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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교통사고 판결 로드뷰로 뒤집고, 살인범 뇌영상도 찍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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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뷰(Road View·도로 영상촬영서비스), 구글 어스(Google Earth·인공위성 영상지도서비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메시지 같은 빅데이터, 뇌의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뉴스 속으로] IT기술 덕에 진화하는 재판 증거
폭행사건 현장의 로드뷰 활용
증인 거짓말 잡아낸 경우도 많아


 정보·과학기술 발전과 더불어 법정에서 채택되는 증거가 ‘진화’하고 있다. 과거엔 당사자나 목격자 진술이 재판의 주요 증거였지만 디지털 증거와 첨단 뇌과학 진단기법까지 재판 증거로 동원된다. 로드뷰가 교통사고 과실 여부를 밝혀내는가 하면, 끔찍한 살인범죄와 살인범의 뇌 손상 사이의 연관성을 알아보기 위해 머릿속 전두엽까지 살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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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6월 18일 오후 10시쯤 인천시 서구의 왕복 8차로에서 만취 상태의 김모씨가 몰던 쏘나타 승용차가 도로에 설치된 가드레일형 방호울타리를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김씨와 옆자리에 탔던 유모(여)씨가 그 자리에서 숨졌다. 김씨의 자동차보험회사인 H사는 일단 유씨 유족에게 3억7000만원의 보험금을 지급했다. 그런 다음 인천시에 “방호울타리 단부(端部·돌출 부분)에 충격흡수시설을 설치하지 않아 사고 손해가 커졌다”며 구상금을 청구했다.

 1심은 “사고 당시 단부는 충격흡수가 가능하도록 금속판을 둥글게 덧대어 처리하는 등 안전성을 갖춘 상태였다”며 H사의 청구를 기각했다.

 하지만 항소심에서 H사 측을 대리한 변호사가 사고 발생 10개월 전 사고 도로가 찍힌 네이버·다음 로드뷰(도로영상촬영) 자료를 법정에 제시하면서 반전이 일어났다. 김민호(법무법인 바로) 변호사는 “사고 전부터 외부 충격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할 정도로 단부가 심하게 찌그러져 있는 게 보인다”며 “사고 전까지 단부를 보수한 기록이 있으면 보여달라”고 인천시 측을 압박했다. 재판부는 로드뷰 자료를 증거로 받아들였다. 결국 “방호울타리가 안전성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사고가 발생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단,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인천시에 7400만원 지급하라고 한 것이다. 로드뷰가 판결을 뒤집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김형두(50·사법연수원 19기) 사법정책연구원 수석위원은 지난해 서울고법 부장판사로 있을 때 로드뷰를 자주 활용했다. 두 여성이 길거리에서 싸운 폭행사건에서 목격자 세 명의 증언이 엇갈렸다. 두 명은 가해 여성이 피해 여성의 머리채를 잡는 걸 봤다고 했지만 한 명은 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김 수석위원은 당시 증인 세 명에게 예고 없이 폭행사건 현장의 로드뷰를 보여준 뒤 피해 여성이 어느 쪽에서 걸어왔는지를 물었다. 두 명의 증인은 정확히 설명했지만 나머지 한 명은 엉뚱한 얘기를 했다.

 김 수석위원은 “로드뷰로 증인의 거짓말을 잡아낸 경우가 적지 않았다”며 “사건현장에 대한 심증 형성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디지털 신종 증거’는 로펌의 기획소송에 활용되기도 한다. 토지 소송 전문인 A법무법인 소속 직원 세 명은 하루 종일 인공위성 영상지도서비스인 ‘구글 어스’를 들여다본다. 미불용지(未拂用地)를 찾기 위해서다. 미불용지는 도로·공원 등 공공시설에 편입됐으나 소유주에게 보상이 안 된 토지다. 이들은 각 지방 지적도(地籍圖)와 구글 어스를 일일이 비교해가며 불일치하는 곳이 발견되면 실소유주를 찾아가 미불용지 보상 소송을 권유한다. 법원에 소 제기와 더불어 1차 증거물로 구글 어스 캡처 화면을 제출하는 식이다. A 법무법인 관계자는 “과거 대규모 도로사업 탓에 전국에 미불용지가 적지 않다”며 “구글 어스 서비스가 없었다면 이런 기획소송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머리를 심하게 다쳐 정신장애로 살인을 저질렀다’고 주장하는 살인범의 주장을 뇌과학으로 입증하는 시도도 진행 중이다.

 서울고법 형사5부 김상준(54·사법연수원 15기) 부장판사는 지난 16일 이화여대 뇌과학연구원에 의뢰해 ‘팔달산 토막살인 사건’의 피고인 박춘풍(57)씨 뇌영상을 찍었다. 박씨는 동거녀 B씨를 목 졸라 죽인 뒤 시신을 훼손한 혐의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에 박씨의 변호인은 “박씨가 사이코패스 심리검사(PCL-R)에서 점수가 미달됐는데도 재판부가 반사회적 인격장애로 판단해 가중처벌했다”며 항소했다. 또 “박씨는 뇌 손상으로 충동조절 기능 등에 이상이 생겼고, 이것이 범행과 연관됐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씨는 어릴 때 오른쪽 눈을 다쳐 의안(義眼)을 하고 있다고 한다. 눈 바로 뒤, 뇌의 일부인 ‘안와전두엽’ 등이 손상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안와전두엽은 충동조절 기능, 공감 능력 등을 담당하는 뇌 부위다.

 2심을 맡은 김 부장판사는 PCL-R 재검과 함께 박씨의 뇌기능 영상(fMRI)을 찍어보기로 했다.

 fMRI는 혈류량 변화로 뇌 기능 활성화 정도를 살피는 뇌영상 촬영 기법이다. 촬영 도중 박씨에겐 사회적 행동과 도덕적 결정에 관한 60여 개 질문이 주어졌다고 한다. 박씨의 뇌 분석 결과는 한 달 뒤쯤 나온다. 김 부장판사는 “이화여대 뇌과학연구원이 법정에 나와 박씨의 뇌 분석 결과를 설명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사법 사상 최초로 뇌영상 증거가 재판에 제시되는 것이다.

 미국·영국 등에선 이미 뇌과학에 기반한 증거가 법정에서 많이 활용된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서 2005년 한 해 형사사건 재판에서 100건의 뇌과학 증거가 제시됐다. 2008년에는 두 배 가까운 200건 정도였다.

 1992년 허버트 웨인스타인 사건은 뇌영상 증거가 재판에서 받아들여진 첫 사례다. 아내를 자살한 것처럼 꾸며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웨인스타인은 범죄 사실을 인정은 했다. 하지만 사고능력이 손상된 상태에서 저지른 것이라고 주장하며 전두엽 부근에 지주막성 낭포가 있음을 입증하는 뇌영상 증거를 제출했다. 법원은 이를 증거로 인정했고 웨인스타인은 당초 2급 살인죄에서 그보다 형량이 낮은 비고의적 살인죄로 처벌받았다.

 미국 내 수사·재판 과정에서 뇌과학 증거 채택이 많은 건 범죄자 관련 뇌 연구가 활성화돼 있어서다. 신경범죄학의 세계적 권위자인 에이드리언 레인은 87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41명의 살인범 집단과 연령·성별이 매칭된 41명의 일반인 집단 뇌영상을 각각 찍었다.<사진 참조> 그 결과 욕구·행동통제를 담당하는 뇌의 맨 위 앞부분인 전전두엽과 시각적 역할을 담당하는 뇌의 맨 밑 후두엽의 활성도에서 양측 집단 간 차이가 발견됐다.

 뇌영상에서 노란색과 빨간색은 뇌 활성도가 높음을, 파란색과 초록색은 낮음을 의미한다. 일반인 집단은 전전두엽, 후두엽의 활성도가 모두 높았다. 반면 살인범 집단은 후두엽 활성도가 높았다. 이는 살인범들의 시각엔 문제가 없다는 의미다. 하지만 전전두엽 활성도는 크게 낮아 살인범들이 욕구를 통제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미국계 멕시코인 안토니오 부스타만테는 89년 동네 수퍼마켓에서 물건을 훔치다 80세 주인 할아버지를 주먹으로 때려 살해했다. 변호인은 부스타만테가 착실하게 살아오다 20세 때 쇠 지렛대에 맞아 머리를 다친 후 각종 범죄 행태를 드러낸 점에 착안, 뇌영상을 찍었다. 일반인의 안와전두엽이 붉은색으로 활성화된 데 반해 부스타만테는 초록색이었다. 이어 재판에서 “머리를 다친 후 성격이 충동적이고 정서적으로 불안정해졌다”고 주장했다. 배심원들은 부스타만테의 뇌가 비정상적이란 걸 알고 사형을 면해줬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도 뇌영상을 과학적 증거로 활용하는 건 양형 단계의 특별한 경우로 제한돼 있다고 한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S BOX] “흉악범 뇌 분석, 형량 정하는 데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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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 316호 강의실. 김상준(사진)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올해 임용된 신임 법관 40여 명을 상대로 ‘재판에서의 과학적 증거 활용’에 대한 강연을 하고 있었다.

 김 부장판사는 “과학 발전 속도가 빠른 만큼 재판에서의 과학적 증거 채택 여부도 매우 중요해지고 있다”며 “여러분이 재판 현장에서 맞닥뜨릴 주요 과제 중 하나일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대법원이 판결을 통해 유전자(DNA) 검사의 증거능력을 처음 인정한 건 불과 8년 전이다. 김 부장판사가 2007년 대전고법 재직 때 특수강도강간 피고인에게 사법 사상 처음으로 사이코패스 심리검사(PCL-R)를 실시했다. 이후 PCL-R의 재판 활용 사례는 크게 늘었다. 최근엔 보호관찰처분, 성범죄 전과자의 전자발찌 착용 판단 등에도 활용된다. 김 부장판사는 27일 본지 인터뷰에서 “설문 형태의 PCL-R 검사만 갖고 사이코패스를 판단하는 건 역부족”이라며 “뇌 영상 분석 자료가 보완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흉악범의 뇌 분석을 통해 범죄심리를 파악하고 데이터를 축적하는 작업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김 부장판사는 최근 박춘풍씨 말고도 지난 4월 아내를 목 졸라 살해하고 시신을 나눠 버린 김하일(47)씨의 뇌 영상 촬영도 진행했다. 김씨는 머리를 다친 적은 없지만 도박 중독이다. 김 부장판사는 “죄는 뇌가 저지른 게 아니라 사람이 한 것”이라며 “뇌 분석 결과 정신장애로 보인다고 해서 죄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다만 재범 위험성을 판단해 형량을 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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