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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쇠파이프 vs 오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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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미국 진보의 아이콘이자 여성 운동계의 대모로 추앙받는 연방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82). 미국 역사상 두 번째 여성 대법관이 된 입지전적인 인물인 그는 사회적 소수자의 권익보호에 앞장서 왔다. 대법관 가운데 처음으로 동성 결혼식 주례를 섰고, 낙태 시술 금지에 반대하는 등 진보를 대변해 왔다. 여기까지 읽고 보수주의자를 자처하는 많은 분은 이렇게 생각하실지 모르겠다. “상종 못할 인물이네.”

 하지만 다시 생각하셔야겠다. 긴즈버그가 ‘절친’으로 꼽는 인물 중 한 명은 ‘보수주의자의 대부’로 통하는 동료 대법관 앤터닌 스캘리아(78)다. 스캘리아가 누군가. 동성결혼 합법화를 두고 반대 의견을 내면서 동성애를 “국가의 기본 가치에 대한 쿠데타”라고 규정한 스타 보수주의자다. 스캘리아와 긴즈버그는 이념 스펙트럼에서 대척점에 서 있다. 법복을 입고는 날카롭게 대립하지만 법원 밖에서는 서로 “함께 있으면 즐거운 친구”라고 부른다. 지난 7월 한 공동 강연에서 긴즈버그는 “니노(스캘리아의 애칭)와 난 생각은 다를지라도 서로 존중한다”며 “사랑의 방식이 다를 뿐 우린 모두 미국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이들의 우정은 지난 7월 ‘스캘리아·긴즈버그’라는 오페라로 제작되기까지 했다.

 지난 광화문 시위에 등장한 쇠파이프와 물대포를 보면서 긴즈버그와 스캘리아라면 뭐라고 할지 궁금했다. 긴즈버그는 소수자들을 위한 투사로 통하지만 그의 무기는 말과 논리였을 뿐 쇠파이프와는 거리가 멀었다. 자신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스캘리아와 같은 이들에게 귀와 마음을 열었다. 스캘리아 역시 “헌법에 대한 해석은 다르지만 긴즈버그를 동료로서 존경한다”고 말해 왔다.

 진보뿐 아니라 보수진영으로 분류되는 쪽의 시위 역시 “나만 옳고 남은 틀리다”는 도그마로 가득하다. ‘다른 생각=틀린 생각’이라는 프레임에 갇힌다면 우리 스스로 퇴보의 길을 걷는 것과 매한가지 아닐까. 작가 조지 오웰은 “당신이 정치의 추잡함으로부터 자유로워 보이는 어떤 신조를 받아들였다고 할 때, 그 자체만으로 당신이 옳다고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할수록 남들도 다 자기처럼 생각해야 한다며 괴롭히기 십상이다”고 일갈했다. “나만 옳다”는 프레임에 갇혀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물대포로 사람을 중태에 빠트리는 현실보다는 다른 목소리를 하나로 화합시키는 오페라가 보고 싶다. 상종하지 못할 사람이란 없다. 생각이 다를 뿐 우리는 다 같은 인간이니까.

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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