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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 강조한 음악책도 깨우지 못한 음악 감성

1968년 문교부 검정 제295호 음악교과서. ? ? ? ? ? ? ? ? ? ? ? ? ? ? ?2001년 교육인적자원부 검정 음악교과서.


내 집 피아노 의자 안에는 음악교과서 두 권이 보관 돼 있다. 음악에 관심이 많은 아내가 고교시절 음악시간의 추억이 담긴 교과서를 여태 간직해 왔고, 10년 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들의 음악교과서도 챙겨두었다. 나는 그런 것이 있는 줄도 몰랐다가 최근에야 옛날 음악교과서를 ‘발견’하고는 아득한 상념에 잠겼다.


중학생 때 음악은 가장 자신 없고 두려운 과목이었다. ‘종이건반’이라는 것이 있었다. 말 그대로 종이에 피아노 건반을 인쇄한 것이다. 열 손가락에 1부터 10까지 번호를 적어서 종이건반이 닳도록 연습을 해도 진짜 피아노에 앉으면 손가락은 길을 잃었다. 음악에 주눅이 들었는지 조(調) 바꿈은 몇 번이나 설명을 들어도 원리를 깨칠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힘 좋은 여선생의 몽둥이가 내 머리를 강타했는데, 그 시절 음악은 나에게 치욕이었다. 그런 음악치가 음악 칼럼을 쓰고 있으니, 내가 생각해도 우습다.


고등학교에 진학해 음악교과서를 받아들자 악몽이 되살아났다. 그러나 음악 선생님은 현명했다. 대입 예비고사 과목도 아닌데 영어·수학에 지친 아이들 힘들게 할 필요가 있나, 이렇게 생각한 것 같았다. 모교의 음악실은 멋진 계단식이었는데 대형 스피커를 포함한 고성능 오디오를 갖추고 있었다. 선생님은 음악시간마다 클래식 음악을 한 곡씩 들려주었다. 흑판에는 주제 악보가 미리 그려져 있었다. 내 음악적 소양은 그 때 씨가 뿌려졌다. 선생님은 해군 특수부대 출신으로 개성이 좀 지나친 제자는 삽자루로 ‘빠따’를 치기도 했지만 제자들을 깊이 사랑한 분이었다.


음악시간을 그렇게 보냈으니 교과서는 표지사진 정도만 기억난다. 피아노와 바이올린, 바순, 클라리넷, 플루트 주자들이 둘러앉아 5중주를 연주하는 모습이다. 대표 저자 이강염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발행은 국민음악연구회로 되어 있다. 1968년 문교부 검정 제 295호다. 국정이 아니고 검정이지만 당시 나라 살림에 이 교과서 외에 다른 음악교과서가 많았을 것 같지는 않다. 1968년부터 고교생이 사용했다면 현재 60대 중반 이후의 상당수 중장년은 이 교과서로 음악을 배웠을 것이다.


38년 전의 음악교과서에는 무슨 음악이 실려 있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표지를 넘긴다. 표지 안쪽에 세계음악지도가 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프랑스가 부각 된 유럽지도다. 저자들이 생각하는 ‘세계음악’이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첫 곡은 슈베르트의 리트 ‘an die Musik(음악에게)’이다. 이 칼럼의 문패와 같아 반갑다. 내가 이 문패를 고른 것은 노랫말처럼 ‘서글퍼진 어두운 때에도 즐거운 맘 솟아나게 하는’ 음악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다. 교과서의 저자도 같은 이유로 그 곡을 음악교과서 맨 앞에 실었을 것이다.


40쪽 노래의 제목이 ‘홍수’다. 지금도 반복되는 오역(誤譯)의 뿌리가 음악교과서라는 걸 확인한다. 곡은 슈베르트의 ‘겨울여행(Winterreise, D.911)’ 제6곡 ‘Wasserflut’인데 청년이 연인에게 버림받고 떠나며 눈물을 줄줄 흘리는 내용이다. 그러니 제목은 ‘넘쳐흐르는 눈물’ 정도로 의역해야 하는데 교과서는 독일어사전 첫머리에 나오는 ‘홍수’를 제목으로 달았다. 요즘도 ‘Wasserflut’를 ‘홍수’라고 쓴 책과 음반이 간혹 발견된다. 교과서의 영향은 깊고 길다.


전체 수록곡은 100곡이다. 150쪽에 불과한 책에 그렇게 많이 실었으니 교과서라기보다 악보집에 가깝다. 100곡 중 한국음악이 31곡이니까 적지는 않은데 13곡이 80번 이후의 뒷부분에 집중 배치돼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떨어진다. 악보 아래 빈 공간에는 음악이론과 음악사 등을 빽빽하게 채워 넣었다. 부실하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배열이 산만하다.


30여년 뒤에 만들어진 아들의 음악교과서는 어떨까. 우선 표지가 국악으로 바뀌었다. 운보 김기창의 그림 ‘세 악사’가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컬러 화보도 오페라 ‘명성황후’를 크게 썼다. 세계의 음악을 소개하는 사진은 중국, 포르투갈, 인도네시아, 에스파냐 등 변방들이다. 맨 앞에는 ‘애국가’를 실었다.


전체적인 체제도 짜임새가 있다. 여덟 개의 단원 아래 한국과 외국의 음악을 균형 있게 수록했다. 1단원 ‘새로운 시작’에는 경기도 민요 ‘봄이 왔네’와 멘델스존의 ‘오! 종달새’를 나란히 붙여놓았다. 실기를 강화한 것도 눈에 띈다. 특히 단소와 소금(대금보다 작은 대나무 악기)은 일정한 수준까지 습득할 수 있도록 자세히 가르치고 있다. 간단한 국악기를 일상적으로 연주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지가 드러난다. 한국음악사도 근·현대까지 5회에 걸쳐 충실하게 설명한다.


내 교과서와 비교하니 아들 것은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키우는 데 부족함이 없다. 우리음악이 서양음악과 대등한 대접을 받았다는 생각에 뿌듯하다. 그런데 궁금하다. 나는 음악교과서에 대해 아무런 기억이 없는데 아들은 어떨까. 우리 때는 없었던 내신성적이라는 것도 있으니 교과서 내용대로 열심히 공부했을까. 대답은 놀랍게도 옛날의 나와 똑같다. 교과서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단다. 대신 선생님이 프린트해서 나눠준 안치환의 ‘내가 만일’, 박학기의 ‘아름다운 세상’, 카펜터즈의 ‘Yesterday once more’같은 걸 신나게 합창했단다. 클래식이 대중가요와 팝송으로 바뀌었을 뿐 음악시간의 풍경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니, ‘올바른’ 교과서를 만들어 주어도 교실이 공감하지 않으면 표지도 넘겨보지 않는다. 아들의 교실에서는 상다리 부러지게 차린 한정식이 퇴짜를 맞았다. 돌이켜 보면 나의 음악선생님은 낡은 악보집 대신 음반이라는 대안교재로 우리들의 음악적 감성을 일깨웠다. 교과서보다 현장이다.


 


최정동 기자choij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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