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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아이돌 성장사 닮은 스타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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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규학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

어제 밤에도 여지없이 패배자로 전락하고야 말았다. 소위 ‘본방사수’의 의미가 퇴색되어 가고 있는 미디어 환경이기는 하나 여전히 스포츠 프로그램은 실시간 시청이 주는 짜릿함이 있다. 하지만 리모콘 쟁탈전에서 막내아이에게 또 참패하고서 5.5인치 스마트폰으로 축구 중계를 보게 됐다. 스크린으로 빠져 들어갈 듯한 자세로 음악방송을 보고 있는 막내를 보니 살짝 억울한 마음이 들어 시비를 걸었다. 도무지 음악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저 아이돌들의 시끄럽기만 한 노래가 뭐가 좋은지, 같은 리듬에 같은 춤에 같은 표정을 짓고 나오는데 이젠 지겹지도 않냐고 따져 물었다. 막내는 답한다. ‘도대체 그 음악성이라는 게 뭡니까?’ 리모컨 쟁탈전뿐 아니라 논쟁에서도 졌다.

 한류, 특히 케이팝의 주류는 여전히 아이돌이다. 위키피디아 한국판에 따르면 올해 데뷔한 한국의 아이돌은 총 28개 그룹이다. 2000년부터 10여년 동안 매년 평균 10여개 남짓의 팀들이 등장하다가 2012년에는 무려 43개 그룹이 새롭게 무대에 올랐다고 한다. 2010년 이후 등장한 아이돌그룹은 총 178팀이고, 이에 소속된 인원은 약 1000명에 달한다.

 2000년부터 2009년까지 무대에 올랐던 총 91개 아이돌 그룹의 평균 활동 기간은 총 3년을 넘지 못했다. 지금까지 활발한 활동을 하는 그룹은 15개 남짓이다. 하지만 많은 시간이 흘렀어도 활발히 활동을 하는 그룹들도 있다. 빅뱅·소녀시대·2NE1 등이 바로 그들이다. 아이돌로 세상에 나왔지만 이제 사람들은 그들을 아티스트라고 부른다. 1962년 데뷔한 최초의 아이돌이라고 할 수 있는 비틀즈처럼 실력이 바탕이 되면 언젠가는 아티스트의 반열에 오른다.

 아이돌로 데뷔해 아티스트에 오르기 까지 그들은 긴 시간을 견뎌야 했을 것이다. 그들은 이제 연습한 군무가 무대 위에서 행여 틀리지 않을까 더 이상 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대를 마구 휘저으며 즐기는 모습에 팬들은 더 환호한다. 연습생 시절의 눈물과 땀, 동료들과의 끈끈한 우정은 더 없이 중요한 에너지였을 것이고,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매니지먼트 시스템도 뒷받침이 됐을 것이다.

 이렇게 아티스트로 성장한 아이돌의 면면을 지켜 보면 신기하게도 스타트업의 시작·성장·좌절이 교차된다.

 언론에서는 창조경제의 활성화로 창업하는 젊은 기업가 숫자가 유사 이래로 가장 많다고 연일 보도한다. 그렇게 등장한 스타트업들은 자신들의 독창성과 우월성을 뽐내기 위해서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 아이돌의 공연 무대와는 사뭇 다르지만 창업경진대회에 나가서 발표도 하고, 투자를 받기 위해서 투자자들 앞에서 긴장된 모습으로 회사 소개도 한다. 그 중 적지 않은 스타트업들은 벤처캐피털로부터 투자를 받고, 언론이 앞다퉈 보도해 주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멋지게 자랑도 늘어 놓는다. 지금은 ‘스타트업 아이돌’ 전성시대다.

 며칠 전에 투자한 지 만 8년이 된 기업가와 저녁을 함께 했다. 달포 전에 코스닥에 상장한 것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투자를 받기 6년 전에 창업을 했으니 총 14년의 시간을 견뎌 온 셈이다. 그 사이 회사의 근간이 되는 기술은 변함이 없었으나 목표 시장은 수 차례 바뀌었다. 사업의 존폐를 가르는 두 번의 큰 위기도 극복했다. 유사한 기술을 가지고 창업했던 경쟁사들은 현재 단 하나도 살아남지 못했다.

 어렵게 상장을 결정해서 마침내 공개기업이 되었는데 소감이 어떠냐고 그에게 물었다. 답은 의외로 간명했다. 남들은 다 ‘마침내 성공’이라며 부러워하는 판에 그는 ‘이제 출발이지요’라며 씩 웃었다. 많은 아이돌들이 그러하듯 스타트업도 ‘성공’을 향해 달린다. 그리고, 그게 손에 잡히는 순간 이제 끝이 아니라 비로소 무대를 휘저으며 놀 수 있는 ‘실력’으로 새로운 시작을 열어간다. ‘스타트업 아티스트’가 되는 순간이다.

 나라경제의 양상이 심상치 않다. 그나마 대기업들은 쌓아 둔 현금이라도 있고 몇 번의 위기를 극복해 왔기에 버티는 노하우가 있지만 연습생을 갓 벗어난 수준의 스타트업은 돈도 노하우도 부족하다. 순진무구한 스타트업 아이돌들이여, 남들이 아티스트라고 불러 줄 때까지 이를 악물고 생존하라. 케이팝 아티스트들이 그랬던 것처럼.

문규학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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