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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엄마 손이 약손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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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규
서울대 의대 교수
신경외과학

수년 전 식사 중 갑자기 배가 몹시 아파 응급실을 거쳐 입원한 적이 있다. 담낭 속에 돌멩이가 생겨 말썽을 부린 때문이다. 결국 대학 동기 외과 교수 집도 아래 내시경수술로 쓸개를 절제했다. 어제까지 흰 가운을 입고 회진하던 병실에 환자가 되어 입원하니 여러 가지가 어색했다. 본의 아니게 병동의 의사·간호사들에게 비상이 걸렸다. 근무하는 병원에 입원했으니 아마 이들에게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으리라. 그러나 환자의 눈높이에서 보니 못마땅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몸이 아프니 마음도 약해졌다. 무엇보다 사람의 따뜻한 손길이 그리워졌다.

 요즈음 의사들은 컴퓨터 화면을 보면서 환자를 진료한다. 모든 의료정보가 전산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불편사항을 귀담아 듣거나 환자를 진찰하기보다 모니터에 나타난 데이터와 씨름을 한다. 첨단의 기계로 검사한 결과들이니 틀림없을 것이다. 정확한 진단 후 적절한 치료를 했으니 의사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위로의 말 한마디를 고대하면서 환자는 하루 종일 목이 빠져라 주치의를 기다린다. 늦은 오후 교수가 여러 의사와 함께 회진을 한다. 하지만 알아듣지 못할 영어 몇 마디를 자기들끼리 주고받고는 병실을 떠난다. 눈도 한번 맞추고 손도 한번 만져 주었으면 좋으련만 환자는 허탈하다.

 직접 환자가 되어 보니 늦게나마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의사로서 반성해야 할 점도 있었다. 사무적이고 쌀쌀했던 자세가 부끄럽기도 했다. 정년퇴임이 가까워 그나마 조금씩 철이 들어 가는 셈이다. 병을 진단, 치료하는 데엔 독수리 눈매 같은 냉정한 마음이 필요하다. 그러나 의사는 시골 외할머니의 너그러운 눈빛을 함께 가져야 하지 않을까.

 어릴 적 웬만한 병은 어머니가 엄마 손이 약손이라며 손으로 우는 아이의 배를 쓸어 주시면 그만이었다. 집에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면 약국이나 동네 의원을 찾았다. 어머니 손에 끌려 병원에 가면 할아버지 같은 의사선생님이 따뜻하게 맞아 주셨다. 인자한 얼굴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청진기를 가슴에 대 보고 정성스레 이리저리 배를 만지면서 진찰을 해 주셨다. 특별한 검사는 안 했지만 모든 것을 알아 내신 듯했다. 의사선생님은 빙긋이 웃으시며 손으로 접은 하얀 종이봉투의 가루약을 손에 쥐어 주셨다. 귀갓길의 발걸음이 한층 가벼워졌다.

 초대형 대학병원으로 환자가 집중되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환자는 병의 경중에 관계없이 큰 병원으로 가고 싶어한다. 현대식 빌딩에서 고가의 최신식 의료기기로 진료하기에 믿음이 가기 때문이다. 유명 교수 진료는 빠른 기일 내 예약이 쉽지 않다. 수소문 끝에 사돈의 팔촌까지 동원해 겨우 진료 날짜를 잡는다. 희망을 품고 찾아간 환자 중 실망하는 사람이 많다. 잔뜩 기대를 걸고 갔는데 몇 분 만에 쫓겨나듯 진료실을 나선다. 온전한 사람 대접을 받았다고는 도무지 생각되지 않는다. 동네 병원에서 치료받아도 될 것을 공연히 일을 키운 것 같아 후회가 된다.

 짧은 시간에 많은 환자를 진료해야 하는 대학병원 의사도 힘들고 어려운 때가 있다. 영상기록을 달랑 내밀며 대뜸 진단이 뭐냐며 채근하는 환자도 있다. 많은 사람이 인터넷으로 병에 대한 정보를 찾아본다. 환자는 스스로 치료법을 마음속으로 정해 놓고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 의사의 결정이 마음에 맞지 않으면 역정을 내기도 한다. 안되지, 안되지 하면서도 의사도 사람인지라 간혹 짜증이 나기도 한다. 한나절 외래진료가 끝나면 침이 마르고 등 뒤가 땀으로 젖는다.

 어느 선배 의사의 농담이 생각난다. ‘미식가들이 찾아다니는 맛집 있잖아요. 대개 그런 식당들은 허름하지만 손맛이 좋은 집들이지요. 나물도 조물조물 손으로 무쳐야 제 맛이 나잖아요. 그런데 참 이상해요. 환자들은 의사가 손으로 수술하는 곳보다 로봇이 수술하는 병원을 더 좋아하네요.’

 물론 우스갯소리다. 또 병원을 식당에 비유하는 것은 당치않다. 그러나 맛집의 손맛 같은 정이 느껴지는 동네병원이 많다. 중병이 아니라면 무작정 대학병원으로 가기보다 인정과 푸근함이 있는 동네병원에서 진료받기를 권하고 싶다.

김동규 서울대 의대 교수 신경외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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