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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칼럼] 쇠파이프와 물대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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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대기자

정치인을 선도형과 수습형으로 나눌 수 있다.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사회의 갈등 요인을 먼저 파악해 미리 조정하는 정치인이 있는가 하면, 이미 벌어진 상황을 수습하며 따라가는 이도 있다.

 정치는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는 일이다. 미리 갈등 요인을 찾아 충돌을 예방할 수 있다면 최선이다. 그렇지만 대개 정치인은 이미 벌어진 상황을 따라간다. 그런 중에도 중심을 잡고 갈등을 정치권으로 끌어들여 조정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무게 중심을 정치권 밖에다 두고 끌려 다니는 사람도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마지막 유형에 가까워 보인다. 정국에 대한 장악력도, 시대적 과제를 주도적으로 제기하고, 끌고 가는 추동력도 보기 어렵다. 지난주 중앙일보 여론조사에서는 새정치연합 지지자의 60%가 ‘문 대표로는 총선·정권교체가 어렵다’고 응답했다. 그의 리더십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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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말 서울 시위에 대처하는 모습을 봐도 그렇다. 문 대표는 “농민들은 살기 힘들다고 호소한다 … 이런 말도 할 수 없다면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당연하다. 그런 말을 못하게 하는 사회가 어떻게 민주사회일 수 있나. 그런데 14일 사태가 그런 것이었나.

 문 대표는 군중을 좇아가는 데 급급하다. 자신이 목표를 제시하고 밀어붙이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목소리 큰 시민이 만들어놓은 국면에 편승한다. 그러니 갈등 해소는커녕 증폭만 시킨다. 지난해 8월에는 광화문으로 단식을 말리러 갔다가 주저앉아 동조 단식을 했다. 지난달에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국정교과서 반대 1인 시위를 했다. 누구에게 해결해 달라고 피켓을 든 것인가. 제1 야당의 대표가.

 과거 야당 지도자들은 정국을 끌고 갔다. 문제를 정치권으로 끌어들였다. 분명한 방향이 있었고, 넘치지 않게 한계를 그었다. 그러기에 협상이라는 정치가 가능했다. 비난도 받았다. 하지만 잘못되면 책임도 떠안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반발짝론’이나 ‘국회 중시론’은 그래서 나왔다. 그러나 문 대표의 중심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저 바깥만 쳐다본다. 결단하지 않으니 책임도 지지 않는다. 14일 집회에 대해서도 문 대표만의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14일 집회의 목적이 뭔가. 우리 기억에는 그저 시위대가 쇠몽둥이와 철제 사다리로 의경들을 찌르고, 경찰버스에 줄을 매달아 끌어당기는 장면, 살수차가 시위대를 향해 물과 캡사이신을 쏘아대는 장면만 남았다. 전쟁터 같은 증오와 욕설과 폭력이 범벅이 된 난장판이다.

 민생 문제? 노동개혁 반대? 국정교과서 반대? 그런 문제를 제기하려는 것이었다면 실패다. 그런 메시지를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시위대가 행진하며 외친 ‘박근혜 퇴진’만 메아리처럼 남았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도 “노동자와 민중이 분노하면 서울을 넘어 이 나라 전체를 마비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겠다”고 말했다. 박근혜 퇴진, 서울 마비가 목적이었나.

 시위대는 차벽을 허무는 데 매달렸다. 경찰차에 밧줄을 묶어 끌어내고, 차 속에 불탄 신문지를 집어넣고, 주유구에 불을 붙이기도 했다. 차벽을 지키는 어린 의경들에게 쇠파이프와 철제 사다리를 찔렀다. 청와대로 달려가서 무엇을 하겠다는 건가.

 차벽이 시위대를 자극했다고 한다. 차벽은 물리적 충돌을 줄이기 위해 노무현 정부 때 고안한 것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무(無)최루탄을 선언하고, 여경을 앞세워도 달라진 게 없었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는 ‘반체제’라는 말이 있었다.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독재체제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그때 경찰과 긴급조치 같은 법은 독재자를 보호하는 도구로 여겼다.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조롱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 체제를 소중히 여기는 시민이 대부분이다. 고난과 희생을 통해 만든 체제다. 미흡한 부분은 고쳐나갈 수 있는 절차도 보장돼 있다. 정권은 길어야 5년이다. 이제 누구도 법과 경찰을 독재자를 지키는 도구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젊은 의무경찰을 향해 쇠몽둥이를 휘두르는 일이 반복되어야 하나.

 시위 문화를 바꿔야 한다. 문 대표도 민정수석이었을 때는 “집회를 통한 의사표현 기회를 보장하고 있음에도 법질서 준수 의무를 지키지 않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시위대가 목소리를 내는 데 충분치 않다면 야당이 앞장서 법을 고쳐라. 대신 법은 엄중하게 지켜야 한다. 경찰이 법을 집행하는 것도 존중해야 한다.

 정치권이 할 일은 갈등을 길에다 던져두고 훈수하는 게 아니라 의사당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법과 원칙이 지켜지는 사회라야 힘없고, 목소리가 작은 사람들이 숨쉴 수 있다.

김진국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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