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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몰 리더십’ 시대, 협치로 넘자

#1. 유신 말기인 1979년 5월 29일. 야당 신민당 총재를 뽑는 전당대회 하루 전날 가택연금 중이던 DJ(김대중)가 을지로 4가의 중국음식점 아서원으로 달려갔다. 당시 총재 경선은 이철승과 YS(김영삼)의 대결이었다.

아서원에서 단합대회 중이던 신민당 대의원 수백 명 앞에서 그는 YS를 위해 연설했다. “이번 전당대회는 김영삼과 이철승의 싸움이 아니라 유신반대파와 친유신파의 싸움입니다. 이철승은 중도통합을 말하지만 길거리 합승도 방향이 같아야 합니다. 유신의 길은 동쪽이고 민주의 길은 서쪽인데 어찌 왕십리 갈 사람과 신촌 갈 사람이 중도통합할 수 있습니까.” ‘라이벌 YS를 도와선 안 된다’는 측근들의 반대를 물리친 DJ의 연설에 힘입어 YS는 신민당 총재로 당선됐다.

 #2. 제7대 대선(71년 4월 27일) 무렵의 경남 거제 장승포. 대선 보름 전인 그해 4월 12일 신민당 대선후보 유세장에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러분! 이 김영삼이가 대통령 후보가 되지 못하고 남을 돕는 입장으로 고향에 와 마음이 아픕니다. 하지만 사나이가 약속을 했다 아입니까. 그러니 거제 군민들은 제게 몰표를 준다는 기분으로 김대중 후보에게 표를 몰아 주십시오.” 70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DJ에게 패한 YS는 그렇게 DJ 지원 유세에 나섰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로 ‘경쟁적 협력관계’를 통해 민주화란 위업을 남긴 양김(兩金) 시대가 저물었다. “카리스마의 정치 시대가 종언을 고한 것”(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을 의미한다. 양김 리더십의 원천은 카리스마였다.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의원은 “군사정권에 대항하라는 국민의 지지에 지역기반, 정치자금, 공천권까지 쥔 DJ나 YS가 입장을 정하면 소속 정치인들은 일사불란하게 ‘이하동문’을 외쳤다”고 말했다. 그런 카리스마적 리더십은 ‘보스정치’라는 부정적 유산도 남겼다. 그래서 한때는 양김 혹은 3김(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포함) 정치는 청산 내지 극복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양김이 집권을 마친 2002년 이후 14년이 지났다. 서강대 손호철(정치학) 교수는 24일 “나는 『3김을 넘어서』라는 비판적인 책을 쓴 사람인데 요새는 차라리 3김이 그립다”고 말했다. 의회주의자였던 양김의 뒤를 이어 국회에 나타난 건 리더십 공백 상태하에서의 ‘카오스(chaos·무질서)’였다. 새 리더십이 등장하지 않은 채 저출산·고령화, 청년실업 문제같이 국가 생존전략에 관한 문제조차 한국 정치는 해법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간곡히 비준을 요청하고 있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만 해도 본회의에 상정조차 못하는 상황이다.

 여야 대표 간 합의문은 휴지 조각이 되기 일쑤다. 붕괴된 정치 리더십을 어떻게 복원해야 할까. 이원종 전 정무수석은 “카리스마 리더십은 다른 측면에서 보면 비제도적인 리더십”이라며 “영웅 시대가 아니라 이젠 협치(協治)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양김 시대에는 민주화를 이루려다 보니 상명하달식 리더십이 필요했지만 그건 YS·DJ로 끝”이라며 “당을 개방해 다수 국민을 정치에 참여하게 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양한 행위자가 정치에 참여·협력한다는 의미에서의 ‘협치’(거버넌스)가 작동하려면 YS-DJ의 ‘경쟁적 협력관계’를 되돌아봐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충고한다. 고려대 임혁백(정치외교학) 교수는 “3김 이후 고만고만한 리더들의 정치 시대가 도래했는데 가장 큰 문제가 경쟁적 협력관계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앙대 손병권(정치학) 교수는 “소통하는 능력, 국민과 같은 눈높이에서 대화하는 능력, 갈등을 조율하는 능력에서 리더십이 만들어져야 한다”며 “문제해결형 리더십을 가진 정치인들이 정책경쟁을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탁·안효성 기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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