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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진화하는 북한 경제, 진화 없는 대북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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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1960∼80년대 최고의 경제학 교과서는 새뮤얼슨의 『경제학 원론』이었다. 전 세계에 400만 권 넘게 팔린 이 책의 저자 새뮤얼슨은 정부의 경제 개입이 필요함을 강조하는 케인스주의자였다. 그런데 80년대 중반에 낸 개정판에는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고 화폐 공급의 준칙을 따르는 통화주의 입장이 대거 반영됐다. 사람들이 새뮤얼슨에게 왜 입장이 바뀌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현실이 변하면 정책도 바뀌어야 한다.”

 북한은 변했다. 지금의 북한은 사회주의 중앙계획에 입각한 폐쇄경제가 아니다. 90년대 중후반 북한의 극심한 경제위기는 북한 주민을 장마당으로 내몰았다. 외화를 벌기 위해 기관과 기업이 무역을 하는 것도 허락됐다. 이는 개인과 기업의 시장 활동을 금지하고 단일 국가기관만 대외 무역을 수행하는 전통적인 사회주의로부터 크게 이탈한 것이다. 더욱이 김정은 정권은 시장 활동을 묵인함으로써 2000년대 후반의 시장 억압정책과 다른 노선을 취하고 있다. 이에 따라 90년대까지만 해도 돈이 있어도 살 물건이 없던 경제가 이제는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살 수 있는 경제로 바뀌고 있다. 중국 단둥의 전자제품점, 한국 제품점의 주요 고객은 북한 사람이다. 최신 아이패드와 노트북, 한국산 밥솥과 국수 기계 등을 마음대로 사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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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성인의 50%만이 사회주의 직장에서 일하는 반면 장사, 밀수, 개인서비스 제공, 가축 사육, 텃밭 재배와 같은 사(私)경제 활동에 종사하는 사람은 성인의 70%가 넘는다. 사경제 활동 참여는 거주 지역, 공산당원 여부, 교육 수준 등과 통계적으로 무관하다. 즉 거의 모든 북한 주민 그룹이 이를 통해 먹고산다. 공식 직장에서 받는 월급은 생활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머지 생활비는 다른 가족이 시장에서 일하거나 뇌물을 받아 메꾸고 있다. 무역과 시장 활동을 통해 돈을 모은 사금융업자, 즉 돈주는 권력과 결탁해 아파트 개발과 분양에도 참여한다. 이들을 통해 평양의 아파트가 20만 달러에 분양되기도 했다.

 북한의 시장과 무역은 밑에서부터 북한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국가가 관장하는 영역 밖에 시장이라는 새로운 공간이 생겨난 것이다. 하나로 뭉쳐 수령을 위해 돌격하자는 정신교육을 받았던 주민들은 시장에서는 하나가 아니라 “나와 너”가 돼 경쟁해야 먹고살 수 있음을 배운다. 한 번도 주체적으로 결정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결정과 행동에 따라 돈을 벌기도, 잃을 수도 있음을 체험한다. 여기서 개인주의가 싹트고 최고지도자가 아니라 자신이 삶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배운다. 북한의 시장은 북한 내 자본주의 정신의 인큐베이터다. 생존과 풍요의 추구라는 인간 본능에 기초한 시장은 한 번 둥지를 튼 이상 확장과 포섭을 통해 인간과 세상을 지배하려 한다.

 무역과 시장은 북한의 4차 핵실험을 막는 데도 기여하고 있다. 김정은은 10월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 70주년 열병식 연설에서 인민이라는 단어를 97번 반복했다. “위대한 인민, 사랑하는 인민”을 여러 번 외쳤다. 그의 통치코드는 “공포와 인민”이다. 엘리트는 공포로 통제하고 인민은 친밀감으로 끌어들여 이를 통치 기반으로 삼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북한 인민 대부분의 생명줄은 시장이다. 그가 핵실험을 감행한다면 매우 강화된 형태의 경제제재가 불가피할 것이며 중국과의 경제 거래도 위축될 것이 분명하다. 남북 경제협력의 가능성도 물 건너갈 것이다. 그 결과 무역뿐만 아니라 시장의 수요·공급이 줄어 주민 생활은 어려워질 것이다. 이는 인민생활 향상이라는 그의 약속을 거짓으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를 아는 그는 핵실험을 하지 않고 열병식 연설에서 오히려 인민을 강조한 것이다.

 이전과 달리 새로운 핵실험은 북한 정권의 권력 기반을 흔들 수 있다. 북한 엘리트는 대외 거래에서 오는 외화 수입의 감소를 싫어하고 북한 주민은 시장 활동의 축소로 고통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목소리로 군사강국을 외치던 때와 달리 무역과 시장은 북한 안에 핵실험을 반대하는 세력을 심어놓았다. 북한 정권이 추가 핵실험을 하면 국제사회의 제재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무서운 내부의 경제적 압력에 시달릴 것이다. 즉 시장과 무역이 핵실험의 기회비용을 증가시킨 것이다.

 북한의 시장과 무역은 바람직한 대북정책과 남북 경제통합을 위한 기회의 창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이를 이용하지 못한 채 제재와 압박만으로 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졌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에도 북한의 시장과 무역에 대한 심각한 고려는 보이지 않는다. 북한 경제와 사회는 변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은 진화하지 않고 있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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