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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발상으로 연 길 … ‘만수’ 정주영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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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아산, 정주영 탄신 100주년 기념 학술심포지엄’에 참석한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왼쪽)이 김재규 전 현대고 교장과 함께 정주영 명예회장의 일대기를 소개하고 있다. [뉴시스]


탄생 100주년 … 남들이 안 하는 일 한발 앞서 해낸 그가 남긴 ‘퍼스트 무버’ 정신

정주영의 기업가 정신-熱·逆·勇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안 보이던 해결책 보이고
불가능하다고 마음 닫으면
있는 해결책도 숨어버려”


“미친 거 아냐?”

 한국전쟁과 산업화 과정에서 한 남자가 겪은 아프고 치열했던 삶을 담아낸 영화 ‘국제시장’에서 구두닦이 소년이 깨끗해진 구두를 신고 차로 달려가는 청년의 등 뒤에 내뱉은 말이다. “나는 배 만드는 게 꿈인데, 그것도 아주 커다란 배…. 외국에서 돈을 빌려 와 이 땅에 조선소를 지을 거야”라는 청년의 말에 대한 반응이었다.

 영화적 설정이지만 청년은 30대 중반의 고(故) 정주영(1915~2001) 현대그룹 명예회장이다. 실제 정 명예회장은 1971년 세계적 선박컨설턴트사 A&P애플도어의 찰스 롱보텀 회장에게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를 꺼내 보여주며 거액을 빌려 현대중공업 조선소 건설을 가능케 했다. 당시 갖춰진 거라곤 허허벌판인 울산 미포만의 사진뿐이었다. 70년대 정 명예회장을 보필했던 박정웅(72) 전 전국경제인연합회 상무는 “정 명예회장은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안 보이던 해결책이 보이고 불가능하다고 마음을 닫으면 있는 해결책도 숨어버리는 법이다’는 말로 당시를 회고하곤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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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년대 중반 오일쇼크로 국가경제가 위기에 처했을 때 오히려 “중동의 오일머니를 우리가 벌어야 한다”고 중동 건설에 나서며 박정희 대통령과 나눈 대화 또한 일반인의 생각을 벗어난다.

 “낮에는 더우니까 자고 공사는 밤에 하면 됩니다. 공사할 땐 모래가 있어야 콘크리트 시멘트를 만드는데 지천으로 깔린 게 모래니 좋습니다. 물은 유조선을 만들어 빈 탱크에 가득 실어 나르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석유를 담으면 됩니다.” 정 명예회장은 76년 ‘20세기 최대 역사(役事)’로 불렸던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을 계약금 9억4000만 달러에 따낸 것을 비롯해 77년 사우디 라스알가르 항만과 쿠웨이트 슈아이바 항만, 78년 1월 두바이 발전소까지 대형 공사를 수주했다. 75년 중동에 진출한 이후 79년까지 현대건설은 무려 51억64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국가경제를 지켜내는 데 크게 기여했다. 76년 당시 정부 1년 예산은 50억 달러가 채 못됐다. 김문현(67) 현대중공업 자문역은 “정 명예회장의 알려지지 않은 별명 중 하나가 만수(萬手·1만 가지의 수)였다”고 귀띔했다. 남들은 생각지도 못할 정도로 기발한 방법을 많이 생각해서 나온 별명이라고 한다. 그는 “끊임없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찾아다니는 유목민처럼 생각을 멈추지 않고 변화와 혁신을 주도한 사고의 노마드(nomad·유목민)”라고 정 명예회장을 칭했다.

 25일로 탄생 100주년을 맞는 정 명예회장의 이런 정신은 현 시대 기업인이 되찾아야 할 정신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세계기업가정신발전기구(GEDI)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기업가 정신 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22위로 나타났다. 아시아 국가인 대만과 싱가포르가 각각 8위, 10위를 기록한 데 비해 한참 뒤처졌다. 한국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기업가 정신은 70년 대 후반 산업화 시기에 가장 높았고 이후 점차 감소했다. 더군다나 중국이 연평균 7%대의 고성장 시대를 마감하고 ‘신창타이(新常態·뉴노멀)’를 추진함으로써 6%의 중속성장 시대에 접어들어 한국 경제에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중국 경제성장률이 1%포인트 하락할 경우 우리 경제성장률은 최대 0.6%포인트까지 둔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홍하상(60·정주영학) 전 울산대 교수는 “아무리 경제 상황이 어렵다지만 남들이 하지 않는 걸 한 발짝 앞서 추진한 ‘퍼스트 무버(first mover)’정신을 되살린다면 닥쳐올 어떤 위기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65∼80년 정 명예회장과 함께 일했던 조상행(77) 전 대한알루미늄 사장은 “그의 열정·역발상·용기가 오늘날 말하는 창조경제의 핵심 아니겠느냐”며 “중요한 건 사업가로서 성공해야 하는 목표의 핵심을 보국(報國)에 뒀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삼포(연애·결혼·출산 포기) 세대를 넘어 오포(직장·내 집 마련), 칠포(인간관계·미래희망) 세대라는 말까지 들으며 좌절하고 있는 청년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더 크다. 홍하상 전 교수는 “정 명예회장이 20대에 겪은 사업 실패만 해도 쌀가게·자동차정비소를 포함해 네 차례고 한국전쟁 복원사업에 참여했다 10년 넘게 사채업자들에게 시달리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는 “만약 거기서 포기했다면 그가 이후 만들어낸 성공신화는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병주·김기환 기자 moon.byung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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