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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옷은 백자 달항아리 스타일, 한국 문화에 스토리를 입혔죠”

패션 디자이너 진태옥(81). 현역으로 활동중인 국내 패션 디자이너 가운데 경력이 가장 오래됐다. 1965년 여성복 프랑소와즈를 시작했으니 옷과 함께한 지 올해로 꼭 50년째다. 지난해까지 시즌마다 새로운 컬렉션을 선보이는 패션쇼를 열었고, 지금도 매일 작업실로 출근해 디자인부터 품질검사까지 모든 공정을 직접 챙긴다.

패션 인생 50년, 진태옥 디자이너

그의 패션 인생 50년을 기리는 전시회 ‘앤솔로지(ANTHOLOGY: Jinteok, Creation of 50 Years)’가 지난 8일 서울 동대문 디자인프라자(DDP)에서 막을 내렸다. 전시된 작품 80여 점은 디자이너 진태옥 개인의 역사이자 한국 패션사의 한 장(章)의 기록이다. 진태옥 디자이너의 패션 세계를 들여다봤다. ‘집념’이란 단어를 빼놓고는 그를 설명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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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의 초충도(풀과 벌레를 소재로 그린그림)를 자수로 옮겨놓은 조끼 [사진 JINTEOK: ANTHOLOGY]

진태옥 디자이너를 만난 이유는 그가 50년을 패션 디자이너로 살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세계 패션계가 한국 패션계 최고 원로인 그를 가장 창의적인 한국 디자이너로 주목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유명 패션 저널리스트인 수지 멘키스는 “진태옥의 옷은 시와 같다”고 표현했다. 영국의 예술전문 출판사 파이돈은 ‘20세기를 빛낸 패션인 500인’(1999년)에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진태옥을 선정했다.

전시회에서 만난 진태옥 디자이너는 올 블랙 차림이었다. 슬림한 상의, 통이 넉넉한 바지는 요즘 유행하는 ‘꾸미지 않은 듯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세련된 놈코어’ 스타일이었다. 그는 쏟아지는 언론의 인터뷰 요청과 사진 촬영을 매끄럽게 소화해 낼 정도로 기운이 왕성했다. 그 에너지의 원천은 웬만한 젊은이도 흉내내기 어려운 운동량과 끊임없는 호기심에서 오는 듯했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신문 두 개를 첫 페이지부터 끝 페이지까지 샅샅이 읽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사람 사는 이야기가 참 재미있어요. 운동은 일주일에 2~3번 하는데, 한 번에 3시간씩 해요. 스트레칭 20분, 근육 운동 30분 한 뒤 1시간 동안 3.5㎞를 걸어요. 수영도 하는데, 한 번 입수하면 1000m를 오갑니다.”

날씬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 평생 노력하다 보니 놀라울만한 운동량이 습관으로 굳어졌다. 그는 매일 서울 청담동에 있는 작업실로 출근한다. 디자인 스케치를 하고, 패턴·샘플·가봉도 직접 한다. 가봉·샘플·품질 검사 등 단계마다 옷을 직접 입어본다.

“피팅 모델을 쓸 수도 있지만 그러면 옷의 진짜 느낌을 알 수가 없어요. 여유분도 디자인인데, 얼마나 편한지는 입어봐야 알거든요. 옷 한 벌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4차례 입어보는데, 모두 내가 직접 합니다. 평생 저녁밥을 두 숟가락 이상 먹지 않았어요. 대신 아침은 과일·채소·유제품을 골고루 먹고, 점심은 잘 챙겨 먹지요.”

 
운명처럼 디자이너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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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디자이너 진태옥. 1965년 여성복 프랑소와즈를 시작한 이후 50년간 옷을 만들었다. 그는 ?내면이 채워져 당당한 여성이 아름답다?고 말했다.

그는 함경남도 원산이 고향이다. 14살이던 1948년, 온 가족이 보따리 하나씩 들고 남으로 왔다. 피난중 천막 학교에서도 공부를 제법 잘해, 선생님들의 권유로 서울대에 지원했는데 낙방했다. 그때는 재수한다는 개념이 없었다. 공교롭게 미국 유학 시험도 떨어졌다. 실망감에 1년 넘게 두문불출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 광교 근처를 지나다 ‘노라 노 의상실’ 쇼윈도 앞에 섰다.

“무언가에 이끌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노라 노(87) 선생님이 긴 속눈썹에 화려한 매니큐어를 한 채 긴 담뱃대를 물고 앉아 있었는데,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는 거에요. 이 길을 가리라 결심한 순간이었죠.”

패션 디자인 학원을 찾아가 바느질부터 배웠다. 미8군이나 일본에서 패션 잡지를 구해다 보면서 감각을 키웠다. 한 의상실에 들어가 요즘으로 치면 무보수 인턴, ‘열정 페이’를 받고 일했다. 제일 먼저 출근해 청소하고, 원단과 주문서를 순서에 맞춰 쌓아놓고, 핀 쿠션에 핀을 촘촘히 꽂아 놓고 ‘디자이너 선생님’을 기다렸다. 가끔 디자이너가 없을 때 치수를 재거나 가봉을 하러 오는 손님들이 있었다. 디자이너 몰래 손님 치수도 재고 스타일도 잡아줬다. 몇 차례 호되게 혼이 났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일부러 그를 찾아오는 손님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1980년대 말 서울 컬렉션을 도입하는 데 앞장선 일화가 재미있다. 파리·밀라노 같은 패션 도시들은 해마다 봄·가을로 패션위크를 열어 자국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무대에 선보일 수 있게 했다. 한국 디자이너들도 작품을 뽐낼 무대가 있어야 패션이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패션쇼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문제는 그때까지 제대로 된 패션쇼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패션쇼 입장권을 구할 길이 없어서 일단은 도쿄에 있는 이세이 미야케 매장에 갔습니다. 지금 돈으로 수천만원어치 옷을 산 뒤 ‘패션쇼 티켓을 구해주지 않으면 모두 환불하겠다’며 떼를 썼어요. 점원이 난감해 하면서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더니 파리에서 열리는 이세이 미야케 쇼 티켓 한 장을 구해줬어요. 박윤수·설윤형씨 등 동료 디자이너 7명과 파리로 갔습니다.”

 

입장권은 한 장인데요.

 “현장에서 부딪혀 보기로 했어요. 멀리서 어렵게 왔는데 들여보내 줄 수 없느냐고 애원했는데, 당연히 거절당했습니다. 내가 티켓을 들고 먼저 들어간 뒤 핸드백에 넣어 담장 밖으로 휙 던졌어요. 다음 사람이 들어오고, 또 그 다음…. 결국 7명 모두 들어가 쇼를 봤습니다. ‘함경도 또순이’가 따로 없지요. 쇼를 보고 나니 ‘이런 세상도 있구나’ 감탄했습니다. 패션이 예술의 경지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 한국 패션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요.

"국력과 함께 한국 문화와 패션에 대한 대접도 한층 올라갔어요. 세계로 진출할 절호의 기회에요. 1985년 한·불 수교 100주년을 기념해 파리에서 패션쇼를 했는데, 현지 반응이 ‘파리가 한 마리 지나갔나’ 정도였어요. 올해 수교 130주년 기념 패션전시회에도 참여했는데, 현지에서 호평을 받았습니다. 격세지감이에요.”

 
화이트 셔츠와 절제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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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태옥 디자인의 상징인 화이트 셔츠는 심플하지만 구조적인 미학을 보여준다. [사진 JINTEOK: ANTHOLOGY]


그는 1993년 파리 프레타포르테(기성복 패션쇼)에 진출했다. 그때의 충격은 이후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됐다. “기자회견에서 프랑스 기자가 ‘진태옥은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을 했어요.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평생 받아본 적이 없는 질문이었거든요. 너무 당황해서 엉뚱한 말을 했어요.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온 사람’이라고.”(웃음)

 

왜 그런 질문을 했을까요.

“프랑스와 유럽에서 패션은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정신과 철학이 바탕이 돼야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어요. 무대는 드라마가 있어야 하고, 보는 이들에게 시 한 편, 연극 한 편을 보는 것 같은 감동을 주는 컬렉션을 내놓아야 인정을 받는 겁니다. 이후 진태옥은 누구이고, 진태옥의 옷은 어떠해야 하는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진태옥의 옷은 어떤가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 옷은 어렸을 적 집안 뒤주 위에 놓여 있던 백자 달항아리를 닮았어요. 흰색은 모든 색과 빛을 다 빨아들여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요. 한국적 문화 유산을 활용해 옷에 스토리를 입혔습니다. 그래서 동양적 절제의 미학이 깃들여있다는 평가를 해주시는 것 같아요.”

화이트 셔츠는 진태옥 디자이너의 상징과도 같다. 셔츠의 길이와 품, 목선과 앞선, 깃 등을 자유자재로 변주해 중성적인 느낌이면서도 여성미를 드러내는 마법을 부린다. 빳빳한 하얀 무명천, 하늘거리는 쉬폰, 촘촘한 레이스가 그의 손을 거치며 여성의 아름다움을 한껏 드러내는 옷으로 태어난다.

최근 한 패션 잡지가 10대와 20대 여배우에게 진태옥 디자이너의 옷을 입힌 화보를 찍었다. 팔순이 넘은 디자이너가 만든 옷은 앳된 여배우들을 더 싱그럽게 보이게 했다. 칼 라거펠트(82) 샤넬 수석 디자이너의 옷이 16세인 모델 릴리 로즈 뎁에게 더 없이 잘 어울리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젊은 감성을 유지하는 비결은 뭔가요.

"끊임없이 더듬이를 세워 새로운 조류, 문화 트렌드를 읽으려고 노력해요. 새로운 곳에 가면 무엇이 나를 끌어당길까, 나에게 놀라움을 줄까 하는 호기심과 기대감에 마음이 콩콩 뜁니다. TV에 지드래곤이 나오면 눈을 떼지 못해요.(웃음) 하지만 역설적으로, 트렌드에 너무 치우치지 않기 때문에 옷이 동시대성을 띄는 것 같습니다.”


글=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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