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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몸의 양식 원스톱 서비스 ‘身冊不二’ 개념으로 책방의 혁명

1 문학 섹션의 천장에는 800권의 책들이 매달려 있다. 책들의 합창이 들린다.


“요리가 없다면 예술도 지성도 사라질 것이다”고 알렉상드르 뒤마가 말했다. 공자는 “음식을 먹는 것과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일은 천하의 가장 기쁜 일이다”고 했다. 개점 10년도 안 되었지만 유럽의 명소로 자리 잡은 브뤼셀의 별난 서점 쿡앤북을 방문하면서 나는 읽기(Reading)와 함께 먹기(Eating)의 의미를 새삼 생각하게 된다.


그곳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천국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별난 서점 쿡앤북을 구경하고 체험하기 위해 사람들은 유럽의 네거리 브뤼셀을 찾는다. 업무에 지친 사람들, 빡빡한 스케줄로 스트레스 받는 도시인들이 ‘자유로운 시간’을 누릴 수 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쿡앤북은 ‘자유로운 시간의 광장 1번지’에 있다. 자유로운 시간의 광장이라니, 오늘의 쿡앤북을 위해서 일찍이 작명된 주소일까.


 거침 없는 상상력으로 공간 창조여느 서점과는 개념과 색깔이 다르다. ‘북앤쿡’이 아니라 ‘쿡앤북’이라는 것도 흥미롭다. 쿡앤북에 들어서면 아무리 근엄한 애서가라도 즐거운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서점과 레스토랑과 카페, 다채로운 문화·예술과 라이프스타일을 융합한 쿡앤북은 1500㎡의 전체 공간을 9개 섹션으로 나눴다. 각 섹션에 고유한 주제의 책들을 비치하고 컬러풀한 인테리어로 꾸몄다.


무례하다 싶을 정도로 대담한 발상, 공간을 창조하는 거침없는 상상력, 전혀 예상치 못한 풍경들이 줄줄이 나타난다. 책과 음식, 정신과 신체, 이성과 감성이라는 다른 차원들을 하나로 담아내다니!


그렇다, 진화는 계속되어야 한다. 미지의 세계를 만나기 위해서는 혁명적인 발상을 계속해야 한다. 책의 콘텐트와 미학은 더 심화되고 더 현란해질 것이다.


 

2 쿡앤북의 첫 번째 섹션엔 세계의 고전 만화들이 전시되어 있고 그 한 가운데는 레스토랑이다.


쿡앤북의 입구에서부터 고전적인 만화책들이 장악하고 있다. 따뜻한 갈색 서가의 고전만화들이, 아이와 어른 모두 좋아하는 캐릭터들이 반갑게 인사한다. 슈퍼맨과 배트맨, 아스테릭스와 오벨릭스가 방문객들을 신나는 세계로 인도한다. 세계의 유명 만화책들이 자태를 뽐낸다. 그 한가운데에 커다란 공용 테이블이 맛있는 식사를 위해 세팅되어 있다.


여행 섹션으로 이어진다. 여행 섹션답게 미국의 에어스트림 캠핑 카라반이 한눈에 들어온다. 기존 모형에서 새롭게 개조되었다. 우주선 같기도 하고 기차 같기도 하다. 벨기에의 유명 조각가 파나마렌코의 작품과도 비슷해 보인다. 안을 들여다 본다. 들어가고 싶어진다. 비즈니스 미팅, 로맨틱한 디너, 아이들의 생일 파티장으로도 사용된다. 독일의 조명디자이너 잉고 마우러가 디자인한 ‘캠벨 통조림’ 램프 아래의 초록색·오렌지색 작은 테이블은 언제라도 목마르고 출출한 고객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여행 소개서, 기행서, 테이블북과 더불어 프랑스의 홍차 브랜드 마리아쥬 프레르 같은 의외의 제품을 만날 수 있다. 벨기에 사진작가 세르게 안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벨기에의 국기 색깔을 입힌 2층 계단을 오르면 아이들만을 위해 준비된 책방이다. 바닥은 투명유리다. 그 속에는 세계 최대의 모형기차 제작사 마클린의 대형 레일트랙이 설치되었다. 핀란드 디자이너 이에로 아르니오의 동물의자들이 중앙에 놓여 있다. 아이들이 앉아 책을 읽고 있다. 벨기에 건축가 카롤리인 노테가 디자인한 천장의 조명등이, 벨기에 디자이너 디데릭 반 호벨이 디자인한 서가에 꽂혀 있는 책들을 더 영롱하게 한다. 프랑스의 캐릭터 바바파파 쿠션이 앉으라고 눈짓한다.


 

3 쿡앤북의 한 섹션은 삶의 두 가지 즐거운 조건인 와인과 음악, 그리고 책을 위한 공간이다.


아트 섹션은 서가와 레스토랑으로 분리했다. 잉고 마우러가 조명을 디자인했다. 덴마크 디자이너 아르네 야콥센의 의자와 긴 거울테이블이 놓여 있다. 장밋빛과 노란색 유리로 만든 큐브는 아주 현대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벽에 설치된 지그재그 모양의 빨간색 네온 불빛도 놓칠 수 없는 인테리어다. 아트 섹션에서는 순수미술에서 팝아트, 초현대미술까지 다양한 미술책을 만날 수 있다. 아트 섹션을 나와 벨기에의 젊은 아티스트 아르나우드 쿨의 그래피티 아트로 채워진 복도를 지나면 우리 삶의 두 가지 즐거운 조건인 음악과 와인 섹션이다. 클래식, 재즈, 팝, 월드뮤직 음반과 책들이 준비되어 있다. 콘서트나 쇼케이스가 열리기도 하고 단편영화도 상영된다.


 250명 수용하는 놀이동산 닮은 테라스문학 섹션에서는 고개를 들기 전에 놀랄 준비를 해야 한다. 천장에 무려 800권의 책이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하늘을 나는 책들의 합창이 들려온다. 나는 순간 늦가을 한강과 임진강 하류 들녘에 수천 마리씩 날아오르는 새 떼를 연상했다. 쿡앤북의 절정이다.


쿡앤북에서 ‘요리와 미식’ 섹션이 빠질 수는 없다. 이탈리안 본토의 트라토리아처럼 꾸민 섹션 ‘라쿠치나’는 상상의 이탈리아로 안내한다. 요리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아마추어를 위한 다양한 책이 누워 있고 서 있다. 주방용품, 올리브오일, 소금, 후추 등 요리에 필요한 제품도 만날 수 있다.


영어책 섹션은 전통적인 영국 스타일을 살렸다. 고급 호텔풍의 두꺼운 카펫이 깔려 있고 옛날식 서가, S자 모형의 붉은 소파, 작은 램프들이 비춰주는 긴 도서관용 테이블, 영국 국기 유니언잭으로 디자인된 천장의 램프 갓이 상징적이다. 티하우스와 서점을 통합해 영국의 아늑한 서점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차와 스콘을 즐기면서 좋은 소설 한 권에 빠져듦 직하다. 영국을 대표하는 문구와 티도 준비되어 있다.


쿡앤북을 여행하고 나오면 마치 마법에 걸린 것 같다. 한눈에 봐도 신기한 것들이 수도 없이 많다. 이상한 갤러리 같기도 하고 일찍이 체험하지 못한 기이한 에코뮤지엄 같기도 하다. 아니면 놀이동산인가. 실내뿐 아니라 250명을 수용하는 테라스에서 먹고 마시고 노닐 수 있다.


유명 작가들과 지식인들이 독자와 대화하는 행사가 정기적으로 기획된다. 전시회와 공연도 열린다. 만화가가 사인회를 한다. 벨기에는 만화의 역사가 오래되었다. 아이들의 책 읽기, 쿠킹 레슨이 진행된다.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한 자선행사 프로그램도 촘촘한 일정에 들어 있다.


 

어릴 때부터 서점과 레스토랑이 꿈이었던 쿡앤북의 데보라 드리온 대표. 그는 지금 쿡앤북 파리점을 준비하고 있다.


‘서점+레스토랑’은 창업자의 어린시절 꿈쿡앤북은 정신의 향연, 몸의 향연이 함께 펼쳐지는 유토피아다. 시각적 오브제, 청각적 오브제, 미각적 오브제 그 모든 것이 가능하다. 모든 세대가 몰려와도 받아주는 관용의 특별지구 같은 곳이다.


『브뤼셀의 500가지 숨겨진 비밀』을 펴낸 벨기에 작가 데레크 브리스도 썼지만, 쿡앤북은 세계의 미디어들로부터 ‘아름다운 서점, 꿈꾸는 서점’이라고 묘사된다. 이 꿈꾸는 서점은 꿈꾸는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경천동지할 개념도 가능했을 것이다. 쿡앤북의 데보라 드리온 사장은 어린 시절부터 서점과 레스토랑을 함께 운영하는 걸 꿈꾸었다. 변호사 일을 하다 남편 세드릭 레게인과 함께 있는 돈 없는 돈 다 모아 37억 원을 만들어 2006년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쿡앤북이 개점하자마자 다들 혁신적인 개념이라고 칭찬이 자자했지만, 나나 남편이나 무슨 유행의 선도자나 마케팅의 귀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우선 문화적이고, 친교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벨기에 사람들은 가게에 자신의 상품을 진열할 때도 독창적으로 연출한다. 그런데 서점은 왜 딱딱하고 차갑게 느껴질까.


“책들은 하나같이 일렬로 서가에 꽂혀 있었습니다. 우울하기까지 합니다. 우린 기존의 방식을 배울 필요가 없다는 생각까지 했지요. 정형화된 방식에서 벗어나려면 책이든 요리든 우리가 판매하는 물건들을 살아 있게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요, ‘비잉 스페이스’(Being Space), 살아 있는 공간, 살아가는 공간. 우린 상업적 분위기가 나지 않는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자유로운 기분을 느끼고, 친구를 만난 것 같고, 초대받은 것 같은 곳. 긴장이 풀어지는 곳, 마음대로 시간 보내는 곳. 그러나 책의 세계에서는 열정적인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주소 Place du Temps Libre 1, 1200 Sint-Lambrechts-Woluwe, Belgium전화 +32 (0) 761 2600 www.cookandbook.be


각계각층 사람들이 모이는 아고라인구 100만의 브뤼셀에는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머문다. 다국적 회사도 있고 나토와 유럽연합 같은 국제기구도 있다. 쿡앤북은 이들 회사와 기관에서 일하는 세계인들이 편하게 만나는 문화적 약속공간이 되었다. 벨기에 국왕 필리프 1세와 마틸드 왕비도 찾았다. 프랑스의 사진작가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과 영화감독 클로드 를루슈, 타셴출판사 사장 베네딕트 타셴도 찾았다. 6만 종 이상의 책을 갖고 있는 쿡앤북의 레스토랑은 늘 만원사례다.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를 잡을 수 없다.


아침 8시부터 저녁 12시까지 문을 연다. 서점에 15명, 레스토랑에 45명이 일한다. 그러나 러시아워 땐 서점일과 식당일을 서로 돕게 한다. 하루 방문객이 5000명이나 된다. 2012년엔 브뤼셀에 작은 분점을 냈다. 현재 쿡앤북 파리점 개관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은 70억 원.


미국의 사회학자 레이 올덴버그는 1989년에 펴낸 『참 좋은 공간』(The Great Good Place)에서 ‘제3의 공간’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그곳은 집도 사무실도 아닌 동네 카페, 술집, 쇼핑몰, 미장원 등을 의미한다. 현대인이 머무르는 또 하나의 공간들이다. 일터와 가정에서의 근심을 잠시 잊는 곳, 이런 제3의 공간은 여러 계층의 사람이 섞이는 아고라 같은 곳인데, 쿡앤북이 바로 제3의 공간이다.


재능교육 박성훈 회장의 고향 산청에 있는 율수원(聿修園) 식당채엔 ‘국이관’(鞠二館)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단지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몸과 정신 둘을 함께 기른다는 뜻으로 『시경』에 나오는 내용이다. 여기 국(鞠)자는 기를 양(養)자와 같은 의미다. 옛사람들의 지혜다.


나는 2011년부터 파주북소리를 주관해오고 있다. 책의 소리, 책 읽는 소리의 이미지를 살려 책 읽는 사람과 책 만드는 사람, 책 쓰는 사람들이 손잡고 펼치는 지식축제, 책축제다. 정신의 세계, 인문의 세계를 우리 삶과 어떻게 통합할지를 묻고 대답하는 마당이다. 한 권의 책을 쓰고 만드는 일이란 농사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책을 만들면서부터 해오고 있는 나는 이 파주북소리와 농산물 축제를 같이 해보고 싶다. 몸의 양식에 대한 인문적·생태학적 탐구란 우리 마음을 키우는 책의 세계, 책의 철학일 터이기 때문이다. 파주북소리의 새로운 진화가 하나의 숙제로 나에게 주어진다. 쿡앤북처럼 말이다.


 


김언호한길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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