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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진 수요일] 청춘리포트-2030이 본 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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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YS) 전 대통령은 26세에 국회의원에 당선됐습니다. 그는 한국 정치의 한복판에서 자신의 청춘을 불태웠습니다. 지금의 20~30대는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던 시절, YS는 이미 한국 정치의 거산(巨山)으로 성장하고 있었던 겁니다. YS가 마침내 대통령이 됐을 때도 어린아이에 불과했던 지금의 20~30대는 지난 22일 서거한 그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청춘리포트가 YS에 대한 2030세대의 기억을 불러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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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신민당 원내총무 시절 김영삼 전 대통령


2030세대는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취임 했을 때 갓 태어났거나 유치원·초등학교에 다니던 어린이였다.

YS의 기나긴 정치 역정에서 다소 한 발짝 물러서 지켜본 세대다. 고립된 YH무역 여공들의 손을 잡아줬던 일화나 100만 인파가 모인 보라매광장 유세 등은 부모님을 통해 듣거나 교과서에서 접했을 뿐이다.

그런 청춘 세대에게 지난 22일 서거한 YS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을까. 청춘리포트가 20~30대 남녀 4명을 만나 자신이 기억하는 YS에 대해 물었다. 의원직 제명(1979년), 단식투쟁(83년), 야권 후보 단일화 실패(87년), 대통령 취임(93년) 등 YS가 정치적으로 중대한 변환기를 맞이했을 때 태어난 이들이다. 다음은 1979년생 회사원, 1983년생 회사원, 87년생 대학생, 93년생 대학생 등 4명이 풀어놓은 YS에 대한 기억이다.

1979년 10월
“미국은 박정희 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해 달라”고 요구했다가 의원직 제명


목에 수건 두르고 운동복 입은 모습 떠올라요
1979년생 문진호(36·SK텔레콤)

YS 하면 떠오르는 것: 배드민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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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조깅이나 배드민턴 등 운동을 열심히 하던 정치인으로 기억한다. YS에 대해 가장 먼저 떠오른 이미지도 그가 목에 수건을 두르고 운동복을 입은 모습이다.

  YS가 잘한 일 하나를 꼽자면 단연 하나회 청산이다. 군사정권과 선을 그었던, 한국사에 있어 큰 전환점이 아니었을까. 솔직히 대학생 때는 외환위기로 초래된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여파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좀 더 많았다. 그런데 30대에 들어서면서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YS의 업적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보게 됐다. YS가 하나회 청산, 금융실명제 등을 실시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의 부패가 더욱 심각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 역시 IMF 사태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대학교 1학년 때 IMF 사태가 터졌고 2학년을 마치고 입대했다. 제대 후 미국으로 유학을 갔는데 여전히 IMF 사태 후유증이 커서 부모님이 부담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IMF 사태가 YS 때문에 일어났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YS가 대통령이 되기 이전부터 쌓여온 많은 문제가 한꺼번에 터진 거라고 할 수 있으니까. 물론 책임은 당시 대통령이었던 YS에게 있지만 YS가 IMF 사태를 초래했다고 볼 순 없다고 생각한다.

1983년 5월 민주화 5개 항과 야당 인사 석방 등을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투쟁 돌입

어릴 때 유머집 『YS는 못말려』 즐겨본 기억나요
1983년생 이민우(32·동아출판)

YS 하면 떠오르는 것: 유머집 YS는 못말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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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YS는 못말려 라는 유머집을 즐겨 봤다. 당시만 해도 대통령은 매우 권위적인 인물이었는데 그런 책이 나왔다는 게 굉장히 획기적인 일이었다. 그때 서점에 가면 YS를 캐릭터(그림)로 그려서 세계화에 대해 설명해 주는 책도 팔았던 기억이 난다. 또 칼국수도 인상적이었다. 서민적인 음식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YS를 친근하고 편안하게 느끼게 했다.

  고등학교 1학년 입학했는데 학급에 수업료를 못 내서 기한을 연장하던 친구들이 있었다. 알고 보니 IMF 사태 때문에 가정 형편이 어려워진 친구들이었다. 특히 아버지가 대우에 다니셨던 친구들은 아버지가 하루아침에 실직해 가정이 해체되기도 하고 큰 타격을 받았다고 하더라. 우리 부모님은 자영업을 하셔서 장사가 어렵긴 했지만 나보다 더 힘든 친구들을 보면서 IMF의 여파를 체감했던 것 같다.

  YS가 가장 잘한 건 ‘역사 바로 세우기’를 꼽고 싶다. 나이도 기억이 안 날 만큼 어렸을 때 대학생 사촌누나랑 예전 조선총독부 건물을 그대로 쓰고 있던 국립중앙박물관에 가서 총독부에 대한 설명을 처음 들었다. 당시 어린 나이에도 ‘왜 일본이 조선을 통치하기 위해 만든 건물을 아직도 그대로 두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후 조선총독부 건물 폭파 장면을 생중계로 봤는데 그야말로 속이 다 시원했다.

1987년 10월 대선을 2개월 앞두고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야권 후보단일화 실패

금융실명제 단행할 만한 인물 지금 있을까요?
1987년생 박호신(28·한양대 연극영화과 4학년)

YS 하면 떠오르는 것: 조선총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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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는 ‘화끈한 대통령’이라고 말하고 싶다. 96년 조선총독부 건물을 부순 것(사진)도 그렇고 금융실명제를 추진한 것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금융실명제 작업을 추진할 때 몇 명을 추려 호텔 방에 가둬놓고 보안을 지키며 사업계획을 짰다고 들었다. 이런 걸 지금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

  나는 87년 6월생으로 그때 일어난 역사적인 민주항쟁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아버지가 광주 출신인데 YS에 대해 비교적 호의적인 편이었다. 어렸을 때 YS가 DJ와 민주화운동을 담당하면서 우리나라 민주화에 큰 발전을 이뤘다고 들었다. 그래서 YS에 대한 이미지는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서거한 후 호의적인 반응들이 나오는 것도 지금 한국의 민주주의 상황이 안 좋다는 방증이 아닐까.

  그리고 YS가 남긴 유명한 어록 중 기억하는 게 많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DJ가 YS 보고 “너무 복잡한 문제를 단순히 생각한다”고 하고 YS는 DJ 보고 “단순한 문제를 너무 복잡하게 생각한다”고 말한 것인데, 일생의 라이벌이었던 두 사람의 차이를 극명하게 정리해 주는 것 같아 기억에 남는다.

1993년 2월 대선에서 42%의 득표율로 승리하고 제14대 대통령으로 취임

외환위기 때 아빠가 실직해 살기 힘들었대요
1993년생 김수진(22·성균관대 영상학과 3학년)

YS 하면 떠오르는 것: IMF 사태
 

YS가 대통령이 되던 해에 태어나 구체적인 기억은 없다. 다만 IMF 사태 때 아버지가 회사를 안 나가고 집에 계시던 기억은 또렷하다. 어린 나이인데도 아버지가 실직했다는 걸 알았다. 집안이 크게 기울었던 건 아니었는데도 뭔가 어려워졌다는 건 알았던 것 같다. 아버지와 금 모으기 운동에 참여했던 기억도 있다.

  너무 어렸기 때문에 YS에 대한 건 학교에서 근현대사 시간에 배운 것과 책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알게 된 것들이 전부다. 이미지는 뭔가 ‘강한 사람’ 같다. 조선총독부 건물 해체나 금융실명제 등 YS가 단호하게 조치를 취한 일을 선생님께 배워서 안다. 주위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 같고 자기 의사가 확실한 사람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요즘 정치인들은 주위 말에 휘둘리는 정치를 하는 것 같은데 YS는 소신 있는 강한 정치인이었던 것 같다.

정강현 청춘리포트팀장
유성운·김선미·박병현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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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