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커버스토리] 마음의 때도 씻겨주는 ‘신의 손맛’

기사 이미지

목욕탕은 가족과 혹은 낯선 사람과 맨살을 맞대고 때를 밀었던 추억의 공간이다. 이희승(40)씨가 아들 지민(8)군과 함께 목욕탕을 찾았다. 어린 아들에게 등을 맡긴 아버지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어렸다.


칼바람 불어오니 몸이 앞서 안달 내는 게 있다. 모락모락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온탕이다. 뜨끈뜨끈한 물에 온몸을 불리고 시원하게 때까지 밀면 세상 부러울 게 없는 계절이 돌아왔다.

목욕탕‘때밀이’의 추억


뭇사람이야 각질 한 꺼풀을 벗기러 찾는다지만, 목욕탕 한편에는 세월의 더께를 쌓는 이들이 있다. 반들반들 윤이 나는 고무 침대가 일터이고, 작업 도구는 때수건 한 장이 전부인 삶, 속칭 ‘때밀이’다. 요즘에는 몸을 씻어준다는 뜻에서 ‘세신사(洗身士)’로 부른다. 사전에는 없는 말이다.

경기도 포천 한화리조트 산정호수 안시 사우나에서 일하는 김진욱(가명·67)씨의 세신사 경력은 32년이다. 인생의 절반 가까이를 목욕탕에서 보낸 셈이다.

“때가 많이 나온다고 부끄러워하는 손님이 있어요. 저는 오히려 감사해요. 이게 내 밥벌인데. 얼마나 소중해요? 때 밀어서 집도 사고 아이들 건강히 길렀으니 더럽다고 생각 안 해요.”

한국인이 언제부터 때를 밀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1970년대 동네 대중탕이 늘어나면서부터라는 게 정설이다. 세신사가 목욕탕에 상주한 것도 그 즈음으로, 바가지로 물을 퍼서 목욕을 했던 ‘바지탕(바가지탕)’에서 구두닦이나 보일러공이 숙식을 겸하며 세신사로 일했다.

통계청은 99년에야 전국 목욕탕 개수를 헤아렸는데 집계 첫 해 전국 9868개, 서울 2163개의 목욕탕이 있었다. 2013년에는 전국 7818개, 서울은 1134개로 그 수가 줄었다. 동네 목욕탕이 하나 둘 문을 닫았지만 때밀이 수요는 꾸준했다. 바지탕의 세신사는 사우나로, 피트니스클럽으로, 특급호텔로 진출했다.

목욕탕 수를 바탕으로 추정하는 전국의 세신사는 현재 약 3만 명에 이른다. 버스안내원이나 식자공 등 수많은 직업이 사라졌어도 세신사는 우리 곁에 굳건히 살아남았다. 반세기에 이르는 세신의 역사가 곧 우리네 목욕의 역사일 수도 있겠다. 마땅한 호칭 없이 ‘아저씨’나 ‘아줌마’로 불렸던 세신사는 93년에야 비로소 통계청 한국표준직업분류에 ‘욕실종사원’으로 등장했다.

호텔 리츠칼튼 서울에 근무하는 김종빈(60) 세신사는 국내 1호 사우나로 통하는 서울 북창동 신신사우나에 73년 첫 발을 들였다. 64년 개장한 신신사우나는 정부 고위 관료와 한국은행 임직원이 드나드는 고급 사우나였다.

“높으신 분을 알몸으로 만나는데 어찌 긴장하지 않을 수 있었겠어요. 선배들이 손님을 상대하는 법, 때를 미는 기술을 조심스럽게 지켜봤습니다. 5년간 연습을 하고 나서야 이제 나도 때를 밀 수 있겠다 싶었죠.”

90년대 들어 세신사 중 일부는 서울 영등포와 종로 일대에 사설 학원을 개원하고 세신 기술을 가르치는 강사로 나섰다. 95년 개원한 한국피부목욕관리사교육원 박은혜(57) 원장의 말마따나, 세신 학원은 누군가에게 희망이자 꿈의 다른 말이었다.

“이 직업을 택한 사람 중에 사연 하나 없는 사람이 없지요. 체력과 배짱만 있으면 세신사로 제 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학원이 배출하는 세신사는 한 달에 20명 정도다. 세신기술·지압·마사지법 등 기술을 다 배우는데 120만원이 든다. 이 돈을 기꺼이 투자할 수 있는 것은 세신사가 ‘고소득’ 업종이라는 믿음에서다. 70년대 목욕비는 500원, 때 미는 비용은 1000~2000원이 기본이었다. 40여 년이 흘러 목욕비는 1만5000원, 세신비용은 2만5000원까지 올랐다.

“40년 전에는 2년 때를 밀면 집을 사고, 5년이면 작은 빌딩을 산다고 했어요. 지금은 월평균 300만원 정도 수입을 올리지요.”

 
기사 이미지

때를 미는 것은 한국식 목욕 문화다.


세신 강사 김정배(60)씨는 학원 출신 세신사가 인사를 하러 왔을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학원을 졸업하면 대부분이 동네 24시 사우나로 취직을 한다. 목이 좋은 곳은 세신 침대 하나를 임대하는데 자릿세·권리금 명목으로 보증금 1억원이라는 거금이 필요하다지만, 보통 동네 사우나 세신실 보증금은 200만~500만원 선이다.

목욕탕에 자리를 잡았다고 해서 세신사의 삶이 녹록한 것은 아니다. 세신 침대는 술주정 부리는 사람, 돈을 안 주고 도망가는 사람, 피부가 벗겨졌다며 보상금을 요구하는 사람 등등 온갖 인간군상의 민낯을 마주하는 자리다. 아직 사회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세신사 대다수는 가족에게 폐가 될까 싶어 얼굴은 물론이고 실명을 공개하는 것도 꺼렸다.

“하루 종일 눅눅한 습기 속에 있으니까 쉬는 날에는 무조건 볕을 쐬러 밖으로 나가요. 만성 어깨 결림에 시달리는 동료도 많고요.”

서울 한강로동 드래곤힐스파에서 만난 25년 경력의 세신사 임지은(59)씨가 고충을 털어놓았다. 몸도 마음도 고된 일이지만 하나 둘 단골이 늘어날 때는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단다. 90년대 들어서는 ‘때밀이 관광’으로 대거 한국을 찾은 일본인 덕분에 신바람도 났다.

“때요? 제 인생과 떼려야 뗄 수 없죠. 때 없이 사는 사람이 있나요?”

어디 때와의 인연이 세신사에게만 있을까. 이 땅에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날카로운 때밀이의 추억’ 하나쯤은 갖고 있다. 억척스러운 엄마 손에 피부가 벗겨지도록 때를 밀리기도 했고, 손아귀에 악력이 생긴 다음부터는 낯선 이와 품앗이로 등을 밀어줬다. 목욕탕은 맨살을 맞댔던 공간이며, 때밀이는 정을 나눴던 시간이다.

하여 연말연시 서늘해진 마음에 ‘때’의 추억을 상기한다. 푸근했던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때를 밀면서 달래고 싶다. 베테랑 세신사를 찾아가도 좋고, 늙은 부모의 처진 살을 어루만져도 좋고, 다 큰 줄 아는 아이에게 등을 맡겨 봐도 좋다. 묵은 때 벗기다 보면 마음의 때까지 씻겨 내려갈지 모를 일이니.


[관련 기사] │ 서울·수도권 ‘때밀이’ 명가 6곳
[커버스토리] 구석구석 꼼꼼하게, 반질반질 윤이나게

[관련 기사] │ 목욕 필수품 때수건
진화하는 ‘이태리 타월’ 요술때장갑 ‘때르메스’도


글=양보라 기자 bora@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