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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내 안의 역사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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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
사회부문 차장

1986년 봄 교양필수 한국사 수업 시간이었다. 안경 너머로 지적인 눈빛을 발산하는 김정배 교수가 강단 위에 있었다. 지금의 국사편찬위원장 바로 그다. 행정학과 L교수, 사학과의 다른 L교수가 교문 쪽에서 최루탄 발사 소리가 들려오면 “지금 강의실에 있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던 시절이었다. 기자조선에 대한 설명이 있던 날로 기억한다. 김 교수가 굵은 목소리로 엄숙하게 말했다. 정확한 표현을 되살릴 수는 없지만 대략 이런 얘기였다. “기존 역사 해석을 식민사관, 사대주의사관으로 비난하고 이른바 민중사관, 유물사관으로 재해석하는 것은 여러분의 자유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과 자료에 대한 객관성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대학은 학문을 하는 곳이다.” 섣불리 주장만 하지 말고 공부를 좀 하라는 뜻으로 해석된 그 훈시가 썩 마음에 든 것은 아니었지만 뒤통수가 묵직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3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요즘 난생처음 고조선에 대한 책들을 읽고 있다. 국정교과서 필진으로 위촉됐던 최몽룡 교수가 인터뷰에서 위만조선, 홍산문화 등에 대한 얘기를 한 게 계기였다. 뭘 알아야 면장(面牆)을 면할 것 아닌가, 그런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이게 보통 일이 아니다. 읽을수록 혼란스럽다. 고조선의 시작은 언제인지, 기자조선은 실체가 있는 것인지, 고조선의 중심지가 어디였는지, 한사군(漢四郡)은 정말 있었던 것인지…. 확실하게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이와 관련해 학계가 두세 부류로 나뉘어 팽팽히 대립하고 있다는 점이다(아직 나는 편을 고르지 못했다). 시간적으로는 약 2000년, 공간적으론 한반도 네댓 배 크기의 땅을 놓고 벌이는 해석의 전쟁이다. 성공의 역사냐 실패의 역사냐를 놓고 다투는 현대사 문제와는 차원이 다른 스케일이다.

 교과서에는 이 혼란이 어떻게 정리돼 있는지를 살펴봤다. 여덟 종의 고교 교과서가 약속이라도 한 듯 고조선에 딱 두 쪽씩 할애했다. 단군조선의 실체에 대해서는 『삼국유사』에 관련 내용이 있다고 두루뭉술하게 기술돼 있다. 기자조선의 실재 여부는 한 교과서만 다루고 있다. 중·고교 때 달달 외웠던 낙랑·진번·현도·임둔의 한사군은 거의 사라졌다. 대개 낙랑군에 대한 설명만 조금 담았다. 한 교과서에만 사군의 이름이 모두 쓰여 있다. 본문이 아니라 각주에 있다. 논란 최소화의 노력들이 엿보인다.

 나의 역사 공부는 이제 시작이다. 한국 사회의 역사전쟁도 이제 시작이다. 교과서 논란 탓이기도, 덕분이기도 하다.

이상언 사회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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