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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사람을 잘 쓰는' 정치인 YS…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도 발탁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사람을 잘 쓰는’ 정치인이었다. 대권을 잡기 위해 오랜 시간 치열한 경쟁을 한 까닭에 새로운 인재 수혈은 정치적 생존을 위한 필수였다. 토포악발(吐哺握髮, 먹던 것을 뱉고, 감던 머리를 잡은 채 인재를 맞이한다는 뜻)을 통해 수많은 YS의 사람들을 만든 이유다. 그들 중에는 온전히 YS의 곁에 남아있던 사람도, 결별과 배신으로 서로의 길을 걸어간 사람도 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건 YS를 거쳐간 많은 인재가 대한민국의 정치를 화려하게 수놓았다는 점이다.

노무현ㆍ이명박 전 대통령은 YS에 의해 발탁돼 정계에 입문한 뒤 YS 후임자의 길을 걸었다. 부산의 대표적인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던 노 전 대통령은 1988년 4월 13대 총선 때 당시 통일민주당을 이끌던 YS에게 영입돼 부산 동구에서 금뱃지를 달았다. 하지만 1990년 민주정의당ㆍ통일민주당ㆍ신민주공화당의 3당 합당(민주자유당)에 노 전 대통령이 거세게 반발하면서 YS와는 갈라서게 된다.

이 전 대통령은 1992년 3월 치러진 14대 총선에 민자당 전국구(비례대표) 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그해 12월 대선에서 YS와 경쟁한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적 영입의 성격이 강했다. 당시 YS의 깜짝 발탁을 놓고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현대건설 사장을 지낸 이 전 대통령이 정주영 명예회장이 만든 통일국민당에 참여하지 않고 오히려 대선 출마를 만류하다 경쟁자의 품으로 들어간 게 도덕적 논란을 일으켜서였다. 15년이 지난 후 YS는 이 전 대통령이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대통령과 한나라당 대선 후보를 놓고 경쟁을 할 때 “대통령은 성인군자를 뽑는 게 아니라 일 잘하는 사람을 뽑는 것”이라며 이 전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줬다.

YS의 사람 중에는 대권 주자급 인물도 즐비하다. 그 중에서도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와의 애증관계는 빼놓을 수 없는 묘한 인연이다. ‘대쪽 판사’로 이름을 날리던 이 전 총재가 정치적 거물이 된 건 YS의 작품이다. 대법관과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하던 이 전 총재를 감사원장에 발탁한 데 이어 1993년 12월 국무총리로 만든 게 YS이기 때문이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타결로 정부는 대선 공약과 달리 쌀 시장을 개방할 수밖에 없었고, YS는 국면전환용 카드로 여론이 우호적인 이 전 총재를 택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는 평탄하지는 않았다. 헌법에 주어진 총리 역할을 강조하며 자기 스타일을 고집하던 이 전 총재가 마뜩잖던 YS는 4개월만에 총리 자리에서 전격 경질했다. 그러나 ‘정치인’ YS는 정권재창출을 위해 1996년 1월 이 전 총재를 한나라당에 입당시켰다. 하지만 대세론을 등에 진 이 전 총재는 1997년 대선 후보가 되자 YS 탈당을 공개 요구했고, 결정적으로 ‘YS 화형식’으로 YS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YS는 1997년 대선에서 이 전 총재 대신 자신이 노동부 장관과 경기도지사로 몸집을 키워준 이인제 새누리당 최고위원을 밀게 된다. YS가 이인제의 국민신당 창당을 적극 만류하지 않으면서 적전분열이 생겼고, 외환위기 책임론까지 겹치면서 결국 50년만의 수평적인 정권교체로 이어졌다. YS 일생의 라이벌인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대권을 거머쥔 것이다.

군부정권에서 민주화 투쟁을 해온 YS는 민주화 인사를 보수 진영으로 수혈하는 데도 능했다. 철저한 현실주의자이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YS는 진보 성향의 교수였던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를 1993년 경기도 광명을 보궐선거에 민자당 후보로 출마시켰다. 1996년에는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입각시켰다. 손 전 대표는 2002년 경기도지사까지 당선되며 거물로 성장했지만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을 앞두고 탈당하며 야권 인사가 됐다. 1996년 15대 총선을 앞두고는 민중당을 결성해 좌파노선을 걷고 있던 김문수 전 경기지사와 이재오 의원을 각각 영입해 신한국당 의원으로 만든 것도 YS다.
 

김문수ㆍ이재오 외에도 15대 국회는 이른바 ‘YS 키즈’가 대거 탄생한 시기다. ‘모래시계 검사’ 홍준표 경남지사, ‘박종철 검사’ 안상수 창원시장, 병원장 출신의 정의화 국회의장, 충청지방경찰청 출신의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모두 신한국당 15대 의원 초선 동기다. 집권 하반기를 맞은 YS가 총선 참패 위기에 몰리자 당명을 신한국당으로 바꾸고 과감하게 외부 수혈을 한 결과 20년 가까이 한국 정치의 주역으로 활동할 인물의 정치권 진입이 가능했다.

YS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단어는 ‘상도동계’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은 1969년 YS가 안암동 자택을 팔고 이사한 뒤 46년 넘게 산 곳이다. DJ의 ‘동교동계’와 함께 현대 정치사의 명암을 담고 있다. 군부정권과 맞서 싸우던 시절 상도동 자택은 가택연금의 장소로, 또 동료 의원들과 모여 당론을 결정하던 곳이기도 했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 신상우 전 국회부의장, 김동영 전 정무장관, 최형우 전 내무장관, 김덕룡 전 정무장관 등 1960년대 YS가 발탁한 인사들은 이곳을 제집 드나들듯 다녔다. 초대 민선 부산시장을 지낸 3선의 문정수 전 의원, 청와대 총무수석을 지낸 홍인길 전 의원,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을 지낸 박종웅 전 의원 등도 대표적인 YS의 사람들이다.

한때 한국 정치를 주름잡던 상도동계가 영원하지는 않았다. 1993년 YS의 대통령 취임과 함께 권력의 중추가 됐지만 1997년 3월 YS의 오른팔 격인 최 전 장관이 뇌졸중으로 쓰러지며 구심점을 잃었다. 그해 치러진 15대 대선에선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의 지지 문제로 쪼개졌고, 이후 상도동계는 사실상 해체가 됐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와 서청원 의원, 그리고 막내뻘인 정병국 의원은 여전히 여의도에서 활약하고 있는 상도동계로 꼽힌다. 김 대표와 서 의원은 1984년 YS가 DJ와 함께 만든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에서 정치경험을 쌓았고, 이후 YS의 측근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지난해 7월 새누리당 대표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싸우며 편하지 않은 사이가 됐다. 정 의원은 1987년 대선 때 홍보업무를 담당하며 YS의 사람이 됐다.

권호·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사진 중앙포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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