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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근의 시시각각] 만약 한국에서 테러가 발생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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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근
논설위원

불길한 상상을 해보자. 만약 수백 명의 승객이 탄 연안여객선에 정체불명의 테러범들이 폭탄을 설치하고, 인질극을 벌인다고 치자. 테러 진압, 폭발물 제거, 인질 구출 등을 지휘할 사람은 누구일까. 정답은 “현재로선 없다”일 것이다. 1982년 제정돼 2009년 개정된 국가대테러활동지침엔 해양경찰청장이 해양테러대책본부장을 맡게 돼 있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 이후 해경청장 자리는 없어져 해양경비안전본부장으로 격하됐다. 그렇다고 재난 대응이 주 업무인 국민안전처장에게 대테러 작전의 지휘를 맡길 수도 없다. 결국 우왕좌왕하다 인질 구출의 ‘골든 타임’을 놓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번 파리 테러처럼 테러범들이 자폭한다면 배후는커녕 범인들의 신상조차 미궁에 빠질지 모른다.

 한국이 테러 안전지대라는 것은 착각이다. 시리아에서 교전 중 전사한 인도네시아인 이슬람국가(IS) 대원이 대구 성서공단에서 2년간 일한 것으로 드러났다. 위조 여권으로 입국한 인도네시아인 A는 북한산에서 이슬람 무장단체 ‘알누스라’의 깃발을 휘둘렀다. 지난해 호주 시드니의 한 카페에서 인질극을 벌여 시민들을 살해한 테러범들이 걸었던 깃발이다. 현행법으론 그를 처벌해도 단기 징역형에 국외 추방하는 선에서 그칠 것이다. 만약 A가 호주에서 이런 짓을 하다 걸렸으면 어떻게 될까. 최고 징역 25년을 받을 수도 있다. 영국·캐나다·호주 등은 테러단체 가입·지원은 물론 선전·선동만 해도 징역 10년에서 25년형으로 중벌하고 있다.

 2004년 캐나다 오타와에 살던 모하마드 모닌 카자와는 연방경찰에 체포됐다. 그는 영국에서 폭탄 테러를 일으킬 계획을 공모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받았다. 카자와는 테러방지법이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구체적인 테러 위험이 없는데도 너무 광범위하게 처벌해 헌법상 권리를 침해당했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대법원은 카자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테러단체의 능력을 증대시키는 다양한 활동을 범죄로 규정한 것은 테러 예방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테러는 사후 대응보다 사전 예방이 더 중요하다. 이미 발생한 뒤엔 아무리 빨리 제압해도 인명 피해를 면하기 어렵다. 사전 예방의 핵심은 강력한 테러 정보 수집 능력이다. 그러나 국정원은 테러 위험 인물이 입국해도 사전조사할 법적 권한이 없다. 2003년 국정원은 미국 중앙정보국(CIA)으로부터 알카에다 조직원에 대한 첩보를 받았다. “한 조직원이 미군기지 동향을 탐지하라는 지시를 받고 한국에 잠입했다”는 내용이었다. 국정원은 용의자가 국내에 불법 체류하다 강제 출국한 사실만 확인했을 뿐 그가 어떤 활동을 했는지는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테러가 글로벌화되면서 외국 정보기관과의 공조도 중요해지고 있다. 수사기관 간의 정보 교환은 ‘주고받기’가 원칙이다. 권한이 없는 국정원은 알짜 정보를 확보하기 힘들다. 결국 CIA 등의 정보를 기다리는 ‘천수답(天水畓)’식 정보 수집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테러 정보는 각 기관이 협력할수록 정교해진다. 마치 조각난 퍼즐을 맞추듯 국정원을 중심으로 경찰·검찰·법무부·외교부 등에서 모은 첩보를 결합하는 게 효과적이다. 미국은 17개 기관이 국가대테러센터(NCTC)라는 컨트롤타워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야권은 “국정원에 부적절한 일감 몰아주기”라며 테러방지 법안을 반대하고 있다. 테러방지법을 만든다고 모든 테러를 막을 순 없다. 그런데 이마저도 없다면 국제 테러세력이 방어에 허술한 한국을 노릴 가능성이 있다.

 상상하기도 싫지만 테러로 무고한 시민들이 숨졌다고 가정해보자. 우리 국회는 프랑스 의회처럼 대통령의 테러와의 전쟁 선포에 한목소리로 애국가를 합창할까, 아니면 테러에 늑장 대응했다며 대통령과 정부를 싸잡아 비난할까. 지난 16대 국회 때부터 현 19대 국회까지 테러방지 법안 처리가 무산된 과정을 지켜본 나에게 베팅하라면 후자에 걸겠다. 안타깝고 한심하지만 우리는 ‘IS의 총질’은커녕 ‘김기종의 칼질’도 못 막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정철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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