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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이념 따라 조직 분열 … ‘민주당 몰표’ 더 이상 안 통해

지난 5월 4일 4·29 재·보궐선거 패배 이후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낙선 인사를 위해 광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광주시민들이 항의시위를 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잇따라 확인되고 있는 호남 민심은 호남향우회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구심점을 잃은 호남향우회를 두고 새정치연합의 한 의원은 “야당의 분열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포토]


호남은 거주 인구(지난해 기준)로만 따지면 525만 명으로 경상도(1205만 명)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다. 하지만 호남 정서를 공유하는 전국 각지의 출향민까지 따져보면 그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 전국호남향우회총연합회중앙회에 따르면 해방 이후 호남 지역의 출향 인사는 전국적으로 90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호남향우회는 무엇보다 다른 향우회에 비해 강력한 단결력을 자랑한다. 조직도 촘촘하다. 읍·면·동부터 시·군, 광역 지자체 단위마다 운영되는 풀뿌리 조직이다. 정치적으로는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최근 들어 그런 호남향우회가 흔들리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비례대표 은수미 의원이 지난 4·29 재·보궐 선거 때 성남 중원구 경선 출마를 결심하고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호남향우회 월례회였다. 이 지역 호남향우회 회원은 대부분 새정치연합 당원이다. 은 의원은 “나처럼 지역위원장도 아니고, 전략공천 가능성도 없고, 경선을 치러야 하는 사람들이 당원을 직접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우선 호남향우회 월례회에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은 의원이 호남향우회에서 만난 사람 중에는 당원 번호가 100번 이내인 원로 진성당원이 많았다.


#새정치연합의 수도권 한 재선 의원은 “수도권 의원들이 제일 가기 힘들어하는 모임이 호남향우회”라고 말했다. 모임에 나가면 “‘이 지역 역대 국회의원들은 우리가 만들었다’며 ‘갑(甲)’ 노릇을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호남 의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 의원은 “야당 텃밭지역에선 선거 때마다 향우회에서 출마하려는 사람들이 있어서 부담스럽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도 “표 결속력 때문에 호남향우회를 무시할 순 없다”고 강조했다.


원조 호남향우회, 총회장 선출 때 내홍이런 막강한 결속력을 자랑해온 호남향우회가 최근 이념적 성향과 이해관계에 따라 사분오열하고 있다. 현재 전국 단위의 호남향우회 단체만 4개나 된다. 전국호남향우회총연합회(회장 이용훈), 전국호남향우회총연합회중앙회(총재 임향순), (사)국내외통합호남향우회중앙회(회장 정동일), 전국호남향우회중앙회(회장 박광태)다.


자발적으로 이뤄진 읍·면·동 단위의 조직에 비해 전국 단위 조직은 각 단위별 향우회장들이 모인 결집체의 성격을 띤다. 임원진 등이 거둔 회비 등으로 사무실이나 모임 비용 등을 충당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아직까지 별도의 회관 건물을 두고 있는 곳이 없을 정도다.


호남 출신 인사들의 모임은 1955년 출범한 재경 광주·전남향우회에서 그 뿌리가 시작된다. 88년 재경 전북도민회가 결성됐고, 이후 지역별로 제각각 운영돼 왔다. 2006년에야 각 지역에 산재한 조직을 통합한 전국 단위의 첫 조직인 전국호남향우회총연합회가 출범했다. 그러나 당시 초대 회장이었던 임향순 총재가 2008년 대선 때 한나라당에 입당한 뒤 2010년 친여 계열의 총연합회중앙회를 출범시키면서 조직이 분열됐다. 여기에 해외 호남 출신 인사들이 주류를 이루는 정동일 회장 계열의 호남향우회도 따로 활동 중이다. 이후 지난해에는 박광태 전 광주시장 등 일부 인사가 이들 조직을 통합하려다 실패하고 중앙회라는 조직을 따로 설립했다.


원조 호남향우회로 전통적인 야당 성향의 전국 조직임을 자부해온 전국호남향우회총연합회도 최근 내홍을 겪고 있다. 그동안 관례적으로 조직의 화합을 위해 총회장을 추대해왔지만 오는 17일 내년 1월 임기(2년)를 시작하는 신임 총회장 선출을 놓고 경선 직전까지 가는 ‘위기’를 겪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12일 이종천 제주도 호남향우회연합회장을 추대했지만 당초 경선에 출마하려고 했던 허영 인천시 호남향우회연합회장 지지자들과의 갈등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이다. 허 회장을 지지해온 서울·인천·경기 일부 등 수도권 지역은 지역별 호남향우회 대표가 인구 수와 관계없이 1표만 행사하는 현행 선거 체제는 불공평하다는 입장이다. 허영 회장은 “앞으로 제도가 개선되지 않을 경우 잘못하면 총연합회도 분열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다른 관계자는 “천정배 의원이 총연합회의 자문위원장으로 있기 때문에 회원들 사이에 호남신당 지지 그룹과 새정치연합 지지 그룹으로 나뉜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전했다.


호남향우회는 정치적으로 야당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신극정 전 경기도 정무부지사는 “새누리당 성향의 호남향우회라곤 전체의 5%도 안 되는 소수이기 때문에 나머지가 모두 야당을 지지하는 셈”이라며 “회장이나 정치인에 따라 지지 그룹이 나뉘는 게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당에 대한 영향력도 막강하다. 김명진 전 새정치연합 원내대표 비서실장은 “전통 세력으로서는 호남향우회가 새정치연합의 가장 큰 우호적인 외곽집단”이라고 말했다. 호남향우회가 가장 막강한 위력을 발휘할 때는 당내 경선이다. 인천이 지역구인 윤관석 의원은 “호남향우회가 전체 당원의 비율도 높지만 관심과 참여율이 높아 특히 당내 경선이 벌어지면 영향력이 막강하다”고 전했다.

지난 1월 29일 전국호남향우회 총연합회 신년하례회(세종문화회관)에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선거에 출마한 문재인·이인영 의원이 참석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미국 ‘정치 머신’과 닮은 호남향우회영향력이 강한 만큼 부작용도 없지 않다. 지난 19대 총선을 앞두고는 한 호남향우회장이 비례대표 발탁을 조건으로 정통민주당(대표 한광옥) 측에 10억원을 건넨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정병은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지역정당 체계를 기반으로 삼고 지역주의 전략에 지나치게 의존해온 한국 정치에선 향우회가 효과적인 동원 대상으로 간주돼왔다”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향우회는 미국의 ‘정치머신(political machine)’과 비교되기도 한다. 정치머신은 19~20세기 초반까지 미국의 지방 정치에서 취업 알선 등 이권을 제공하는 대신 지지표를 얻었던 비공식 정치조직. 산업화 시대에 외국에서 미국으로, 농촌에서 도시로 유입된 이주민이 주로 활동 대상으로 동원됐다는 점에서 70~80년대 산업화 당시 상경한 출향 인사들로 형성된 호남향우회와도 유사하다는 것이다. 채진원 경희대 교수는 “결국 부패 때문에 정치개혁 기폭제가 됐던 정치머신처럼 향우회가 선거에 동원되고 이권을 주고받는 관계로 변질돼선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선거에 있어서 호남향우회의 결속력이나 영향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지난 4·29 재·보선 관악을 경선에서 호남 측 김희철 전 의원이 친노 정태호 지역위원장에게 고배를 마셨고, 지난 2월 전당대회에서 호남을 대표하는 박지원 의원이 문재인 대표에게 패한 것이 대표적이다. 4·29 재·보궐 선거에서 호남 인구가 많은 성남 중원에서조차 호남 출신의 새정치연합 정환석 후보가 새누리당 신상진 후보에게 패한 것도 한 예로 꼽힌다. 은수미 의원은 “호남향우회가 세다는 이곳조차도 무조건 호남이라고 찍지는 않는다는 게 선거 결과로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과 정치인들은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고 진단한다. 무엇보다 김대중 대통령이라는 구심력이 없어졌기 때문이라는 게 공통적인 의견이다. “DJ가 대통령 후보로 나서고 당선되는 과정에서 향우회 조직 간의 분열 현상은 없었다”(김원기 전 국회의장),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는 사회생활의 유대감과 정치적 유대감이 결합돼 호남향우회 결속력이 더 강했기 때문”(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이라는 분석이다.


아버지는 회원, 아들은 비회원 많아세대 효과도 거론된다. “호남향우 2세대 이후부터는 귀속의식이 고향보다는 현 거주지역에 더 강하다”(민병두 의원)는 것이다. 이민재 총연합회 사무총장도 “아버지는 향우회원인데 아들은 향우회에 가입 않겠다고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 애향심에 호소하는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는 “호남향우회의 핵심인 70~80년대 상경한 당시 30~40대가 노령화되고 세대 교체가 일어나면서 고향 의식이 약해졌기 때문”(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이라는 분석과 통한다. 그 때문에 신세대 유입을 위한 자구 노력도 진행되고 있다. 신극정 전 부지사는 “호남 출신 인재 발굴과 교육을 위한 호남중앙연구소 설립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분열상을 보이는 호남향우회지만 “문재인만으로는 안 된다”는 데에는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명숙 대표 시절 진성당원인 호남 출신의 위원장직을 다 박탈했는데 문재인 대표도 마찬가지”(박차광 중앙회 사무총장), “노무현 정부 때부터 인사 등용에 소홀했고 그 후예인 문재인 대표도 필요할 때만 찾고 호남을 푸대접했다”(이민재 총연합회 사무총장)는 주장이다.


호남향우회의 ‘반문재인’ 정서는 이미 악화된 호남 민심과도 일맥상통한다. 13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문 대표의 대선주자 지지율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9%)보다도 낮은 5%에 그쳤다. 조국 서울대 교수는 이를 두고 “이런 민심이 호남 출향 인사(호남향우회)를 통해 전국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이 최근 실시한 출향민의 원적지별 정치의식 여론조사 결과 호남 원적자의 40~60대의 야권신당 지지율은 18~20%로, 호남 60대의 야권 신당 지지율(18.2%)과 비슷하게 나타났다.


지구당 폐지도 향우회 약화 원인제도적으로는 2004년 지구당 폐지나 모바일선거 등 정당개혁 정책이 근본적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호남향우회의 정체성은 민주당의 공조직으로서의 정체성이 훨씬 강했는데 지구당을 없애면서 이익집단으로 바뀌었다”고 평가했다. 윤희웅 센터장은 “경선 참여층의 확대로 호남향우회의 의견 반영 비율이 줄어들자 당원 권한을 축소시킨 세력에 대한 반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를 해소할 유일한 방법은 리더십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호남의 집권에 대한 열망을 채우기에 문 대표만으로는 부족해 보이니까 반(反) 문재인 정서로 나타난 것”(이철희 소장)이란 분석에서다. “정성을 들여야 되는데 ‘내가 홀대한 적 없다’고 버티고 대응을 안 하면서 악화됐다”는 것이다. ‘호남만으로는 안 되지만 호남이 없어서도 안 되는’ 문재인과 ‘문재인만으로는 안 되지만 문재인이 없어서도 안 되는’ 호남향우회가 공생하기 위해선 “김대중·노무현을 극복하는 리더가 나와야 된다”(윤관석 의원)는 것이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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