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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삶, 더불어 책’ 정신으로 책바치 가문의 백년 역사 준비


세상에 책을 말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해방둥이’인 현암사가 창립 70주년을 맞아 책을 논한다고 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회사의 역사가 곧 우리 출판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하는 덕이다. ‘1945~2015, 70년 책바치 100년을 향해 나아갑니다’라는 문구가 괜시리 찡한 건 아마 그 때문일 터다. 13~30일 경기 파주출판도시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전시장에서 열리는 ‘현암사 70년, 책을 말하다’는 바로 책을 빚는 마음으로 만들어온 장인들의 기록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70년 동안 현암사에서 펴낸 2500종 중 대표작을 고루 만나볼 수 있다. 우리말 우리글로 된 출판물을 꿈꾸며 1945년 8월 발간된 시사종합지 ‘건국공론’은 물론 이를 축하하기 위해 김구 선생과 이승만 전 대통령이 보낸 휘호도 함께 전시된다. 59년 이래 한 해도 빠짐없이 매년 출간되고 있는 대한민국 최초의 법령집인『법전』을 비롯 우리 고전 명저 100권을 풀어쓴 『한국의 명저』시리즈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이 전시의 중심에 조미현(45) 대표가 있다. 그는 “전시를 준비하면서 이미 절판됐지만 다시 내야 하는 책들이 이렇게 많구나 하는 걸 새삼 느꼈다”며 “예전에는 원화를 직접 사서 썼기 때문에 당시 원화를 만나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 대표는 3대째 회사를 맡고 있는 출판 가문의 장녀다. 조부 조상원(1913~2000)씨가 대구에서 차린 건국공론사를 시작으로 부친 조근태(1942~2010)의 대표직을 이어받았다. 현암(玄岩)이란 이름은 박목월 시인이 지어준 상원씨의 아호다.


“처음엔 가업을 이을 생각은 없었어요. 이화여대 섬유예술과를 나왔고 계속해서 미술 공부를 하고 싶었죠. 유학도 갔었는데 IMF 금융위기 직격탄을 맞아 직원 월급 주기도 빠듯한데 무슨 유학이냐는 아버지 호통에 들어와서 영업사원으로 현장부터 익히게 됐습니다.”


‘잘해야 본전’이라는 부담감이 컸겠지만 2009년 조 대표 취임 이후 성과도 상당하다. 뉴욕대 출판학 석사를 받고 돌아와 출판에 대한 애정이 더해지면서 남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일을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 7년에 걸친 번역ㆍ편집 작업 끝에 빛을 본 『파브르 곤충기』불어판 전권 완역이나 내년으로 15권 전권이 완간되는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같은 것은 ‘좋은 책을 제대로 소개하겠다’는 노력의 결과물이다. 환경과 고전이 현암사의 전문 분야라면 건축과 예술 등 조 대표의 관심사가 반영되면서 스펙트럼도 한층 넓어졌다.


지향점도 조금 달라졌다. ‘신의와 성실’이 1대 대표부터 현암사 70년 역사를 관통하는 키워드라면 2대 ‘행복지수를 높이는 출판사’에서 이제는 ‘더불어 삶 더불어 책’이라는 목표를 바라본다.


“은행 어음보다 더 정확하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확고하게 다져온 신의와 성실도 중요하죠. 저 역시 그 가치를 지켜갈 거고요. 다만 많은 사랑을 받아서 여기까지 온 만큼 지금은 같이 사는 문제를 좀 더 고민해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중산층인 줄 알고 살았는데 알고 보니 최하층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물질적인 가치는 더 이상 중요치 않은 것이 돼버렸어요. 그래서 사고의 훈련을 해야 할 필요가 있고 그런 것들이야말로 책이 해 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70년을 넘어 100년으로. 이는 그에게 남겨진 숙제 같은 일이다. 할아버지가 꿈꿨던 일본의 이와나미(岩波)서점처럼 남기 위해 그가 가야 할 길은 무엇일까. “회사 규모를 키울 생각은 없어요. 지금처럼 작지만 강하게 가고 싶습니다. 직원 월급만큼은 제대로 주고 좋은 책을 즐겁게 만들면서요.”


직원 수 23명에 연매출 40억원. 그중 근속연수 20년을 넘긴 사람만 5명이다. 남동생과 여동생 모두 디자인과 제작 파트에서 힘을 보태고 있다. 이 정도면 ‘현암사 100년, 책을 말하다’는 거뜬하지 않을까. ●


 


 


글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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