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눈물도 공감도 노동이다, 때론 나만 생각하는 시간을

 
기사 이미지


안 친한 동료의 퇴직에도 눈물이

나도 모를 내 감정에 대한, 비슷하지만 다른 두 사연입니다.

01 남의 아픔이 내 슬픔같이 느껴져
 
Q (툭 하면 울음보 터지는 훌쩍녀) 저는 눈물이 참 많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눈물이 나서 참 곤란한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사람이 이런 일에 이성적으로 잘 대처하는 걸 보면 존경스럽습니다. 저와 평소 친하지 않았던 동료와 퇴직 등으로 헤어질 때도 눈물이 납니다. 이런 경우는 저 스스로 저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눈물과 감정이 어떤 연관이 있는지요.

A (‘눈물은 공감의 다른 말’이라는 윤 교수) 눈물은 생리학적으로 눈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액체입니다. 그 눈물이 안 나와 안구건조증으로 고생하는 분들도 많죠. 인공 눈물을 돈을 주고 사서 넣어 줘야 하니 경제적 손실까지 생깁니다. 그런 측면에서 눈물이 많다는 사연을 주신 분은 생리학적 측면에선 건강하신 겁니다. 눈물이 많다고 꼭 눈물 흘릴 일은 아닙니다.

 물론 눈물은 생리학적 기능만 하는 건 아니죠. 운다는 것, 강렬한 감정 표현입니다. 슬프다고 말하는 언어적 소통보다 더 상대방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눈물이 많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나의 공감 능력이 크고 감정 표현도 풍부하단 얘기죠. 억지로 울음을 참지 마세요. 눈물에 섞여 나오는 내 감정이 감정을 순화시켜주고 상대방에게 내 감정을 잘 전달해 주는 메신저 역할도 해주니깐요.

 사연처럼 정서적으로 먼 사람과 헤어질 때도 눈물이 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공감 능력이 크다는 것입니다. 슬픔이 느껴져야 울어야겠다는 신호가 자연스럽게 발생하니까요. 공감은 타인의 고통이나 슬픔이 내 통증처럼 느껴지는 심리 현상입니다. 공감은 생각하는 사고의 영역이 아니죠. 그래서 ‘오늘부터 타인을 공감하도록 노력해 보세요’라는 건 좋은 말이긴 한데 쉽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마치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분한테 ‘오늘부터 마음 편히 먹고 푹 자 보세요’라고 하는 것처럼요. 잠도 공감도 내가 의지로 조정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이렇듯 공감은 자연스러운 감정 반응이고 태어나길 공감 능력이 더 좋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타인에 대한 공감은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감정 노동입니다. 내 인생의 슬픔도 처리하기 바쁜데 남의 슬픔까지 떠안아야 하니깐요. 그래서 공감 능력이 좋은 분들의 경우 더 쉽게 뇌가 피로해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치매 어르신처럼 오랫동안 가족 간호가 필요한 경우에 공감 능력이 좋은 가족이 간호를 담당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변에서 ‘미안하다’고 칭찬을 해주기도 하지만 자신이 직접 돌보아 드리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을 합리화하기 위해 ‘당연한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는 가족들도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 말들은 간병하는 가족의 마음을 더 지치게 합니다. 연구에서도 치매 같은 만성질환의 가족 간병은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이라고 분석합니다. 실제로 치매 어르신 진료를 하면 환자분보다 돌보는 가족의 마음을 도와드리는 것이 더 중요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본인이 지치는 게 가장 큰 문제지만 치매 어르신을 제대로 돌볼 수 없는 게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이럴 때 이기적인 휴식을 권해 드립니다. 잠시 공감의 스위치를 끄고 충전의 시간을 가지라는 건데요. 여기서 이기적이라는 것은 내가 에너지를 받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반대로 이타적이라는 건 내 에너지가 타인에게 발산되는 거라고 할 수 있겠죠. 공감 능력이 좋을수록 이기적 휴식을 잘 취해야 지속해서 타인을 잘 위로해 줄 수 있습니다. 당당하게 정기적으로 다른 가족에게 간호를 맡기고 나만의 휴식 시간을 갖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이 되겠습니다.

02 억누를수록 튀어나오는 감정

Q (적선 안 해 종일 미안한 직장인) 오늘 집을 나서 출근을 하고 있는데 행색이 초라한 할머니가 제게 와서는 ‘배가 고파서 그런데 100원만 달라’고 하셨어요.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이 스쳤습니다. 그리고는 순간 제 입에서 “할머니, 제가 돈이 없어서요”란 말이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그 앞을 휙 지나가 버렸어요. 처음엔 ‘잘했어. 저런 사람들한테 돈을 주면 안 되지. 노력도 안 하고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한테 가서도 맨날 구걸하며 살아갈 거야’라고 생각했죠. 근데 갑자기 ‘100원이라도 줄 걸 그랬나. 좀 말라 보이던데 진짜 굶고 다니시나. 맘이 너무 아프다’라는 생각에 오랫동안 그 할머니 생각을 하면서 한숨을 푹푹 쉬었습니다. 저 왜 이러죠.

A (어떤 감정도 내버려 두라는 윤 교수) 감정은 내가 의지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서 자동으로 생성되는 거죠. 물론 불편한 사람을 보며 억지웃음을 지을 순 있지만 그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얼굴 근육을 이용해 웃는 얼굴을 만들어 내는 것이지 속마음까지 웃고 있는 것은 전혀 아니죠.

 이렇게 자동 생성되는 감정이 예쁘기만 하면 좋을 텐데 우리 마음엔 이기심, 질투, 성적 욕구 같은 감추고 싶은 것들로 가득합니다. 물론 그것들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이기심과 질투는 경쟁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욕구이고 성적 욕구도 생물학적 2세를 만들어 인류를 존속시키는 데 필수적이죠. 그러나 그 감정들은 19금처럼 무의식에서 튀어나옵니다. 내가 인식하게 되면 스스로 민망한 감정이 듭니다.

 그럴 때 그 민망함을 털어내기 위해서 쓰는 방어법 중 하나가 자기 합리화입니다. 오늘 사연에서 ‘내가 도와주면 계속 구걸하며 살아갈 거야’라 한 부분이죠. 그러나 감정은 에너지라 잠깐은 자기 합리화로 찍어 누를 수 있지만 딴생각을 하는 사이 그 감정이 수면 위로 확 튀어나올 수 있습니다.

 20대 초에 영화를 보다가 너무 열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영화가 지극히 중요한 장면에서 가위질을 당해 갑자기 장면이 다른 상황으로 점프해 영화에 몰입했던 감정이 팍 깨어날 때였죠. 우리가 영화를 보는 이유 중 하나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에 우리의 감정을 몰입시키는 겁니다. 그 몰입에서 감동하고 그로 인해 나를 돌아볼 기회도 얻게 됩니다. 그런데 영화에 가위질하면 영화가 나는 ‘뻥이다’라고 하는 셈이니 영화 보는 재미가 뚝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당시 도대체 누가 내 허락도 없이 영화에 가위질하는 것이냐며 울분을 토했던 기억이 납니다. 가위질하는 본인들을 다 보았을 것 아니냐며, 이런 말도 안 되는 권위적 통제가 어디에 있느냐며.

 우리 마음엔 이타심과 이기심이 공존합니다. 그래서 가위질이 필요 없는 건전한 감정 반응을 만들어 낼 때도 있지만 내가 봐도 부끄럽고 남이 볼까 걱정되는 감정도 만들어 내죠. 그런 감정에 대해서 스스로 가위질을 하기 쉬운데요. 자기 합리화를 할 수도 있고 억지로 불편한 마음을 없애려는 억압 등 여러 형태의 가위질을 마음에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감정은 에너지이기에 억지로 가위질을 하면 더 강력하게 튀어 올라 나를 곤란하게 할 수 있습니다.

 
기사 이미지
 우리가 아름다운 영화만 보진 않죠. 때론 우리의 검은 욕구로 가득한 영화를 보면서 인간 이해를 통한 또 다른 감동과 성숙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비평가들은 후자 형태의 영화를 더 예술적 가치가 있다 평가하기도 합니다.

  우리 마음이 만들어 내는 영화에 대해서도 검열 없이 보는 여유가 필요하다 생각됩니다. 개인의 생존만 생각하는 이기심도, 이기적 행동만으로 사회가 유지될 수 없기에 ‘고급진’ 쾌감을 주도록 진화된 이타적 감정도, 모두 자연스럽고 필요한 것들입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