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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칼럼] 아웅산 신화의 반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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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대기자

미얀마는 신화의 나라다. 신화는 권력 체제의 상징으로 작동한다. 2005년 미얀마 군부는 수도를 옮겼다. 새로운 수도 네피도는 왕조시대 신화를 내세웠다. 그 속엔 정복 왕조들의 영광이 담겨 있다. 군부는 그 시대 전사(戰士) 왕들의 거대한 동상(높이 12m)을 세웠다. 군부는 왕조 신화를 체제의 정당성 확보에 활용했다.

 옛 수도 양곤(랑군)에는 아웅산 신화가 있다. 아웅산은 미얀마 독립운동의 아버지다. 양곤에 아웅산 동상이 있다. 높이는 그의 실제 키 정도. 그의 역사적 위상은 압도적이다. 하지만 동상은 아담하다. 양곤에 아웅산 묘소도 있다. 1983년 북한 공작원들이 자행한 폭파 만행 장소다. 그의 딸 아웅산 수지는 민주화 투쟁의 상징이다. 아웅산 장군은 아웅산 수지를 떠올린다. 아웅산의 역사 신화는 군부에 부담이다. 네피도로 수도 이전 목적은 아웅산 신화와의 결별이다. 2015년 11월 총선거는 미얀마를 바꾸고 있다. 아웅산 수지의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은 압승했다. 그 승리는 아웅산 신화의 반격이다.

 미얀마의 옛 이름은 버마다. 89년에 나라 이름을 바꿨다. 랑군도 양곤이 됐다. 50대 이후 한국인에겐 버마가 익숙하다. 70년대 전후 한국과 버마의 인상 깊은 축구경기 때문이다. 그 시대 미얀마는 한국보다 앞서 나갔다. 쌀 수출 대국이며 양곤공항 규모는 아시아 최대였다. 60년대 유엔 사무총장(우탄트)을 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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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나는 아웅산의 나라로 갔다. 버마 축구에 대한 기억은 나를 자극했다. 먼저 양곤의 축구장을 찾았다. ‘보족(Bogyoke·장군) 아웅산 스타디움’-. 축구경기장은 40년대 후반에 만들어졌다. 4만 명 수용 규모였다. 그 시절 귀빈석은 금색 도금을 했다. 지금은 낡고 색이 심하게 바랬다. 그곳에서 쉐다곤 파고다가 보인다. 금으로 덮인 장대한 불탑(佛塔)이다. 그 유적지로 미얀마는 황금의 나라로 바뀐다.

 그곳 안내자는 양곤대학 강사(마웅 애)였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비슷한 시절에 미얀마(62년 3·2, 네 윈)와 한국(61년 5·16, 박정희)은 군사 쿠데타를 겪었다. 그 후 두 나라의 운명은 완전히 갈렸다. 한국 지도자는 경제 발전의 기적을 이루었다. 하지만 우리 리더십은 가난한 나라로 타락시켰다.” 군부의 철권통치는 반세기를 넘었다. 그동안 미얀마는 쇠락했다. 군부 권력자는 네 윈(26년, 1911~2002)→소 마웅(4년, 1928~97)→탄 슈웨(19년, 1933~)로 이어졌다. 네 윈의 ‘버마식 사회주의’는 고립과 자력갱생이었다. 폐쇄와 은둔은 정치 억압을 낳는다. 개혁의 열정은 사라지고 침체에 허덕인다. 북한의 경제파탄 원인도 이와 비슷하다. 군부의 국가운영 실패가 낳은 불신은 깊다. 11·8 총선에서 야당 대승은 국민의 그런 인식 덕분이다.

 아웅산 수지의 총선 성취는 절제의 승리다. 그의 삶은 파란과 영광, 성취와 시련이다. 그 역정 속에 15년의 가택 연금, 90년 총선 승리와 군부의 무효 조치, 노벨 평화상 수상이 있다. 그의 민주화 투쟁 초기는 직격과 완승의 추구였다. 2012년부터 타협의 정치인으로서 집권 의지를 단련했다. 그것은 절제와 실용으로의 변모다. 선거 후에도 절제를 강조했다. “패배한 후보가 기분 나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그 발언은 군부를 의식한 것이다. 군 최고사령관은 연방 상·하원 의원 4분의 1의 지명권이 있다. 군부는 선거 결과를 인정할 것으로 보인다. 테인 세인 대통령도 승복 자세다. 그는 민주화와 경제 개방을 추진해왔다. 테인 세인은 온건파 군 출신이다.

 아웅산 수지의 장래에는 여러 장애물이 있다. 미얀마 헌법은 외국인 배우자·자녀를 둔 사람의 대통령 출마를 금지한다. 아웅산 수지는 영국인과 결혼했다. 두 아들의 국적도 영국이다. 그의 대통령 결격 사유다. 대통령은 내년 2~3월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선출한다. 총선 승리로 NLD 출신이 대통령이 될 것이다. 아웅산 수지는 권력 의지를 표출한다. “대통령 위에 존재하는 지도자가 되겠다”고 했다. 그것은 수렴청정(垂簾聽政)식 통치 의욕이다. 하지만 권력 갈등을 낳을 수 있다.

 NLD는 헌법 개정을 요구해왔다. 개헌 논의 과정에서 군부의 영향력 축소 문제가 나올 수 있다. 그것은 민감한 문제다. 종교·소수민족(이슬람 로힝야족) 문제도 난제다. 군부의 깃발은 ‘규율 있는 민주주의(well-disciplined democracy)’다. 변혁이 혼란을 낳으면 군부는 반발할 것이다. 미얀마 군부의 속성은 예측 불가능이다.

 민주화는 산업화 기반에서 꽃을 피운다. ‘선(先) 산업화-후(後) 민주화’는 한국의 성공 모델이다. 그 모델은 후진국의 운명을 예단할 수 있는 잣대다. 미얀마는 기회의 땅이다. 외국의 투자 경쟁은 치열하다. NLD는 과제를 안았다. 경제 운용의 역량을 보여줘야 한다. 그것이 아웅산 수지의 정치 장래를 결정지을 핵심 요소다.

박보균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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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