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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바둑외교와 체스외교의 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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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미국 외교의 산증인이라 불리는 헨리 키신저(92) 전 국무장관.

 고령으로 좀처럼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그가 지난 16일 워싱턴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주최한 ‘글로벌 안보포럼’에 등장했다. 파리 테러 사건 불과 사흘 후였다. 그래서 많은 청중이 그의 ‘한마디’에 주목했다. 그가 내놓은 훈수는 어찌 보면 의외였다. “난 러시아와 미국이 이해를 같이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외교는 이중적이다. 겉으로는 으르렁거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뒤로는 악수하고,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기도 한다. ‘적의 적’이란 이유만으로 아군이 된다. 키신저가 말한 대로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그렇다. 크림반도 합병사태 이후 철천지원수처럼 보였지만 러시아 여객기 테러 사건, 파리 테러 사건으로 이슬람국가(IS)라는 적에 맞서는 ‘공동 운명체’가 됐다.

 충돌 일보직전인 것처럼 보이는 남중국해에서의 미국과 중국 간 갈등도 속을 들여다보면 마찬가지다.

 미국은 지난달 27일 중국이 남중국해에 만든 인공섬의 12해리 안으로 구축함 ‘라센’을 보냈다. “인공섬은 결코 인정할 수 없다”는 결의가 대단해 보였다. 하지만 ‘라센’의 함장 로버트 프랜시스 중령이 당시 상황을 로이터통신 기자에게 털어놓은 걸 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라센이 인공섬 12해리 안에 들어가기 열흘 전부터 중국 군함이 계속 쫓아왔지만 긴박한 장면이 전혀 없었어요. ‘너희는 토요일에는 뭘 하고 지내느냐, 우리는 피자나 치킨 먹는데…’라고 농을 건네면 중국 쪽은 고향 이야기나 자신의 가족, 해외여행 등을 이야기하며 다정한 대화를 나눴죠. ‘작전’을 마치고 돌아가는 마지막 날 중국 장교가 영어로 그러더군요. ‘이제 여기서부터는 너네 구축함을 따라가지 않을 거야. 부디 쾌적한 항해가 되시길! 그럼 또 만나자고!’(Hope to see you again)”

 미국이나 중국 모두 애초부터 충돌할 각오 같은 건 없었던 것이다. 서로 겉으로는 ‘원칙’을 내세우지만 전략적 모호함을 통해 ‘출구’를 남겨두는 고도의 외교술이다.

 우리는 어떤가. 위안부 문제에 올인하며 한·일전 축구 경기하듯 대일 외교를 한다. “모든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지 않으면 모든 게 불가능하다”며 ‘오광만 노리는 고스톱’마냥 대북 정책을 다룬다. 마냥 흘러가는 시간을 늘 우리 편이라 생각한다.

 ‘원칙’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식 외교’는 키신저가 가장 경계했던 부분이기도 했다. 그는 저서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왕을 표적으로 완전한 승리를 추구하는 체스는 계속되는 정면 충돌을 통해 적의 말을 제거하려 한다. 반면 면적의 비교우위를 추구하는 바둑은 빈 곳으로 (상황에 맞게) 움직여 상대방의 전략적 잠재력을 줄여간다.” (『중국에 관하여(On China)』, 2011년 53쪽) 왜 우리는 미·중 사이에선 바둑을 두려 하면서 북한·일본과는 체스를 고집하려 하는가.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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