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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가 남겨놓은 마음


몇 주 전 일요일 아침 빵 사러 가는 길에 장대를 들고 있는 경비원 아저씨를 만났다. 나는 인사만 드렸는데 아저씨는 장대에 대해 설명한다. 이거요, 감 좀 따려고요. 저기 좀 봐요.


아저씨가 가리키는 나무에는 감이 주렁주렁 달렸다. 이 나무가 감나무였군요. 지금 아파트로 이사 온 게 1년도 더 지났으니 수도 없이 그 나무 앞을 지나다녔을 텐데 감나무인지는 이때 처음 알았다. 사람이 눈만 뜨고 있다고 다 보는 게 아니다. 나는 부끄러워 과장해서 말했다. 정말 감이 많이 열렸네요.


아저씨는 능숙한 솜씨로 감을 딸 것 같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나무는 키가 높았다. 감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자리를 피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아저씨가 더 민망해 할 것 같아 계속 감 따는 아저씨를 지켜보았다. 응원하는 마음으로.


겨우 감 하나가 떨어졌다. 아저씨는 감 표면을 면장갑으로 쓱쓱 문지르더니 내민다. 한번 드셔봐요. 그냥 먹어요? 그럼요. 괜찮아요. 나는 뭔가 아는 체를 하고 싶다. 꼭대기에 있는 감 몇 개는 안 따는 거라면서요. ‘까치밥’이라고, 서리 내리면 까치 먹을 거 없다고 남겨놓는다 던데요.


나는 감을 한입 베어 먹는다. 맛있네요. 아저씨는 웃는다. 원래도 인상이 좋지만 웃으면 사람이 더 선해 보인다. 맛있죠? 이 맛있는 걸 왜 안 따고 남겨두겠어요? 꼭대기에 있는 것들은 잘 안 따지니까 어쩔 수 없이 남겨두는 거지요.


나는 또 아는 체를 한다. 그러니까 신 포도 같은 거네요. 이솝 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신 포도요. 높이 달려 있는 포도를 따먹으려고 여우가 아무리 해도 안 되니까 저건 신 포도일 거야 라고 자기합리화를 했다는. 까치밥도 결국 신 포도네요. 아저씨는 웃는다. 맞아요. 신 포도지요.


아내는 아저씨를 ‘우리 아저씨’라고 불렀다. 아저씨는 우리가 5년 전에 살던 아파트에서도 경비를 하셨다. 우리가 이사를 하고 또 해서 지금의 아파트로 왔을 때 이곳에서 근무하는 아저씨를 보고 아내는 마치 친정 식구라도 만난 것처럼 반가워 했다. 명절 때면 아내는 양말이라도 빠트리지 않고 꼭 챙겨 선물하는 눈치였다.


아저씨가 이쪽 아파트로 오게 된 것은 일종의 징계였다. 경비원은 경비를 해야 하지만 실제는 다른 일을 더 많이 한다. 주민의 무거운 짐을 들어주고 몸이 불편한 사람을 부축한다. 외로운 노인의 말벗이 되고 어린 아이들의 동무가 된다. 공부 마치고 밤늦게 돌아오는 학생들을 반갑게 맞아주고 격려하고 응원해준다. 요즘처럼 단풍이 예쁠 때면 매일같이 그 많은 낙엽을 쓸고 또 쓴다. 겨울이면 밤새 쌓인 눈을 치우고 주민들이 다닐 길을 만드는 일도 그분들이 한다. 쓰레기 분리수거의 마무리도 택배 온 물건들을 맡아두었다 전달하는 일도 모두 그분들이 한다.


경비실에 맡긴 택배 물건을 주민이 안 찾아가면 경비원에게는 부담이 된다. 분실, 파손, 변질의 책임이 경비원에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이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이틀이 가고 사흘이 지나도 찾아가지 않는 택배 물건을 찾아가라고 몇 차례 통보하면 어떤 주민은 짜증을 내고 화를 낸다. 만일 그 주민이 부녀회장처럼 지위가 높은 사람일 경우 해당 경비원을 징계할 수도 있다. 우리 아저씨는 그렇게 지금 아파트로 쫓겨온 것이다.


어제 저녁을 먹는데 아내가 말했다. 우리 아저씨 그만 두셨대. 왜? 아직 정정하시던데. 그게 아니고 잘리신 거래요. 부녀회장이 뭘 시켰는데 우리 아저씨가 왜 그걸 우리 경비가 해야 하느냐고 말했대요. 그랬더니 다음 날로 바로 해고되신 거래.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몇 주 전 장대로 감을 딸 때 아저씨는 말했다. 그래도 말이 예쁘잖아요. ‘까치밥’이란 말이. 그렇게 이름을 붙인 마음이 예쁘잖아요. 신 포도나 까치밥이나 똑같이 못 딴 과일이지만 내가 못 딴 걸 두고 저건 안 좋은 걸 거야 라고 말하는 것보다 저 맛있는 거 나중에 다른 생명이 먹도록 내가 남겨두는 거야 라는 그 마음이 예쁘잖아요. 내가 못 먹는 거 나쁘게 말하지 않고 누군가는 먹겠지, 같이 먹고 살아야지 하는 그 마음이 예쁘잖아요. 안 그래요?


오늘 아침 출근하는 길에 보니까 감나무 꼭대기에 우리 아저씨가 남겨둔 예쁜 마음 몇 개가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다. ●


 


 


김상득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에 근무하며, 일상의 소소한 웃음과 느낌이 있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아내를 탐하다』『슈슈』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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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