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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근의 시시각각] 탕평 인사는 물 건너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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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근
논설위원

“우리가 남이가!”

 1992년 12월, 부산의 한 복집에서 터져나왔던 대선 구호가 다시 들리는 것 같다. 박근혜 정부의 영남 편중 인사 때문이다. 최근 대구·경북(TK) 출신 김수남 검찰총장 후보자가 지명됐다. 검찰 안팎에선 그를 변호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총장후보 중 경력·능력이 가장 앞서고 ▶TK 출신 총장은 정상명 총장 이후 10년 만이며 ▶김대중 정부 때도 호남 편중 인사가 심했다는 것이다. 검찰총장 자리만 놓고 보면 전혀 틀린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국가 요직 전체를 둘러보면 지역 편중 인사가 심각한 지경이다.

 우선 국가 의전서열 5위 가운데 황교안 국무총리(서울)를 뺀 전원이 영남 출신이다. 4대 권력기관인 국가정보원·검찰·경찰·국세청의 수장들도 이병호 국정원장(서울) 외엔 모두 TK 출신이다. 게다가 황찬현 감사원장,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까지 합치면 영남이 싹슬이한 형국이다. 바로 밑 고위직을 보면 더 심각하다. 검찰 검사장급 이상, 국세청의 국장급 이상 중 절반 가까이를 영남 출신이 차지하고 있다. 올해 경찰 경무관 승진자 중에도 절반을 넘었다. 이는 공직사회에 지역 쏠림이 고착화될 수 있다는 불길한 징조다. 후보군 자체가 한쪽으로 기울어진 상태에선 나중에 기계적으로 균형을 맞추려 해도 어렵다.

 어느 정권이나 권력을 창출한 지역 출신을 우대해 왔다. 그렇더라도 이 정부는 정도가 너무 심하다. 역대 정권 출생지 기준 4대 권력기관장의 영호남 비율을 살펴보자. 김대중 정부는 호남 출신이 9명으로 영남출신(4명)을 압도한다. 특히 2001년엔 신건 국정원장, 신승남 검찰총장, 이무영 경찰청장, 손영래 국세청장 등 4대 권력기관장을 독식했다. 하지만 검찰총장만 보면 오히려 영남 출신이 더 많다. 김영삼 정권 때 임명된 김태정 총장은 광주고를 나왔지만 출생지는 부산이다. 또 박순용·이명재 두 TK 출신을 검찰총장에 임명했다. 김대중 정부 때 호남 출신은 신승남 총장이 유일하다. 노무현 정부는 이른바 코드인사가 문제였지 영호남 출신을 고루 썼다.

 “저는 모든 공직에서 대탕평 인사를 하겠습니다.” 박 대통령은 대선 직전 탕평 인사를 공약했다. 비영남권 유권자 중 이 말을 믿고 표를 던진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탕평은커녕 대립과 분열의 길로 가고 있다. 특정 지역 출신에게 물을 먹은 타지역 사람들은 겉으론 숙여도 속으로는 칼을 품을 것이다. 대선 때마다 출신 지역 후보 진영에 내부정보를 갖다 바치는 공직자들이 생기는 이유다. 권력을 잡은 세력도 이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끼리끼리 뭉칠 수밖에 없다. 재미있는 것은 혜택 받거나 차별 받는 지역 모두 ‘차별’과 ‘소외’를 얘기한다는 것이다. 김병선 계명대 교수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3년간 영남일보와 무등일보의 기사·사설·칼럼을 분석한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에 따르면 TK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했음에도 영남일보엔 ‘역차별’ ‘홀대’란 말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사실 일부 고위공무원을 빼고는 지역편중 인사가 영남의 평범한 주민들에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적자본의 수도권 집중, 부의 편중 등 차별의 본질을 흐릴 뿐이다.

 “영호남의 인재들은 소년 때 등과했더라도 머리가 하얗게 셀 때까지 헛되이 늙어 가는 자가 십중팔구입니다.”

 영조 때 대사헌 김상노는 영호남의 인재 등용을 건의했다. 당파 간의 탕평책을 폈던 영조도 지역 인재를 쓰는 데는 인색했다. 영호남 출신은 과거에 급제해도 한직을 돌았다. 지역 차별까지 고려한 진정한 탕평책은 손자인 정조 때 실현됐다. 그는 외방별시(外方別試)나 천거를 통해 소외된 지역인재를 발탁했다.

 ‘인재겸남북 의논망피차(人材兼南北 議論忘彼此)’. 인재는 남북에서 고루 등용하고 논의를 할 때는 피차의 이해관계를 잊어야 한다는 뜻이다. 정조가 자주 인용했던 남송시대 육유(陸遊)의 시구다. 박 대통령도 마음에 새겨야 할 경구가 아닐까 싶다. KTX를 타면 전국 어디나 3시간이면 도달하는 시대, 지금 우리 정치 수준은 정조 때보다도 못한 것일까.

정철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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