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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수록 기분 좋아지는 가구가 진짜 좋은 가구죠”


이탈리아 가구 브랜드 모로소(MOROSO)의 플래그십 스토어가 지난달 13일 서울 신사동 도산공원 앞에 문을 열었다. 1952년 시작해 2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모로소는 예술성 뛰어난 디자인 덕분에 업계에선 ‘오트 쿠튀르’ 가구로 통한다. 그 중심에는 세계 3대 산업디자이너 중 하나로 꼽히는 론 아라드, 소니사의 워크맨을 디자인한 로스 러브그로브 등 우리 시대 가장 핫한 디자이너들과의 협업을 주도해온 아트 디렉터 파트리치아 모로소가 있다. 창업주의 딸이기도 한 그는 80년대 경제위기로 폐업까지 고려했던 가업을 64개국으로 수출하는 세계적인 디자인 브랜드로 성장시킨 주역이다.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에 맞춰 내한한 ‘디자인계 대모’를 중앙SUNDAY S매거진이 만났다.


 

1 니파 디시&조나산 레이븐, ‘My Beautiful Backside’

2 디자이너 그룹 프론트가 만든 동물모양 의자 시리즈 ‘anomaly’

3 패트리시아 우르퀴올라의 소파 ‘Gentry’와 디자이너 그룹 넨도의 테이블 ‘Cloud’


“집은 영감의 원천입니다. 그중에서도 거실이 가장 중요하죠. 집에 있는 시간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니까요.”


모로소의 아트 디렉터 파트리치아 모로소(60)는 집안에 있는 공간 중 거실을 가장 좋은 공간으로 꾸며야 한다고 말했다. 하루의 피곤을 풀고 내일을 준비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볼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공간’이어야 해요. 그래서 어떤 소파(또는 의자)가 놓이느냐가 정말 중요하죠. 나도 우리 집 거실에 있는 핑크색 소파에 앉아 있을 때 가장 행복하거든요.” 편안한 소파에 앉았을 때 몸이 나른해지면서 상상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기분, 그 안락함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아티스트를 포기하고 아트 디렉터가 되다 모로소는 52년 아고스티노 & 다이애나 모로소 부부가 소파와 의자를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곳으로 처음 문을 열었다. ‘뛰어난 품질’을 강조하는 성실한 기업이었지만 80년대 불어 닥친 유럽의 경기침체를 헤쳐 나가기엔 너무 올드했다. 이때 가업을 물려받으면서 브랜드의 정체성에 대변혁을 일으킨 이들이 바로 2세인 파트리치아와 오빠 로베르토다.


“저는 돈에 관해선 무지하기 때문에 오빠가 CEO를 맡는 게 낫다고 생각했죠. 사실 80대의 부모님은 여전히 오전 8시 정각이면 회사로 출근해서 오후 5시에 퇴근하시죠. 그러니 CEO라고 해도 그리 자유롭지만은 않을 거예요(웃음).”


파트리치아가 가업을 다시 살리기 위해 스스로 찾은 역할은 아트 디렉터다. 부모님이 지켜온 뛰어난 품질에 혁신적인 디자인을 입히는 길만이 낡은 이미지의 브랜드를 혁신할 수 있는 돌파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원래 그의 꿈은 아티스트였다. 대학에서 아트&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자신의 작품 활동을 하거나 갤러리에서 일하는 모습을 상상해왔다.


하지만 현재는 좋은 아티스트를 발굴하는 일을 한다. “부모님이 가업을 물려받을 걸 강요하진 않았어요. 그저 제 타고난 기질이 이 일을 하도록 이끈 거죠.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가구 만드는 걸 보고 자랐고, 공장에서 소파 천 조각들을 갖고 놀았으니까요.”

4 알프레도 허벌리, ‘Take a Line for a Walk’

5 패트리시아 우르퀴올라, ‘Biknit’ 6 도시유키 기타, ‘Saruyama’

7 론 아라드, ‘DO-DO-REZ’


30년 전부터 예술과 디자인의 만남 추구 파트리치아는 87년 본격적으로 ‘예술과 디자인의 만남’을 시작했다. 친구 마시모 로사 기니(현재 건축가로 활동 중)와 함께 ‘다이내믹 컬렉션’을 발표했다. 당시 20대였던 자신들의 혈기를 살린 톡톡 튀고 아방가르드한 디자인의 가구 덕분에 모로소는 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파트리치아는 다양한 장르의 디자이너,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을 통해 ‘예술적인 디자인 가구’를 내놓기 시작했다.


론 아라드, 패트리시아 우르퀴올라, 로스 러브그로브, 콘스탄틴 그릭, 요시오카 토쿠진, 톰 딕슨, 넨도 디자인 그룹…. 파트리치아가 꼽은 협업 디자이너들이다. 수많은 이름 중에 필립 스탁, 카림 라시드와 함께 세계 3대 산업디자이너로 꼽히는 론 아라드를 제일 먼저 꼽은 것은 그에겐 당연한 일이다. 첫 협업 파트너이자 오랜 친구이기 때문이다.


“1989년 론과 처음으로 협업한 ‘스프링 컬렉션’를 선보였죠. 당시만 해도 론은 브랜드와 상업적인 디자인 작업을 해본 적이 없었어요. 우리의 작업이 업계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후 비트라 등 다른 브랜드들과 다양한 성격의 협업을 하게 됐죠.”


99년부터 함께 일하기 시작한 스페인 출신의 패트리시아 우르퀴올라 역시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다. “모로소의 메인 디자이너라고 생각하면 된다”는 파트리치아의 표현처럼, 모로소와 오랫동안 작업을 해왔고 그 결과 권위 있는 디자인 부문의 상을 다수 수상하며 명성을 얻었다. 2009년 밀라노 디자인 페어에서 ‘올해의 디자이너’에도 선정됐다. 어쩌면 두 사람은 같은 여성이기 때문에 더 잘 통하는 건지도 모른다. 세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집을 꾸미는 일은 여성의 몫이니까. 건축을 전공한 우뤼퀴올라는 파트리치아의 집도 디자인해줬다. 그리고 모로소의 제품 카탈로그는 파트리치아의 집에서 대부분 촬영된다.

8 네덜란드 디자이너 토드 분체와 패션 디자이너 고 알렉산더 맥퀸이 함께 진행한 ‘패션과 가구 디자인’ 프로젝트 9 론 아라드와 패션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가 협업한 ‘의자에 씌우는 옷’ 프로젝트

10 디자이너 그룹 넨도, ‘cloud’ 11 로스 러브그로브, ‘Diatom’

12 패션 브랜드 디젤과 협업한 암체어

13 벤자민 허버트, ‘Talma’

14 패트리시아 우르퀴올라가 만든 의자&테이블 ‘FJord’


“수 많은 디자인에 영감 주고 싶어” ‘오트 쿠튀르’는 패션 업계 용어다. 기성복 브랜드들이 자신들만의 고유한 개성과 품질을 예술로 승화시키기 위해 수작업을 통해 따로 만들어내는 최고급 의상을 뜻한다. 때문에 한편에선 “실용성보다는 장식성에 치중한다”는 비판도 듣는다. ‘오트 쿠튀르 가구’라는 말 역시 양면성이 있다.


“아티스트 협업으로 생산되는 제품은 수많은 디자인에 영감을 주는 것이 목적이에요. 모로소의 모든 제품은 부모님이 브랜드를 처음 시작할 때와 같이 ‘편안함’과 ‘기능성’을 기본으로 합니다.”


그럼에도 파트리치아는 여전히 제품 디자인에서 ‘예술성’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왜냐하면 그는 6개월 또는 1년에 한 번씩 바뀌는 트렌드를 전혀 믿지 않기 때문이다.


“개인마다 취향이나 라이프스타일이 다르고, 집의 크기도 다 다르죠. 그런데 공통적으로는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제품을 좋아합니다. 그 가치는 ‘실용성, 그 이상’의 무언가에서 나오는데 나는 그게 예술의 힘이라고 믿어요. 역사적으로도 예술이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는 건 증명된 사실이죠. 예술은 우리가 따라가야 할 깃발(나침반)이에요.”


그에 따르면 예술가는 매우 예민해서 누구보다도 먼저 ‘무언가(영감)’를 느낀다고 했다. 영감으로 이뤄진 예술은 다른 사람에게 또 다른 영감을 준다. 그렇게 예술의 영역은 점점 커지고 있다. 현대로 갈수록 모든 장르·부문 상관없이 문화는 서로 연결되어가기 때문이다. 론 아라드가 일본의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가 만든 독특한 천을 사용해 ‘의자에 씌우는 옷’ 프로젝트를 생각해내고, 종이 오리기 형식으로 아름다운 조명을 만드는 네덜란드 디자이너 토드 분체가 고 알렉산더 맥퀸과 ‘패션과 가구 디자인’이라는 흥미로운 작업을 진행한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파트리치아가 찾아낸 예술가들이 꼭 가구를 만드는 것도 아니다. 2003년 함께 작업한 대만 출신 마이클 린의 그림으로는 패브릭을 디자인했다. 물론 그 패브릭은 소파를 덮는데 사용하긴 했지만.


“우리는 단지 유러피안 소파를 만드는 사람이 필요하진 않아요. 자신의 문화와 감정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에 관심이 있죠.”


예술가들과 협업한 제품이라고 즉각적으로 잘 팔리는 건 아니라고 했다. 시제품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새로운 것을 상상하고 힘을 얻기 때문에 예술과 디자인을 접목하는 일을 멈출 수가 없다는 것이 파트리치아의 견해다. 모로소의 가구들이 뉴욕의 현대미술관, 파리의 팔레드도쿄와 르 그랑팔레, 베니스 비엔날레 등에서 수차례 전시를 한 것은 바로 파트리치아의 이같은 믿음이 이뤄낸 결과다.


한국인 스타일 맞춰 쇼룸도 차별화 파트리치아가 새로운 협업 파트너를 찾는 데는 특정한 기준이 없다. 굳이 말한다면 그만의 독특한 안목이 전부다. 그는 새로운 디자이너와 아티스트들을 찾기 위해 일부러 시장 조사를 하지는 않는다. 세계를 여행하면서 우연한 기회에 그 사람의 작업을 보고 그 중 어떤 것이라도 자신에게 영감을 주었을 때 먼저 손을 내민다. ‘평생 파트너’라 꼽는 우르퀴올라 역시 파트리치아를 만나기 전에는 작은 스튜디오의 인턴에 불과했다. 우연히 본 그의 작업에 매력을 느낀 파트리치아가 협업을 먼저 제안했고 그 인연으로 우르퀴올라는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됐다.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디자인 듀오 도시 레비언 역시 우연히 본 그들의 졸업 작품에 흥미를 느낀 파트리치아가 런던까지 직접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미팅을 신청한 경우다.


실제로 이렇게 찾아낸 협업 아티스트들 중에는 53회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독일 작가 토비아스 레베르거를 비롯해 프란시스코, 안드레아 살라 등 모로소와의 협업 후 이름값이 한층 뛴 경우도 여럿 있다.


‘직감’에 의존한 이 단순한 선정기준이 세계가 주목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그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끝까지 믿어주는 파트리치아만의 ‘소통’ 방법 덕분이다.


“디자이너와 협업을 시작하면 최종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보통 2년 정도 걸리죠. 그동안 여러 차례 미팅을 하지만 그때마다 전 디자이너에게 어떤 요구도 하지 않습니다. 모로소의 이미지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본 적도 없어요. 우리가 미팅을 하는 이유는 딱 하나, 디자이너의 아이디어를 현실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죠.”


바른손그룹이 수입하고 운영하는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에 맞춰 내한 한 이유도 ‘간섭’이 아니라 현실적인 ‘연구’를 위해서다. 지상 1, 2층과 지하 쇼룸으로 이뤄진 서울 플래그십 스토어의 규모는 한 층의 너비가 약 90㎡다. 이마저도 작은 방으로 갈라진다. 넓고 시원한 공간을 중심으로 가구를 전시하는 유럽은 물론이고 한국의 여느 전시장과도 다른 모습이다. 이는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한국의 주거공간이 그리 크지 않다는 데 초점을 맞춘 전략이다. 한국의 중산층이 주로 사는 아파트 평수를 기준으로 거실을 가장 크게 꾸미고, 주변에 작은 방을 두어 개인 공간으로 사용하는 인테리어 스타일링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에 문을 연 서울 전시장은 아시아에서 처음 선보이는 플래그십 스토어다. 서양과는 다른 아시안 주거 공간에 대한 새로운 안목과 시도가 그 속에 있다. 파트리치아는 말했다. “연구하지 않는다면 디자인 회사가 아니에요. ●


 


 


글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모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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