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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판 9·11’에 유럽 경악… ‘反이슬람·反난민’ 고개 들 우려

지난 12일 크로아티아 접경지역인 슬로베니아 라코벡에서 군인들이 난민 유입을 막기 위한 철조망을 세우고 있다. 난민으로 인한 사회 혼란이 가중되자, 독일·오스트리아 등 포용 정책을 취하던 국가들도 난민 통제로 정책을 틀고 있다. [AP=뉴시스]


동시다발 테러로 통행금지령이 내려진 파리의 택시기사들은 무료로 사람들을 태웠다. SNS엔 #PorteOuverte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당장 피할 곳 없는 누구에게든 피난처를 제공하겠다는 파리 시민들의 글이 올라왔다. Porte Ouverte는 ‘열린 문’이라는 뜻이다. 프랑스를 상징하는 ‘톨레랑스(tolerance·관용)’와 상통한다.


동시에 프랑스의 국경은 봉쇄됐다. 프랑스 정부는 전역에서 육로로의 입출국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국경 없는 유럽의 상징인 솅겐조약의 효력이 일시 멈춘 것이다. 솅겐조약은 유럽 통합의 상징이다. 충격적인 테러는 유럽의 원칙과 정체성을 뒤흔들어버렸다.


지난 1월 프랑스의 풍자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로 언론인 등 12명이 숨졌을 때 뉴욕타임스(NYT)는 “유럽이 위험한 순간을 맞이했다”고 진단했다. 그로부터 10개월, 유럽은 경제위기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통제할 수 없는 난민 유입, 극우 세력의 득세 등 더 심각한 분열과 위기를 맞았다.

13일 세르비아 프레세보에 있는 난민센터에서 등록을 위해 줄지어 선 난민들. 세르비아엔 매일 수백명의 난민이 유입되고 있다. [AP=뉴시스]


프랑스 전역서 육로 출입국 통제지난 8월 말 독일 정부는 시리아 난민을 모두 받아들이겠다고 발표했다. 유럽연합(EU)에 들어오는 난민은 처음 발을 디딘 회원국에서만 난민 등록을 해야 한다는 더블린조약의 적용을 유예한 것이다. 자국에 있는 시리아 난민에 대한 추방령도 철회했다. “난민 문제가 그리스 경제위기보다 EU에 더 큰 도전”이라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내놓은 획기적인 포용 정책이었다. 유럽의 최대 난민 수용 국가인 독일의 결정은 난민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다른 유럽 국가들에 대한 적지 않은 압박이 됐다.


공교롭게도 약 일주일 뒤 터키의 해안에서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아일란 쿠르디의 주검이 발견됐다. 난민 꼬마의 사진 한 장은 전 세계를 슬픔에 빠뜨렸다. 빗장을 걸었던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여론을 이기지 못하고 난민에게 문을 열었다. 메르켈 총리의 말처럼 홍수처럼 밀려드는 난민은 EU에 엄청난 도전이었다. 막대한 비용이 발생하는 것은 물론, 반이민 정서로 인한 증오 범죄가 곳곳에서 벌어졌다. 유럽은 난민 수용 찬반으로 나뉘어 몸살을 앓았다.


난민에 우호적이었던 오스트리아는 최근 슬로베니아와의 국경에 철조망 설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미 그리스·헝가리 등 일부 국가가 국경에 장벽을 세웠지만 솅겐조약 국가 사이의 장벽은 아니다. 이 때문에 오스트리아의 계획에 “솅겐조약 위반”이라는 독일 등의 항의가 쏟아졌다. AFP통신은 “난민 문제로 솅겐조약이 붕괴될 위기에 처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서유럽 국가들마저 철의 장막(Iron Curtain)을 치고 있다”고 보도했다. 난민 유입으로 인한 혼란 앞에 유럽은 균열 위기에 처했다.


끝내 지난 10일 독일은 시리아 난민에 대한 무조건적인 수용 정책을 폐기했다고 밝혔다. 두 달여 만에 독일마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난민 문제가 유럽을 집어삼킨 것이다.


유럽의 정치권은 급격하게 보수화됐다. 반(反)이슬람 정서를 자극해 입지를 넓히던 극우세력은 반난민 공약을 더하면서 세력을 과시했다. 불안과 공포 덕이었다. 시리아 난민 행렬 틈에 극단주의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 대원들이 잠입하고 있다는 우려가 유럽 내에서 커졌기 때문이다.


프랑스 내달 지방선거… 극우당 약진 전망지난 9월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직접 “IS 무장세력이 난민 행렬에 섞여 있을 가능성이 크다”며 “낯선 자를 환영하라고 하지만 안전과 관련한 예방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엘리어스 보우 사브 레바논 교육장관은 “시리아 난민 100명 중 2명꼴로 IS 대원이 숨어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8일엔 영국 데일리메일이 알카에다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로 꼽혔던 메흐디 벤 나사르가 난민으로 위장해 유럽에 들어오려다 적발됐다고 보도했다. 난민 유입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에 테러 위협이 얹어진 것이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최근 유럽 각국에서 치러진 선거에서 극우·우파 정당은 눈부신 성과를 거뒀다. 지난달 폴란드 총선에선 보수정당 법과정의당(PiS)이, 스위스 총선에선 민족주의 성향의 스위스국민당(SVP)이 승리했다. 포르투갈 총선에서도 집권 사회민주당 우파 연정이 재집권에 성공했다. 오스트리아의 빈 시장 선거에선 극우 성향의 자유당 후보가 역대 최고 득표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들은 반이민, 난민 수용 반대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반면 메르켈 독일 총리 지지도는 역대 최저인 30%대로 떨어졌다.


프랑스는 다음달 16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다. 테러 영향으로 장 마리 르펜이 이끄는 극우정당 국민전선(NF)이 한층 힘을 받을 전망이다. 조홍식 숭실대 정치외교학 교수는 “이미 프랑스가 3당 체제이고 그중 하나가 극우인 국민전선이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라며 “이번 선거에서도 굉장한 힘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NYT에 따르면 르펜은 ‘국경 폐쇄와 국가안보 강화’를 줄곧 강조해 왔다. 신문은 “때마침 우연하게도 이 같은 테러가 발생했고 르펜은 물론, 테러를 (정치적) 자산으로 삼을 것”이라는 분석을 전했다.


파리에서 벌어진 테러는 관용과 포용으로 대표됐던 유럽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전략과 계산에 따라 움직이는 각국 정부나 정치권보다 더 우려되는 건 시민사회라는 진단도 나온다. 조홍식 교수는 “샤를리 에브도 테러는 표적 암살에 가까웠지만 이번엔 무차별적으로 무고한 시민을 대상으로 했다. 현재 파리 시민들은 무척 흥분한 상태일 것이고 시민사회에서 합리적이지 않은 어떤 돌발 사태가 벌어지는 것도 가능하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반이슬람-반이민-반난민 등 배타적인 정서가 한층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2001년 발생한 9·11 테러의 영향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유럽 역시 ’파리의 9·11’이라는 이번 테러에서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르몽드 편집국장을 지낸 가디언의 국제문제 수석기자 나탈리 누게드는 “파리에서의 테러가 미래에 대한 공포와 깊은 트라우마를 남길 것”이라고 썼다.


NYT는 테러 현장 근처에 있었던 파리 시민들의 인터뷰를 통해 유럽인들이 느끼는 불안감을 전했다. “미래가 두렵다.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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