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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서울역 고가, 스토리를 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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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
논설위원

도시 재생엔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추진 중인 서울역 고가 공원의 롤 모델은 뉴욕 하이라인 파크다. 완성품도 훌륭하지만 더 빛나는 건 과정에 담긴 스토리다. 하이라인은 1934년 개통한 화물 철길이다. 철길의 영화는 잠깐, 50년대엔 트럭에 밀려 쇠락한다. 80년엔 끝내 운행이 정지됐다. 20여 년 세월을 도심 흉물로 버려졌다. 야생식물이 멋대로 자랐고, 철길은 녹슬었다. 부동산 개발업자들은 철거를 요구했다. 99년 당시 뉴욕시장 루디 줄리아니가 이를 수락했다. 철거를 위한 주민 공청회가 열렸다. 반전은 이때 일어났다.

 동네 주민 두 젊은이가 손을 잡았다. 프리랜서 기고가 조슈아 데이비드와 창업 컨설던트 로버트 해먼드. 둘은 시민단체 ‘하이라인 친구들’을 만든다. 목표는 하이라인의 공원화. 맨몸으로 사람과 돈을 모았다. 지루한 소송과 갈등, 그것을 이겨낸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 지원 사격…. 10년 뒤인 2009년 뉴욕 맨해튼 서쪽 첼시 지역에 하이라인 공원 첫 구간이 개장했다. 그렇게 꿈은 현실이 됐다.

 지난 주말 하이라인 파크를 걸었다. 공원은 파스텔톤이었다. 34번가 초입부터 가을이 넉넉했다. 휘트니미술관까지 이어진 2.5㎞는 마천루와 들풀의 마리아주였다. 하늘길 밑으론 차와 사람이 지난다. 빌딩 숲길이 주는 경이로운 풍요. 멀리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마저 흔해 보인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어디서든 허드슨강과 만난다. 편도길은 아쉬움이 남았다. 첼시마켓에서 간단히 요기하고 다시 공원을 거슬러 걸었다(옛 비스킷 공장을 음식 백화점으로 개조한 첼시마켓 역시 도시 재생의 대표작이다). 프랑스어와 독어·중국어·일어가 섞여 들렸다. 모두 넉넉해 보였다. 왕복 여정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지난해 9월 박원순도 이곳을 걸었고 ‘7017 프로젝트’를 내놨다. ‘1970년 만들어진 서울역 고가를 2017년 하이라인 공원처럼 새롭게 만들겠다’는 의미란다. 어디 박원순뿐이랴. 1년에 찾는 외국 정치인만 줄잡아 300~400명. 정치 지도자라면 누구든지 유혹을 느낄 법하다. 내 나라, 내 도시에도 이런 공원을 짓고 싶다는 유혹 말이다. 하기야 이미 수백 명이 상담했다고 한다. 뉴욕타임스가 “베이글 이후 뉴욕의 최대 수출품”이라고 한 이유다. 하이라인 조성엔 약 150만 달러가 들었다. 현재 가치는 약 5억 달러로 추산된다. 뉴욕의 랜드마크, 세계의 관광 명소가 된 덕분이다. 완성품과 스토리가 멋지게 어울린 결과다.

 서울역 고가 공원의 길도 분명하다. 하이라인의 성공 방정식을 따라야 한다. 방정식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모두가 주인공이 돼야 한다. 엉뚱한 꿈을 꾼 두 젊은이, 그 꿈에 한푼 두푼 힘을 보탠 주민과 개발 욕심을 접은 지주, 발벗고 나선 뉴욕시장까지. 모두가 한마음이 된 그때, 하이라인은 이미 성공을 보장받고 있었다. 바로 자발적 시민운동의 힘이다. 그러니 언감생심 박원순만의 공원은 안 된다. 박원순표로 낙인 찍으려는 순간 공원은 실패다. 아무리 멋지게 만든들 그 안에 담을 스토리가 없기 때문이다. 스토리는 시민의 꿈과 땀과 눈물이 얽혀야 무르익는다.

 그러니 생각부터 바꿔야 한다. 29일 고가 폐쇄 강행, 내년 예산 232억원 배정 식의 밀어붙이기로는 안 된다. 우선 경찰청과 남대문 상인, 마포 주민부터 스스로 동참하게 해야 한다. 그게 첫 단추다. 하이라인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그러려면 둘째, 시간을 늦춰야 한다. 대선이 치러지는 2017년 완공 목표는 아무래도 의도를 의심받기 쉽다. 크게 늦춰야 한다. 최소한 자기 임기 중엔 안 된다. 아예 20년쯤 뒤로 미뤄도 좋을 것이다. 하이라인은 한 섹션을 만드는 데만 2년씩 걸렸다. 2009년 첫 구간 개장 후 지난해에야 세 번째 구간이 완성됐다. 우리도 이젠 시장이 바뀔 때마다 되풀이되는 업적 과시용, 대선 발판용 ‘삽질’을 끝낼 때가 됐다. 500년 넘은 도시지만 서울에는 두 가지가 없다. ‘천천히’와 ‘스토리’다. 서울역 고가 공원이 그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

이정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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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