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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가슴을 뛰게 한 것만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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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지난 주말 밤, 나는 일산 킨텍스에 있었다. 육십을 훌쩍 넘긴 가왕 조용필의 가창에 맞춰 율동하는 칠십 줄 여인의 흥겨움이 눈물겨웠다. 아직 녹슬지 않은 그의 목소리가 세월의 더께에 침잠된 그 여인의 아련한 사랑의 기억을 일깨웠을 테니까. “유아 마이 트램펄린~ 나를 두근거리게 해요”. 트램펄린(trampoline)은 용수철로 만든 도약대다. 그러니 바운스, 바운스 할 수밖에. 할머니라고 부르기엔 잔인한, 보글보글한 파마 머리의 그 여인을 지탱해 온 힘은 희미해진 사랑의 그림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살며시 스민 잠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깨웠다. 2015년 11월 22일 0시를 넘긴 시각, 민주화의 트램펄린은 스스로 박동을 멈췄다.

 정치인 김영삼은 민주화의 트램펄린이었다. 민주주의를 막연한 동경이자 환상처럼 느꼈던 암울한 시대에 김영삼은 그것을 희망의 유일한 현실로 변환시킨 박동기였다. 독재의 소집통지서를 받아 들고 누구나 동원 행렬에 응할 때조차 리듬과 가락이 다른 음악을 스스로 연주하지 못하면 박동기가 될 수 없다. 남도의 멸치잡이 거상 아들이 장택상의 비서관으로 정치에 입문하고, 40세 젊은 나이에 서슬 시퍼런 군부정권에 당랑거철(螳螂拒轍)로 나섰던 힘은 아무도 못 말린 ‘환상을 향한 질주’였을 것이다. 환상을 확신으로 각인시킨 데는 그의 무모한 성정이 주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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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故) 김대중을 박식하고 냉정한 정치인이라고 한다면, 고(故) 김영삼은 정이 많고 어리숙한 지도자였다. 어리숙했기에 말을 붙이거나 뭔가 내주고 싶은 동지들이 모여들었다. 십시일반 모은 뜻과 투지를 그는 허투루 쓰지 않았다. 꺼져 가는 민주의 들불을 점화했고, 투신한 YH 여공들을 보듬었으며, 단식투쟁을 마다하지 않았다. 전두환이 강제한 가택연금을 3년간 견뎠다. 상도동 자택 뜰에서 매일 아침 마라톤 하듯 조깅을 했을 것이다. “내 마음을 뺏을 순 없어!” 그의 절규는 얼음판을 녹였다. 현대판 위리안치(圍籬安置)를 정신력으로 버틴 그의 낙관적 정치관에 독재정치는 끝내 무릎을 꿇었다. 독재와의 투쟁 30년, 정말 지독한 집념이었다. 혹한의 군부정권에서도 가슴을 뛰게 만든 다정한 투사이자 결코 타산적이지 않은 정치인이 김영삼이었다.

 정통성 시비에 휘말렸던 3당 합당도 군부독재의 종언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비하면 부차적이라고 필자는 판단한다. 그의 대권 욕망이 문민정치를 개막했으므로. 셈에 능했다면 금융실명제, 하나회 척결, 공직자 재산 공개, 세계화 전격 시행 같은 충격적인 개혁조치를 단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치적 보복이나 저항을 고려했다면 노동법 개혁이나 고용보험을 전격 시행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대쪽 같은 이회창에게 총재 권한을 넘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가끔 자신의 언약을 번복하기는 했지만, 민주주의를 향한 희망박동기의 역할만큼은 배신하지 않았다. 7080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은 김영삼 영전에 이런 묘비명을 헌정하고 싶은 것이다-‘어두웠던 시대에 희망의 화톳불을 점화했다’고.

 세계 정치사를 돌이켜 보면 대개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 전후에 카리스마 정치인이 태어난다. 독일의 콜·영국의 대처 총리, 미국의 레이건·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이 그랬다. 이들의 공통점은 ‘전환’이었다. 구시대의 패러다임을 청산하고 신지평을 여는 것이다. 콜 총리는 통일준비 시대를 열었고, 대처와 레이건은 신자유주의를 본격화했으며, 미테랑은 민족 경계선을 허물고 유럽 통합으로 나가는 지성의 문을 열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역시 독재를 민주제도로 갈아 끼운 전환의 기수였다. 그가 내세웠던 ‘변화와 개혁’은 부품의 ‘전면 교체’ 혹은 ‘체질의 완전 변혁’을 뜻했다. 지배구조를 망가뜨릴 수 있는 위험하고 무모한 도전이었다. IMF 사태라는 미증유의 비용을 치러야 했다. 이후 고 김대중의 집권은 민주화의 영원한 맞수가 설계한 정치적 지형을 가다듬는 마무리정치였다.

 카리스마 정치인이 물러간 2003년 이후 13년 동안 한국 정치의 부품은 거의 교체됐다. 그러나 체질은 바뀌지 않았음을 우리는 너무나 뼈저리게 목도하고 있다. 최고의 기예를 뽐내는 다혈질의 후예들이 아무리 용을 써도 신지평은 잘 열리지 않고 제멋대로 내는 잡음에 신경이 아프다. 조용필이 절창한 앙코르곡 ‘바운스’ 가락에 그 칠순 여인은 몸 흔들기를 여전히 멈추지 않았는데 고 김영삼에게 물려받은 민주정치의 조율사들은 열망의 노래를, 감동의 선율을 선사하지 못했다. 정치인 김영삼의 공과를 냉혹하게 따지는 것보다 암울한 시절 민주화를 향한 우리의 심장을 바운스, 바운스 하게 만들었던 것만으로도 그의 존재는 빛난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랑이 남긴 상처들도 감싸줄게’라고 정겹게 말해 주는 이 시대의 트램펄린은 대체 누구인가? 그의 영면에 희망박동의 기억이 그립다고 기어이 발설해야 하는 시대는 초라하다. 고마웠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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