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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회장이 된 ‘흙수저’ … “길이 없으면 만들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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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이 1983년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5m 높이 작업 타워에 올라 선박 프로펠러를 점검하는 직원과 대화하고 있다. 당시 직원은 “작업을 이해하고 배우려는 열정으로 가득찬 사람이었다”고 술회했다. [ 사진 현대차]


‘왕(王)회장’.

5가지 명장면과 교훈들
‘헬조선’ 자조하지만 그때는 참혹
합숙소 악착같은 빈대에게도 배워


 많은 이들이 고(故) 아산(峨山) 정주영(1915~2001)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일컫어 이렇게 부른다. 그의 건장한 체구와 선 굵은 경영 스타일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왕이란 수식어는 ‘회장 중의 회장’을 뜻하는 존경의 표시이기도 하다. ‘흙수저’를 물고 태어나 맨 땅에서 굴지의 자동차·조선·건설 업체를 일군, 불세출의 경영인에 대한 경외심이다. 25일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이봐, 해 봤어?”로 대변되는 그의 기업가 정신을 보여주는 명장면을 추억했다. 그와 오랜 시간 함께한 측근이나 그를 연구한 이들을 통해 현 시대 경영자에게 던지는 교훈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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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실패와 좌절 사이=아산을 20년 넘게 연구한 『정주영처럼 생각하고 정주영처럼 행동하라』의 저자 홍하상(60) 전 울산대(정주영학) 교수는 98년 아산과 만난 자리에서 “성공하신 기업가를 만나 영광이다”고 인사를 건넸다. 아산에게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자네는 내가 얼마나 많이 실패했는지 몰라서 그래. 워낙 많이 실패한 덕분에 결국 성공한 거야. 실패는 했어도 좌절하지 않았으니까.” 아산은 성공한 만큼 실패한 경험도 많은 경영자였다. 1940년 ‘아도서비스’ 자동차 수리 공장을 세웠지만 설립 25일 만에 화재로 잿더미가 됐다. 53년엔 대구-거창을 잇는 고령교 복구 공사를 맡았지만 건설 자재 값이 폭등해 자동차 수리 공장과 동생들 집을 포함해 네 채의 집을 팔아야 했다. 77~87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은 아산을 보좌했던 박정웅(72) 전 전경련 상무는 “아산 기업가 정신의 요체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이라며 “실패에 인색하고 도전을 꺼리는 요즘 기업에게 시사점을 던져준다”고 말했다.

 ② 노마드(유목민)처럼 사고하라=아산은 안 되는 이유를 들으면 그만큼 되는 이유도 찾으려 애썼다. 그러다 혁신적인 해법을 내놓곤 했다. 현대건설은 84년 충남 서산 간척지 공사 당시 최종 물막이 공사를 앞두고 난관에 부딪쳤다. 물살이 거세 10t이 넘는 방조제용 바위가 바다로 쓸려갔기 때문이다. 아산은 해체를 앞둔 대형 유조선을 옮겨다 물살을 막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주위에서 손사래를 치자 아산은 “이봐, 해 봤어?”라며 직원들을 다그쳤다. 결국 공사 기간을 3년이나 앞당겨 성공시켰다. 뉴욕타임즈(NYT)가 ‘정주영 공법’으로 소개한 일화다.

 현대그룹 문화실 출신 김문현(67) 현대중공업 자문역은 “아산은 무쇠같은 추진력 못지 않게 유연한 사고를 가진 ‘노마드’ 경영자였다”며 “아이폰을 만든 애플의 스티브 잡스나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한 빌 게이츠만 칭송할 게 아니다. 아산의 노마드적 사고에서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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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③ 만년 ‘흙수저’는 없다=아산은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초등학교만 졸업했다. 4번의 가출 끝에 창업했다. 쌀가게 직원, 공사장 인부, 항만 노동자 등 안해본 일이 없는 ‘현장 노동자’였다. 아산은 종종 "나는 열심히 일해 성공한 노동자일 뿐 재벌이 아니다”고 말하곤 했다.

 아산이 인천에서 막노동을 할 때 합숙소엔 빈대가 많았다. 아산은 빈대를 피하려 밥상 위에서 잠을 청했다. 하지만 빈대는 밥상 네 다리로 기어 올라와 아산을 물어뜯었다. 밥상 다리를 양잿물에 담가놓자 빈대는 벽을 타고 올라와 천장에서 떨어져 다시 아산을 공격했다.

 아산은 “하찮은 빈대조차도 이렇게 노력해서 성과를 거두는데 운세 타령만 하고 열심히 살지 않는 사람을 보면 ‘빈대의 교훈’을 떠올리며 노력이 모자란 탓이라고 꾸짖곤 한다”고 자서전에 썼다. 홍하상 교수는 “어려운 경제 상황을 일컫어 ‘헬 조선’이란 자조가 나오는데 아산이 살아온 시대는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참혹한 시절이었다”며 “노력의 가치는 어려울 때일수록 빛난다”고 말했다.

 ④ 휴머니즘의 조직학=아산은 70대의 나이에도 회사 수련회에서 20대 직원과 씨름을 하며 어울렸다. 회식 자리에선 직원들과 어깨동무를 한 채 ‘해뜰 날’ 같은 대중가요를 즐겨불렀다. ‘현대가의 마지막 가신(家臣) ’으로 꼽히는 김윤규(71) 전 현대아산 사장도 아산과의 일화를 털어놨다.

 “89년 리비아 출장길에 탔던 비행기가 추락했습니다.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죽다 살아났죠. 다음날 병원에 누워있는데 아산이 경포대 호텔로 호출한 겁니다. 폭탄주를 연거푸 권하더니 갑자기 ‘일어나서 뛰어봐!’ 하는 통에 한참을 달렸습니다. 그랬더니 손을 맞잡고선 ‘됐어. 일하러 가자’ 하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한창 일할 땐데 사고가 충격으로 남지 않도록 격려한 거였습니다.”

 65∼80년 아산과 함께 일한 조상행(77) 전 대한알루미늄 사장은 “아산은 휴머니즘을 실천해 구성원에게 로열티를 심어준 경영자였다”며 “회사마다 인재 관리에 애를 먹는 요즘 경영자로서 자세를 돌아보게 해 준다”고 말했다.

 ⑤사회적 비전을 꿈꿔라=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공장엔 ‘우리가 잘 되는 것이 나라가 잘 되는 것이며 나라가 잘 되는 것이 우리가 잘될 수 있는 길이다’란 표어가 붙어있다. 사업보국(事業報國)의 이상을 실천한 아산이 남긴 말이다. 아산은 77년 현대건설 주식의 50%를 털어 아산사회복지재단을 세웠다. 그 재원으로 사회복지·장학 사업에 투자했다. 88올림픽 유치단장을 맡아 서울 올림픽 유치를 성사시키기도 했다.

 말년에 뛰어든 대북사업도 사업보국의 연장선상이었다. 98년 ‘소떼 방북’ 당시 그는 1001마리의 소를 끌고 판문점을 넘었다. “1000은 끝이지만 1000+1은 또다른 시작이다”는 그의 소신이 담겼다. 북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더 주려는 뜻에서 500마리는 새끼를 밴 암소를 골랐다. 김윤규씨는 “아산의 창업은 단순히 돈을 벌려는 목적에서 시작한 게 아니었다. 자동차·철강·조선 사업 모두 ‘나라에 도움되는 사업’이라며 시작했다”며 “사명감을 갖고 사회에 공헌하는 회사가 드문 현 시대에 숭고한 기업가 정신의 유산을 남겼다”고 평했다.

김기환·임지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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