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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미친 사람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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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까칠한 시선]
제대로 미친 사람을 찾습니다


"많은 예술가는 광인을 자처한다. 예술계는 숨 막히는 일상을 멈춰줄 그런 미친 사람을 기다린다."

미쳤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 두 개의 빌딩 사이에 와이어를 설치하고 한 남자가 휘청휘청 줄타기를 시작할 때, 모두가 그를 보고 외쳤다. 미쳤다. ‘하늘을 걷는 남자’(10월 28일 개봉,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는 1968년 세계 최고 높이의 건물이 될, 뉴욕 월드 트레이드 센터 사이를 줄 하나를 두고 걸었던 남자 필리페 페팃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래, 그는 미쳤다. 그가 이렇게 위험천만한 일을 하는 데 어떤 실리적 동기는 없다. 누가 이 줄을 건너면 큰 돈을 주겠노라 한 것도 아니고, 뉴욕시에서 어마어마한 퍼포먼스를 제안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그저 그 곳에 줄을 매달고 걷고 싶을 뿐이었다. 왜? 너무 아름다운 건물이고,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줄타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미쳤다. 세상에, 생기는 것도 없는데 목숨을 걸다니!

하지만 우리는 지금 그를 사고뭉치가 아니라 예술가라 부른다. 영화 속에서 그는 스스로를 예술가라 부르고 자신의 줄타기를 쿠데타라 칭한다. 판에 박힌 일상을 일순간 휘젓는 것, 매일 매일 출근하던 평범한 아침 거리에 동요를 일으키는 것, 그것이 바로 쿠데타다. 정확히 말하자면 예술가들이 말하는 쿠데타다. 아무런 목적 없는 동요, 사심 없는 충동, 그러한 에너지가 모이는 곳. 그곳이 바로 예술·영화계다. 이처럼 일상의 질서를 교란하고 전복하는 예술가들은 광인과 다를 바 없이 취급되기도 한다. 이젠 우리에겐 국보급 예술가이지만 처음 백남준이 멀쩡한 브라운관을 부수고, 연결할 때만 해도 그는 광인처럼 여겨졌다.

때때로 많은 예술가는 스스로 광인임을 자처한다. 오정희의 소설 『옛우물』(1994, 청아출판사)에는 막히는 도로 한복판에 서서 수신호를 보내는 미친 여자의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그의 등장으로 신호등은 무색해지고, 도로는 돌연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문제는 신호가 있는 사거리에서, 누구도 그의 수신호를 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미친 여자의 수신호는 삶의 원활한 흐름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흐름을 끊고 색다른 쉼표를 찍어낸다. 그게 바로 사거리 미친 여자의 효과이며, 예술이 기계적인 삶에 주는 효과다. 그러므로 예술계는 이 미친 사람들의 등장을 언제나 기다린다. 숨막히는 일상의 도열을 멈춰 줄, 뻔한 컨베이어 벨트 위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어 줄, 그런 산뜻한 미친 여자와 미친 남자를 기다리는 것이다.

‘검은 사제들’(11월 5일 개봉, 장재현 감독)이 반가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구마 의식에 매달리는 두 명의 사제를 그린 이 이야기는 완전히 미쳤다. 좋은 의미로 말이다. 우선 우리에게 완전히 낯선 구마 의식이라는 것에 미쳐 있다. 이는 한국 영화계의 희귀종인 오컬트 장르에 장재현 감독이 완전히 빠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화를 보면 소녀가 어떻게 악마에 사로잡히고, 주인공들의 트라우마는 무엇이며, 도대체 무엇이 괴로운지에 대해서 무뚝뚝하게 건너 뛰어 버린다. 무려 40여 분간 상영 시간의 3분의 1을 순수하게 구마 의식 재현에 바치는 것이다. 굿을 보러 왔으면 굿을 봐야지 뭔 놈의 사연이냐는 듯 저돌적이며 불친절하다. 그런데 이 불친절함 가운데 어떤 구체적 세계에서 단단히 미친 한 광인의 힘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예술의 힘이다. 적당히 장르의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이야기를 실어 나르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고집 피울 줄 아는 것, 그게 바로 예술을 아는 광인에게 허락된 집중력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 영화계에는 미친 사람이 더 많아져야 한다. 그들이 많아지는 만큼 숨 쉴 곳도 많아질 테니.


글=강유정. 영화평론가·강남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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