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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패권국가 미얀마의 추억


아웅산 수지 여사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이 지난 8일 미얀마 총선에서 승리해 정국을 장악한 것은 역사적이다. 한반도 면적의 2.8배인 67만6578㎢의 국토에 5150만 인구의 동남아시아 대국이 평화적으로 민주화되는 것은 세계사적 사건이다.


문제는 암울한 경제다. 2014년 국제통화기금(IMF) 통계로 국내총생산(GDP) 630억 달러로 세계 71위, 1인당 GDP 1269달러로 세계 147위의 최빈국이다. 1962년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네윈(1911~2002)이 88년까지 통치하면서 내걸었던 ‘사회주의 버마의 길’이 동남아시아 최대 쌀 수출국을 이렇게 망쳤다. 마르코 폴로가 기록에 남겼을 정도로 세계적인 비취·루비 등 보석 산지이자 석유·천연가스 매장지라는 이점도 사회주의 노선의 모순을 극복하지 못했다.


‘버마식 사회주의’로 불렸던 네윈의 정책은 시대착오적 고립주의가 핵심이었다. 외부와 단절하고 자급자족 경제를 영위하면 외국에 이용당할 염려가 없다는 게 출발점이었다. 국민 대부분이 믿는 소승불교를 멋대로 해석해 ‘물질적 욕심이 없으면 마음이 행복하다’며 금욕을 강요했다. 외국인 기술자를 추방하고 극소수 불교 순례자를 제외하곤 해외 관광객조차 받지 않았다. 교역을 최소화하며 산업을 국유화한 것은 물론 과학기술 교류도 끊었다. 이 탓에 의료와 과학기술 수준은 60년대 초반에서 멈췄다. 최근 고립정책을 완화하면서 한국 기업 등이 진출하는 등 변하고는 있지만 인간개발지수(HDI)는 187개국 중 150위 수준이다. 경제와 고립주의 탈피는 수지의 최대 과제다.


군부 통치 시절 눌려 있던 소수민족 문제도 수면 위로 떠오를 전망이다. 최대 민족인 버마족이 68%를 차지하지만 태국과 접경한 동부에 몰려 사는 샨족(9%), 남부에 주로 사는 카렌족(7%), 서부 해안지대에 밀집한 라카인족(4%), 몬족(2%) 등 다양한 민족이 산다. 군부는 동화를 강요하며 소수민족을 탄압했다. 민주화 과정에서 소수민족 문제가 불거지면 나라가 혼란에 빠질 수 있다. 군사정권이 89년 바꾼 미얀마라는 국호를 버마로 돌리는 문제와 2005년 국토 중부의 정글 한복판에 건설한 인구 116만의 행정수도 네피도의 처리도 문제다.


가장 큰 문제는 1824~1948년 영국 식민지(1942-45년은 일본 점령)였다가 독립한 뒤 혼란 속에 군부독재로 이어진 굴곡의 역사를 넘어 국민적 자존심을 회복하는 일이다. 역사적으로 버마는 오랫동안 동남아 패권국가였다. 버간 왕조(1044~1287년)의 제1제국을 거쳐 따웅우 왕조(1531년~1752년)의 제2제국 때 인도차이나 반도 대부분을 차지한 대국을 건설했다. 따웅우 왕조의 5대 군주인 바인나웅(1516~1581, 재위 1550~1581) 시절엔 지금의 태국과 라오스를 모두 점령했다. 중국 남부 윈난(雲南) 지역과 인도 동부 마니푸르의 일부도 지배했다. 바다 건너 스리랑카의 보호자를 자처하기도 했다. 베트남과 캄보디아를 비롯한 주변 국가로부터 조공을 받았다. 1564년 태국을 점령하고 가져온 30여 점의 국보급 청동불상이 아직도 보존돼 있다. 그러다 제3제국인 꼰바웅 왕조(1752-1885) 시절 동쪽 태국 정복전쟁에 국력을 낭비하다 서쪽 인도를 지배하던 영국의 공격을 받아 멸망했다. 새롭게 떠오로는 이 나라가 자국 역사에서 배워야 할 점은 공존과 겸손함일 것이다.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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