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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개혁 동력은 국민 관심 … 개혁 실패 땐 표로 심판해야”


내년 20대 총선의 선거구가 여야 합의 실패로 마감시한인 13일을 넘기고도 끝내 결정되지 못했다. 당초 획정 기준 마련의 책임을 맡았던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는 개점 휴업 상태 속에서 12일 국회 본회의를 통해 생명만 한 달(12월 15일까지) 연장했다. 지난해 말 ‘의원 선거구를 인구 비례 2대 1 이하로 맞추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 이후 올해는 한국 정치제도를 선진화시킬 ‘골든타임’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지난 3월 결성된 정개특위는 선거구 획정안 논의에 가로막혀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였고, 무엇을 고쳐야 하는 것일까. 중앙SUNDAY가 정치·사회 등 각계 인사로부터 다양한 조언을 듣고 종합해봤다.


 


 



국민 여론과 개혁의지 결합돼야


지금까지 국회의 정치개혁 관련 법안은 ‘총론 찬성, 각론 반대’ ‘입은 찬성, 행동은 반대’이거나 ‘선거를 앞두곤 반성문을 쓰며 개혁을 약속하고 선거 후엔 개혁의 흉내를 내며 개점휴업 상태를 유지하다가 회기가 끝나면 자동 폐기’되는 운명이었다. 이번 정개특위도 그런 패턴의 반복이었다. 17대 총선 직전인 2004년 초의 정개특위는 지구당 폐지, 기업 후원금 금지 및 후원금 상한 제한, 금품수수 유권자 50배 배상 등 이른바 ‘오세훈법’으로 불린 특단의 개혁조치들을 한 달 만에 통과시켜 거의 유일하게 성공한 정개특위로 평가받는다. 당시엔 ‘차떼기’ 사건으로 총선 패배 위기에 몰린 보수 성향 한나라당이 오히려 개혁에 더 적극적이었고,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해 잃을 것이 없었던 오세훈 의원이 개혁을 주도할 수 있었으며, 계파가 없어 사심 없이 개혁을 뒷받침한 최병렬 대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무엇보다 구시대 금권정치에 대한 혐오가 폭발해 정치개혁을 미뤘다간 총선에서 필패할 것이란 경고를 준 국민적 여론이 있어 가능했다. 유감스럽게도 지금은 그런 조건이 충족돼 있지 않다.


 


정치 신인 진입 장벽 낮추는 게 우선


결국 여야가 몰리다 보면 서로 명분을 찾는 식으로 합의하지 않겠나. 여당은 지역구를 늘리는 대신 비례대표를 축소하자는 입장, 야당은 지역구를 늘리려면 의원정수를 늘리란 입장이다. 결국 국민 비난이 거세지지 않는 선에서 의원정수를 약간 늘린다면 새누리당 지도부는 지역구 축소 부담을 덜게 되고 새정치연합은 비례대표 축소를 막아냈다는 명분이 서게 된다.


사전 선거운동 기간이 선거 120일 전부터여서 다음달 16일이면 시작된다. 이때부터 정치 신인들이 예비후보 등록을 해야 하는데 여야가 밤을 새워서 협상을 하든 최대한 빨리 합의를 봐야 한다. 사실 이번 정치개혁의 핵심 과제는 정치 신인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데 있다. 선거운동 기간과 방식 모두 신인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다. 돈은 묶고 말은 푸는 방식으로 선거법을 고쳐야 한다. 정치개혁이 성공하려면 과거 국회의장 산하의 외부위원으로 구성된 정치개혁범국민위원회 방식을 고려해 볼 수 있다. 또 개혁에 대한 국민 여론 환기가 필수적인데 대통령이 전향적으로 관심을 가진다면 그런 동력이 생길 수 있다.


 


국민이 선거로 심판 안 하면 실패 되풀이


최근 정개특위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정치부 기자를 하던 1970년대 초반과 정치판이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고 느낀다. 내가 정치를 할 때도 정치개혁 하겠다고 칼을 빼들 때마다 ‘요때만 지나가면 돼. 뭘 그렇게 순진하게 고치려고 하느냐’란 소리들을 들었다. 이번에도 시간만 흘려 보낸 걸 보면 여야 의원들에게 한국 정치를 바꾸겠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정개특위를 개선할 뾰족한 방법은 없다. 결국 국민의 압력밖에 없는데 유권자들이 선거로 심판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정치에 대해 욕을 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감정적으로만 정치를 소비한다. 대통령에겐 사적인 기준으로 인사를 한다고 비난하면서 국민들은 정작 지역·연고와 같은 사적인 기준으로 투표한다. 프랑스 정치학자 알렉시스 토크빌은 ‘민주주의는 국민이 민주 시민으로서 덕성을 갖추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한다’고 했다. 한국 정치의 수준은 유권자에게 책임이 있다. 또 그걸 각성시키는 책임은 언론에 있는 것이다.


 


상시 정개특위 운영 통해 결론 내야


올 연말을 넘기면 모든 선거구가 위헌이 되고 예비후보로 등록한 사람들의 등록이 말소되기 때문에 그전엔 합의안이 나올 것으로 본다. 하지만 선거구 획정 외에 다른 덩치 큰 개혁 조치를 논의할 시간은 없을 거다. 거의 매번 정개특위가 선거에 임박해서야 활동하니 발등에 떨어진 현안만 겨우 바꾸는 특위가 돼버렸다. 게다가 정개특위는 여야 동수로 구성돼 여야 간 합의 없이는 아무 일도 안 된다. 서로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으면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시스템이 그대로 남아 있는 한 성공할 수 없는 것이다. 상시 정개특위가 필요하다. 여기서 ‘상시’의 의미는 상시 설치해 두자는 것보다 정치개혁을 상시 논의하는 장을 만들어 끝없이 토론하며 결론을 도출해 나가자는 데 있다.


정개특위가 성공하려면 여야 특위와 당 지도부 모두 기득권을 양보하고서라도 투명하고 공정한 제도를 만들겠다는 마음 자세가 전제돼야 한다. 조금이라도 이익을 보려 한다면 답이 없다.


 


 


국회 밖에 독립기구로 설치해야


새누리당 김정훈 정책위의장이 12일 획정위 구성을 여당과 야당, 선관위가 3명씩 추천하고 의결 정족수를 과반으로 하자는 안을 내놨다. 진작 이렇게 했어야 했다. 지금처럼 여야 4명씩, 선관위 1명으로 구성하고 3분의 2를 의결정족수로 하면 획정위가 여야 간 대리전 양상이 돼 아무런 진척도 이룰 수 없다. 이번에 획정위를 독립기구로 둔 건 잘할 일이지만 이런 규정 때문에 획정위가 정개특위의 소위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내년 총선에서 유불리가 뚜렷이 갈릴 권역별 비례대표제니 중대선거구제니 하는 안들이 여야 동수로 구성된 정개특위에서 합의가 되겠나. 총선에서 신인에게 불리하고 현역 의원에게 유리한 정치관계법들도 바뀌어야 한다. 그런데 왜 안 바뀔까. 뻔한 것 아니냐. 거기에선 여야 간 의견이 일치한다. 그래서 국회 내 특위를 통한 정치개혁이 쉽지 않다. 정개특위도 국회 밖 독립기구로 두고 거기서 결정된 안은 바로 국회 본회의에 상정토록 해야 한다.


 


지구당 인정해야 공정한 경쟁 가능


우리 지역구는 괴산이 편입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걸려 있다. 어쨌든 선거 준비를 할 텐데 결론이 자꾸 미뤄져 답답하다. 현역 의원들은 이해관계가 많이 걸려 있는 데다 결정이 늦어져도 별로 아쉬운 게 없기 때문에 시간을 끌고 있는 것 같다. 황당한 일이다. 현행법상 지역위원회(지구당)를 인정 안 해주니까 원외 지역위원장과 같은 정치 신인에겐 활동에 굉장히 많은 제약이 따른다. 현역 의원은 사무실도 두고 후원회도 구성할 수 있지만 원외 위원장은 손발이 묶여 있다. 과거 지구당이 돈 정치 등의 폐해 때문에 폐지됐지만 그 덕분에 선거 문화가 많이 바뀌었다. 변화에 발맞춰 다양한 목소리와 다양한 활동을 펼칠 수 있게 선거제도가 개혁되도록 정개특위가 남은 활동 기간 동안 힘을 써줬으면 한다. 농촌 인구가 점점 줄고 있는데 인구 잣대로만 선거구를 정하면 농촌의 지역 대표성은 형편없이 약화될 것이다. 인구에 관계없이 주당 2명씩 의원을 배정하는 미국 상원처럼 보완책이 필요하다.


 


 


이충형 기자 adch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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