 그렇지 않은 친구를 도와 병원에 함께 간다. 기억이 깜박깜박 하는 동료에게 약 먹을 시간을 제때제때 알려준다. 사랑방에 오지 못하는 노인에겐 도시락 배달을 한다. 독거노인의 안부를 묻는 전화봉사를 하고, 주변 식당에서 쓰는 멸치를 다듬기도 한다. 김 신부는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노노(老老)케어’의 대표적 경우”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무료봉사? 아니다. 봉사 혹은 노동 1시간당 ‘사랑고리’ 증표를 한 개씩 받는다. 시중 금액으로 치면 5000원, 일종의 지역화폐 비슷하다. 어르신은 그렇게 얻은 사랑고리로 동네 미용실에 가거나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물론 사랑고리를 다른 곳에 기증할 수도 있다. 은빛둥지 회원은 올 상반기에만 432개의 사랑고리를 만들어냈다. 날로 가팔라지는 고령화 사회, 사랑고리가 지역사회에 생기를 불어넣는 촉매제로 주목받고 있다.

 구미시 사랑고리의 중심에는 김요나단 신부가 있다. 미국 공학박사 출신의 성공회 신부다. 1959년 이승만 정부 시절, 국비 유학생 1호로 미국으로 떠났던 그는 94년부터 구미에서 사제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그가 설립한 구미요한선교센터도 올해 창립 20년을 맞았다. 그는 “젊어선 한 번도 사제가 되는 것을 꿈꾸지 않았다. 지금까지 이웃으로부터, 사회로부터, 국가로부터 받은 빚을 갚고 있다”고 했다.

 
기사 이미지

경북 구미시에서 사용되는 ‘사랑고리’ 화폐. 자체 은행도 있다. 1시간 일하면 1고리를 얻을 수 있다. 1고리는 5개 품으로 구성된다. 아래 사진은 구미 은빛둥지 노인들이 김요나단 신부와 함께한 모습.

 - 사랑고리라는 말이 생소하다.

 “미국 법률가였던 에드거 칸이 약 30년 전에 도입한 ‘타임 달러(time dollar)’를 우리 실정에 맞게 적용했다. 영국에선 ‘타임 뱅크(time bank)’라는 용어를 쓴다. 1시간의 봉사를 1달러로 환산한 개념이다. 지금까지 봉사는 주로 베푸는 차원이었다. 주는 자와 받는 자가 구분됐다. 반면 타임 달러는 쌍방향이다. 호혜성에 기초한다. 남의 도움을 받는 사람도 얼마든지 남을 도울 수 있다. 한 시간의 노동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다는 뜻이다.”

 -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한다면.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면 쉽다. 어떤 처지, 어떤 상황에서든 모든 사람은 존귀하다. 남을 위해 보람된 일을 할 수 있다. 요즘 세상이 돈으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사실 그게 다는 아니다.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는 게 더 소중할 수 있다. 예로 어머니가 아이들을 기르고, 막역한 친구를 사귀는 게 돈으로만 따질 일인가. 의사가 아버지를 돌보든, 장애인이 아버지를 돌보든 둘 사이에는 가치의 차이가 없다. 타임 달러는 사회에서, 시장에서 밀려난 사람들을 연결해준다. 우리 전통인 품앗이를 생각하면 된다.”

 - 구체적 사례를 들어 달라.

 “구미에 자살을 서너 차례 시도한 할머니가 있었다. 눈이 멀어지며 외로움이 깊어졌다. 또 류머티즘으로 몸이 굳어가는 40대 여성이 있었다. 두 명 모두 ‘죽고 싶다’고 했다. 40대 여성은 ‘나는 병신’이라고까지 했다. 그에게 부탁했다. 할머니에 대한 정보를 주고 2~3일에 한 번씩 전화를 해달라고…. 처음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던 그가 한두 번 전화를 걸기 시작하자 엄청난 변화가 생겼다. 그 둘이 영적인 가족으로 새로 태어났다. 지금은 모두 ‘나는 소중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 나누는 일이 거창한 게 아닌 것 같다.

 “그렇다. 현재 구미 사랑고리은행에는 1150명이 회원으로 있다. 이들이 하는 일은 소소해 보인다. 예를 들어 환자 돌보기, 책 읽어주기, 시장 봐주기, 차 태워주기, 정원 손질하기, 애완동물 돌보기, 편지 써주기, 스마트폰 사용법 가르치기, 합창 지도 등 사랑고리에 등록된 일만 100가지가 넘는다. 지금까지의 봉사가 주로 일회성 자선이었다면 타임 달러는 봉사가 봉사를 낳는 연속적 교환 행위에 가깝다.”

 김 신부의 이력은 독특하다. 서울대 공대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하고, 미국 오클라호마대에서 화학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형 석유회사인 BP- AMOCO 연구소에서 24년 근무하며 91년 퇴직했다. 이후 캐나다 토론토 트리니티대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94년 미국 성공회 서부뉴욕교구 사제 서품을 받았다. 한국성공회 부산교구에 파송돼 구미에 둥지를 틀게 됐다.

 - 놀라운, 쉽지 않은 인생 반전이다.

 “일생을 연구소에서 살았다. 50대 중반에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이 생겼다. 과학자로서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갔다. 전공 분야를 계속 살릴 것인가, 아니면 다른 삶을 살 것인가 결단을 내려야 했다. 회사에 안식년을 내고 일본 오사카대 산업연구소에 갔다. 87년 올림픽 직전 한국에 왔을 때 크게 놀랐다. 저도 젊어서부터 기독교인이었지만 십자가가 얼마나 많이 눈에 띄던지….”

 - 우리에겐 익숙한 풍경인데.

 “서울에서 고향인 광주(광역시)로 가면서 십자가를 세어봤다. 350개까지 세다가 그만뒀다. 신기했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59년 유학을 떠났을 때와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기독교는 성장했지만 사회에는 좋은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이다. 종교가 장사꾼이 된 것 같았다. 신문도 열심히 읽었는데, 먹고사는 건 나아졌지만 사회 불평등 문제가 오히려 더 심각하게 다가왔다. 직장을 그만두고 이 문제를 푸는 데 여생을 바치자고 생각했다.”

 - 그래서 신부가 되기로 했나.

 “꼭 그런 건 아니었다. 한국에 선교사로 오려면 사제가 돼야 한다고 미국 성공회 주교가 권했다. 내 스스로 준비가 부족했던 셈인데, 지금은 하느님께서 그렇게 마련해 주신 것으로 믿는다. 92년 여름 부제 시절 부산 달동네였던 반송동 ‘나눔의 집’에서 6개월간 목회 실습을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에도 한국 사회의 가난과 직면하게 됐다.”

 - 구미와 개인적 인연이 있나.

 “전혀 연고가 없었다. 작은 아파트를 구입해 아내와 함께 살면서 자원봉사자 교육부터 시작했다. 정부·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무의탁 환자, 죽음을 앞둔 호스피스 환자, 그리고 중증장애인을 보살피는 일이었다. 이후 10년간 450여 명을 길러냈다. 노인 돌봄 사업에도 눈을 돌렸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 어떤 문제를 말하는 것인지.

 “환자든, 장애인이든 봉사를 받는 이들이 다른 사람에 기대려는 의존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받기만 하면 행복해질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자칫 무기력증에 빠질 수 있다. 그때 이강현 전 세계자원봉사협의회장으로부터 타임 달러를 소개받았다. 미국에 가서 에드거 칸을 만났고, 한국에도 초청했다. 사람은 누구나 각기 재능이 있고 무엇이든 남을 위해 할 수 있다는 데 눈을 떴다. 위기에 놓인 가족과 공동체를 다시 세우는 실마리를 찾았다.”

 - 공동체 복지 개념이다.

 “시장경제에만 의존하면 자본주의도 무너질 수 있다. 복지의 사각지대는 어디에나 있다. 날로 심각해지는 노인·청소년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역에서 나서야 한다. 서로 돕고 돕는 관계망을 만들어야 한다. 영어로 ‘핸디캡드(handicapped)’, 즉 노인·병자 등 취약계층을 살피는 게 바로 예수를 섬기는 일이라고 본다. 그렇지 않으면 기독교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

 - 한국에 타임 달러가 정착할 수 있을까.

 “이미 지구촌 30여 개국으로 확산된 상태다. 서울 노원구와 경기도 파주에서도 비슷한 운동이 시작됐다. 타임 달러에는 좌도 우도 없다. 정부가 개입할 사항이 아니다. 보편적 복지를 놓고 왈가왈부 다툴 것도 없다. 민간의 자발적 참여가 핵심이다. 성경에도 나와있듯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일 아닌가. 주저할 이유가 없다. 생이 끝날 때까지 계속할 것이다.”

글=박정호 문화·스포츠·섹션 에디터 jhlogos@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 BOX] 경동교회 세운 김재준 목사가 ‘영성 멘토’

 
기사 이미지
김요나단 신부는 ‘영성 멘토(스승)’로 두 명의 목사를 꼽았다. 이웃과 함께하는 성직자의 모습을 보여준 이들이다. 김 신부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기독교에 입문했다. 6·25 비극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서울중학 6학년(현재 고3) 때였는데 큰 쇼크를 받았다”고 했다. 그는 대학생 때 초대 광주 YMCA이사장을 지낸 백영흠(1904~86) 목사에게 세례를 받았다. “일제의 신사 참배에 반대할 만큼 강직하셨죠. 제게도 대학 졸업 후에 목사가 되라고 여러 차례 권하셨어요”라고 말했다.

 김 신부는 서울 경동교회를 설립한 김재준(1901~87·사진 왼쪽) 목사를 각별하게 기억했다. 1960~70년대 한국 교회의 사회참여에 앞장섰던,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강조했던 신학자다. “백 목사님에게 처음 소개를 받았어요. 한국이 낳은 위대한 성인 같은 분이죠. 제 결혼식 주례도 서 주셨어요. 제가 나중에 성공회 신부가 된 것을 알고 깜짝 놀라기도 했고요. 김 목사님에게 배운 걸 하나로 요약하면 나이가 들수록 사람과 사회에 대한 경계가 넓어졌다는 점입니다.”

 그가 잊지 못하는 또 한 명은 미국인이다. 원자폭탄 개발에 참여했던 윌리엄 G 폴라드(1911~89·사진)다. 물리학자였던 그는 히로시마 원폭 투하 이후 과학기술이 빚은 폐해를 반성하며 성직의 길로 들어섰다. “미국 유학 시절 폴라드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었어요. 사회와 종교, 과학과 신앙, 그 사이에서 기독교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숙고하게 됐습니다.”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