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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한미약품의 대박 뒤에는 실험실의 고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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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
논설위원

한미약품(회장 임성기)의 신약기술 수출은 놀라운 일이다. 올해 들어 연속 5방의 홈런을 쳤다. 조 단위를 오가는 신약기술 수출 계약으로 연일 한국 신약개발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 특허기간이 끝난 약을 카피해서 생산이나 하던 한국 제약업계가 기술 개발로 거액의 돈을 쥐기는 사실상 처음이다. 마치 오랜 연구 투자 끝에 반도체와 모바일에서 성공을 거둬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삼성전자를 보는 듯하다.

 유감인 것은 이런 한미약품의 성공을 보는 사람들의 관심이 대부분 돈에만 쏠려 있다는 점이다. 2011년 말 6만5600원이던 한미약품 주가는 조만간 100만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들린다. 반면 이런 성공을 가져온 연구인력의 열정과 노력은 그리 조망받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사실 신약 개발의 바탕이 되는 약학·미생물학·화학 실험실은 그리 즐거운 공간은 아니다. 예를 들어 미생물 실험실에선 무슨 위험이 있는지도 모르는 세균을 페트리 접시란 이름의 유리 용기에 담아 배양한다. 세균을 온상에서 기르는 작업이다. 작업 과정에서 냄새가 그리 향기롭지 않을 뿐 아니라 지루하게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이는 항생제 효능을 실험실에서 확인하는 인비트로(in vitro) 실험을 위한 필수 작업이다. 이런 작업이 그야말로 끝없이 반복되는 게 실험이요, 연구다.

 연구자들은 나중에 나올 결과물이 보여줄 ‘용감한 신세계’를 고대하며 고독과 따분함 속에서 기다림의 시간을 보낸다. 이번 한미약품의 개가는 이런 연구자들에게 연구를 하는 의미를 새롭게 각인시켰다. 제약회사 연구실에서 근무하는 한 약학 전공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이런 순간을 위해 그 기나긴 시간을 기다려 왔노라고 말이다. 이 회사는 한미약품에 이어 홈런을 준비하는 여러 제약사 중 하나다.

 사실 한국 제약업계는 오랫동안 “신약 개발은 우리 역량 밖”이라는 생각을 해왔다. 개발비가 수십조~수백조원이 들기 때문이다. 신약 개발에 드는 엄청난 비용은 글로벌 제약사의 이름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영국에서 시작한 세계적인 다국적 제약회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은 2000년 글락소버러웰컴이 스미스클라인비첨과 합병해서 탄생했다. 글락소버러웰컴은 1995년 글락소와 버러웰컴이, 스미스클라인비첨은 89년 스미스클라인베컴그룹이 비첨 그룹과 각각 합병해서 탄생한 회사다. 합병한 원 회사를 모두 합치면 ‘글락소버러웰컴스미스클라인베컴비첨’이라는 열차 같은 이름이 되니까 작은 회사는 빼버린 것이다. 신약 개발에 워낙 돈이 많이 들다 보니 실패하거나 지연될 경우 자칫 회사가 쓰러질 수 있기 때문에 자금 마련과 위험 분산을 위해 이런 다중합병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 제약업계로선 자금도 기술도 엄두를 내기 힘들다.

 그래서 한미약품의 임 회장은 전체 신약개발 과정에서 일부 과정에만 참여하는 꾀를 냈다. 약효와 안전성이 어느 정도 검증된 물질의 분자를 새롭게 변형시켜, 효과는 높이고 부작용은 줄여 가치 있는 물질로 바꾸는 ‘약물 디자인’이 그것이다. 우리의 약점을 장점으로 뒤집어놓은 것이다.

 한미약품의 성공은 우리에게 자신감을 주고 있다. 이동호 전 범부처신약개발사업단(KDDF) 단장은 “지금까지 한국은 R&D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으며 정부도 이를 불신해 돈이 새는지에 대한 감시만 강화했을 뿐”이라며 “이제 한미약품이 R&D의 창조경제적 가치를 보여줬으니 앞으로 한국 경제계에 엄청난 변화가 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양봉민 교수는 “글로벌 제약시장은 기술혁신이 계속되는 분야라서 지속적인 성장이 예상된다”며 “한국의 보건의료 부문에서 경제적 활성화가 가장 유망한 분야가 제약산업”이라고 강조했다. 양 교수는 “지금까지 한국 제약산업은 건강보험 재정 유지를 위해 많은 고통을 감내해 왔다”며 “이제 제약산업을 미래 먹을거리로 만들기 위한 산업정책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려면 실험실에서 평생을 보내야 하는 연구자들에게 자신들이 하는 업(業)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겨줘야 한다. 한미약품의 개가는 바로 이런 일의 시작일 것이다.

채인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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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