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고수석의 대동강 생생 토크] 북·중 교역 첨병 화교들, 장마당 주무르며 ‘돈주’로 등장

기사 이미지

중국으로 통하는 신의주에서 북한 화교를 비롯한 보따리상이 출경을 기다리고 있다. [KBS 화면 캡처]

북한엔 중국 국적을 가진 화교(華僑)가 8000~1만 명 정도 살고 있다. 주로 평양과 신의주, 청진 등에 산다. 세계 각국의 화교에 비해선 크지 않은 인구규모다. 하지만 이 화교들이 북한 ‘장마당’(비공식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최근 북한에 늘고 있는 ‘돈주’라는 신흥자산계급 중에도 화교들이 많다. 북·중 사이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화교들이 교역의 첨병 역할을 하면서다.

 이들은 북한에서 버섯·해산물 등 인기품목을 중국으로 들고 나가 북한으로 올 때는 전자제품·의류 등을 무관세로 가져오곤 한다. 대부분 보따리 장사들이라 정상적인 거래가 아니라 세금을 내지 않고 있다. 물론 뇌물이 동반된다고 한다.

 북한 장마당에 한국과 미국의 드라마와 영화 DVD, 중국산 휴대전화 등 없는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외국 물건들이 많은 것도 이들 때문이라고 한다. 최근 탈북한 한 인사는 “화교들이 들여오는 물건들은 반입금지 품목들이 대부분이라 희소가치가 높고 인기가 있다”며 “화교들은 유통경로를 장악하고 있어 북한 내부의 물건들도 빨리 많이 구할 수 있어 장마당을 장악하다시피했다”고 말했다.

 북한의 화교들은 대부분 중국의 문화대혁명(1966~76년) 시기에 넘어왔다. 탈북민 이화영(71)씨는 “화교는 북한 노동당원이 될 수 없어 1970년대는 거지처럼 살았다”고 전했다. 그러다가 반전이 생긴 게 덩샤오핑(鄧小平)을 비롯한 실용주의 세력이 등장하면서 화교들에게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서다. 북한 주민 가운데 극소수만 북·중 무역을 하던 시절 화교들은 중국을 자유롭게 드나들면서 개인 무역을 거의 독점해 부를 키워 나갔다.

 북한이 국제적 고립과 자연재해 등으로 극도의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절도 화교들에겐 기회였다. 북한 내부에서 식량 배급이 중단될 때 화교들이 가져온 중국산 식료품 등 소비재들이 북한 시장을 장악했다.

 불법도 서슴지 않았다. 화교들은 북한 당국이 금지하고 있던 고려청자·조선백자 등 역사 유물에 손을 댔다. 이들은 북한 주민들을 고용해 개성 등 역사유물이 있는 장소를 도굴하거나 어부를 시켜 옛날에 침몰된 선박에서 골동품을 찾았다. 골동품은 중국을 통해 한국이나 미국, 유럽 등으로 팔려나갔다. 다니엘 튜더 전 이코노미스트 서울지국장은 “고려청자의 경우 화교들은 북한에서 50달러 정도에 넘겨받은 뒤 중국을 통해 한국에 팔 때 5000달러 이상을 받았다”고 했다.

 북한 당국도 가만 있지만은 않았다. 도굴한 북한 주민과 이를 지시한 화교들을 처벌한 적도 있고, 화교들의 불법 상행위를 감시·적발하곤 했다. 지난 9월의 홍콩의 주간지 ‘아주주간’은 “올 들어 최소 100명의 화교가 당국에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체포된 화교들은 ▶중국 정부에 북한 정보를 제공한 혐의 ▶북한에 한국산 DVD를 반입한 혐의 ▶북한 내부 상황을 촬영해 한국·중국 등으로 유출한 혐의 등으로 당국의 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이런 조사는 대부분 그때뿐이었다.

 북한이 체제를 위협할 수도 있는 화교들에게 관대한 이유는 화교들이 북한 인민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을 장마당에 공급하거나 인민들에게 월급을 주면서 결과적으로 인민생활을 향상시키는 양면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화교들은 돈벌이가 시원찮은 북한 주민들을 장마당의 ‘매대 주인’으로 고용하고 있다. 이들의 상당수가 화교들로부터 월급을 받고 있다고 한다.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ko.soosuk@joongang.co.kr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