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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개혁파’ 복권 움직임 … “시진핑 온다더라” 고향 들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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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샤오핑(왼쪽)과 후야오방이 나란히 서서 행진 중인 군 부대에 경례하는 모습. 1982년 후야오방을 공산당 총서기로 발탁한 사람도, 87년 실각시킨 사람도 모두 덩샤오핑이었다. [예영준 기자],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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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년 후야오방의 영정을 든 천안문 광장의 민주화 요구 시위대. [예영준 기자], [중앙포토]

‘비운의 개혁파’로 불리는 후야오방(胡耀邦·1915~1989)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오는 20일로 탄생 100주년을 맞는다. 이를 계기로 후야오방의 명예회복과 복권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후난성 후야오방 생가기념관 르포
정치·사회 개혁 추진하다 실각
숨진 해 천안문 민주화 시위 이어져
‘청렴’ 각인 … 부패 척결과 맞닿아
시 주석 부친 복권 앞장선 인연도

 1982년 공산당 최고위직인 총서기가 된 그는 경제체제 개혁에 주력한 덩샤오핑(鄧小平)보다 더 진보적인 입장에서 정치·사회 개혁을 추진했다. 보수파들의 반대에 부딪힌 후야오방은 학생들의 민주화 시위에 동정적인 입장을 취하다 87년 실각했다. 89년 4월 후야오방의 사망으로 촉발된 학생들의 민주화 요구시위는 천안문사태의 비극으로 이어졌다. 이 때문에 중국에선 최근까지 후야오방을 공개적으로 거명하는 것조차 금기시되어 왔다.

 일요일인 15일 후난(湖南)성 류양(瀏陽)시 중허(中和)진의 생가에 조성된 기념공원에는 추모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관리소 측은 “수개월간 보수작업을 거쳐 깨끗하게 재단장했는데 오늘 하루 참관객이 4000∼5000명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생가 한쪽 벽에 걸린 그의 사진 앞에는 단체추모객들이 헌화한 꽃다발들이 놓여 있었다. 류양에 산다고 밝힌 장(張)노인은 “손녀 다섯 명에게 현장 학습도 시킬 겸 생가를 찾았다”며 “야오방 동지가 계속 집권했으면 중국 사회는 지금과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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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야오방 탄생 100주년을 닷세 앞둔 15일 후난성 류양시에 있는 후야오방의 생가 앞에서 추모객들이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예영준 기자], [중앙포토]

 기념공원 곳곳에선 후야오방의 복권이 임박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생가 맞은 편 2층 건물에 마련된 진열관은 20일 재개관을 앞두고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아직 미공개 상태의 진열관에 들어가 전시 내용을 확인해 봤다. 서문 격의 패널에는 “후야오방은 혁명 생애 60년 동안 중국인민의 해방과 행복을 위해, 개혁개방 실천과 현대화 건설을 위해 불후의 공훈을 세웠다”며 “그의 공적과 뛰어난 품성은 영원히 당과 인민의 마음 속에 기억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 관계자는 “전시물들은 모두 상급 기관의 승인을 받아 설치되는 것”이라고 말해 후야오방에 대한 재평가가 반영됐음을 내비쳤다. “인민에게 비판의 자유를 주라”는 1948년 후야오방의 어록이 새겨진 패널도 눈에 띄었다.

 후야오방은 ‘청렴한 지도자’란 이미지가 대중들에게 각인돼 있다. 기념공원에선 이를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반부패 캠페인과 연결짓는 전시물도 보였다. 역대 중국 지도자들의 어록에서 고른 글귀를 새긴 ‘비림(碑林)’의 내용은 모두 다 ‘청렴’ ‘탐관 척결’ 등을 강조한 내용이었다. 주차장 앞 광장은 ‘동상광장’으로 이름붙여져 있지만 아직 동상은 설치되지 않은 상태였다. 후야오방의 사촌동생이라고 밝힌 후야오구이(胡耀貴)는 “내년 4월 기일에 맞춰 동상을 제막할 예정으로 국무원 비준을 받은 상태”라고 말했다.

 지역 주민들 사이에선 20일 시진핑 주석이 후야오방의 생가를 찾을 것이란 소문까지 나돌고 있었다. 한 택시 기사는 “류양 시내에서 생가까지 새로 길을 닦았는데 20일 국가지도자가 온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말했다. 도로 주변에 잔디를 심는 등 조경 공사가 한창인 게 이런 소문을 부추긴 듯했다.

 소문의 진위와 관계 없이 공산당 차원에서 후야오방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를 여는 건 확실하다. 공산당은 ▶전승 70주년 ▶쭌이(遵義)회의(마오쩌둥이 공산당 실권을 장악하는 계기가 되었던 회의) 50주년 등과 함께 후의 탄생 100주년을 올해의 4대 기념행사로 꼽았다.

 시 주석 가문과 후야오방의 인연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후야오방은 공산당 조직부장 시절 문혁 때 실각한 시 주석의 부친 시중쉰(習仲勳) 전 부총리의 복권에 앞장섰고 시중쉰은 87년 당 지도부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후야오방의 복권에 반대했다.

 시 주석은 20일 후야오방을 추모하는 좌담회를 주재하면서 그를 재평가하는 발언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후야오방의 실각 원인이 된 정치개혁에 대해서는 여전히 언급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생가 진열관의 새 전시물도 후야오방의 1985년 티벳 방문 사진 뒤에 89년 그의 사망사실을 알리는 부고 기사로 건너뛰고 만다. 후야오방이 재임 중 주장한 당정(黨政)분리와 시민의 자유 확대 등은 아직까지도 중국 체제에서 용인되지 않고 있다. 중국 공식 역사에서 지워졌던 후야오방의 행적이 복원되더라도 완전한 재평가는 시기상조란 얘기다.

류양=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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