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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53년 군부독재 종식시킨 미얀마 선거 혁명

악명 높던 미얀마 군부독재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운명이다.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자 기수인 아웅산 수지 여사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8일 실시된 총선에서 압승을 거둘 것이 확실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NLD는 이미 개표가 완료된 지역에서 90% 이상의 의석을 차지했다. 군부가 주축이 된 통합단결발전당(USDP)은 궤멸적 참패를 기록했다. 민의가 주도한 선거 혁명 앞에서 53년째 지속돼온 폭정(暴政)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셈이다. 자유와 인권이 역사의 진로임을 새삼 일깨워준 이번 선거 결과는 고난을 견디며 민주화를 위해 싸워온 수지 여사와 미얀마 국민 모두의 승리다.

 앞날을 낙관하긴 물론 아직 이르다. 25년 전인 1990년 총선 때도 NLD가 압승을 거뒀지만 군부가 선거를 무효화한 전례가 있다. 국내외 여건이 그때와 다른 데다 군부도 패배를 인정하는 분위기라는 점에서 차이는 있다. 그래도 최종 결과는 끝까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전체 의석의 4분의 1을 무조건 군부에 배분하고, 국방·내무 등 핵심 각료를 군부가 차지하도록 한 헌법 규정도 문제다. NLD가 압승하더라도 군부의 협조 없이는 원활한 국정 운영이 어렵다.

 외국 국적 자녀를 둔 사람의 대통령 출마를 금지한 헌법 조항 때문에 수지 여사가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점도 갈등 요소다. 수지 여사는 ‘대통령 위의 지도자’로서 ‘대리청정(代理聽政)’에 나설 생각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진정한 민주화를 위해서는 헌법 개정이 필요하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이번 선거로 미얀마는 민주주의로 가는 확실한 이정표를 세웠지만 민주주의 정착까지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수지 여사는 지난 27년간 민주화를 위해 싸우면서 15년을 가택연금 상태로 지냈다. 그가 없었다면 ‘미얀마의 봄’은 오기 힘들었다. 국제사회의 압박과 관여(engagement)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2009년 취임과 함께 대(對)미얀마 정책을 제재 일변도에서 관여 위주로 선회했다. 국교를 정상화하고 직접 미얀마를 방문하기도 했다. 그에 맞춰 미얀마 군부는 민주화 로드맵을 이행하고, 개혁·개방을 가속화했다. 이란·쿠바와 함께 미얀마는 오바마식 관여 정책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북한은 사실상의 왕조체제인 데다 핵 문제가 걸려 있다는 점에서 미얀마와 다르다. 그렇더라도 압박만으로는 변화가 어렵지만 관여를 병행하면 가능할 수 있다는 점은 교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미얀마는 한반도 면적의 3배가 넘는 국토와 5100만 명의 인구를 가진 자원부국이다. 연 8%대의 고속성장 중인 미얀마 경제는 이번 선거로 더욱 활기를 띨 전망이다. 선거 결과를 기다려온 외국 기업들의 투자도 본격화할 것이다. 한국 역시 22억 달러를 투자해 미얀마의 4대 투자국가로 발돋움했다. 미얀마 선거 혁명을 새로운 기회로 삼기 위한 정부와 기업들의 노력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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