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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으로 끌어들인 향수, 검은색 일상복 … 장인정신 빛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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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샤넬 넘버 5’를 주제로 한 전시실. 각각의 향을 담은 통이 번갈아 열리면서 향기를 뿜어냈다.


럭셔리 브랜드에 대해서는 창의성이란 단어를 잘 떠올리지 않는다. 창의성은 정보기술(IT)기업이나 스타트업의 전유물로 생각하기 쉽다.

샤넬의 역사 보여준 런던 전시회


하지만 100년 넘게 끊임없이 새로운 제품을 내놓고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바꿔놓았다면 혁신 기업, 창의 기업으로 불릴 만하지 않을까. 프랑스 럭셔리 기업 샤넬 이야기다.

창업주 가브리엘 샤넬(1883~1971)은 클러치백에 체인 끈을 달아 여성에게 양손의 자유를 선사했고, 남성 속옷에 사용하던 가벼운 천으로 투피스를 만들어 여성을 코르셋으로부터 해방시켰다. 샤넬 여사로부터 시작해 칼 라거펠트 샤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이어지는 창의성을 탐험하는 전시회‘마드모아젤 프리베’가 지난달 영국 런던 사치갤러리에서 개막했다. 곧 국내에도 들어올 전시회를 미리 둘러봤다.


‘마드모아젤 프리베’ 전시회는 영국 런던의 번화가인 킹스로드에 있는 사치갤러리 정문에서부터 시작한다. 정문에서 갤러리 건물에 이르는 길은 가을 빛을 띤 황금색 갈대와 들꽃으로 꾸며졌다. 올해 첼시플라워쇼에서 금상을 수상한 조경 디자이너 해리 리치와 데이비드 리치 형제가 만든 전통 영국식 정원이다. 샤넬 여사와 그의 영국인 연인이자 후원자인 아서 보이 카펠에 대한 오마주다. 샤넬은 카펠의 도움으로 1910년 파리의 패션거리인 깡봉가에 ‘샤넬 모드’라는 모자 가게를 열면서 패션계에 입문했다. 갤러리로 들어가면 샤넬 여사의 삶에서 의미 있었던 주제별로 꾸민 공간을 차례로 만나게 된다.

 
샤넬 여사가 남긴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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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감을 다루고 있는 가브리엘 샤넬 여사의 손

전시회는 샤넬 여사의 삶과 그가 남긴 유산을 보여준다. 우선 그에게 영감을 주었던 장소들이 펼쳐진다. 입구는 파리 깡봉가에 있는 샤넬 여사의 아파트를 재현했다. 샤넬은 샤넬 여사의 아파트를 그 모습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다음은 패션 부티크를 처음 연 프랑스 해안도시 도빌, 파리 방돔 광장과 이탈리아 베니스, 영국 스코틀랜드로의 여정이 이어진다. 그는 스코틀랜드에서 들여온 트위드(순모로 된 스코틀랜드산 직물)로 샤넬의 대표상품인 트위드 재킷을 탄생시켰다. 휴양지인 도빌에서는 여유있는 스타일의 카디건을 개발해 여성들도 코르셋을 벗어던지고 활동적으로 입을 수 있는 시대를 열었다.

브랜드의 상징인 ‘블랙 앤드 화이트’와 동백꽃도 전시됐다. 샤넬 여사는 1926년 여성용 이브닝 드레스인 ‘리틀 블랙 드레스’를 선보였는데, 상복에만 쓰이던 검은색을 처음으로 여성의 일상복에 적용했다. 오늘날 멋쟁이들이 숭상하는 ‘블랙’은 샤넬 여사 덕분에 우리의 일상으로 들어왔다.

‘감각의 방’에서는 샤넬에서 실제로 사용하는 각종 원단과 재료를 직접 만져볼 수 있다. 실크·트위드를 비롯한 천 30여 종류와 원단 롤 300개가 천정부터 바닥까지 걸려있어 사이사이를 걸을 수 있다. 구석의 양동이에는 샤넬의 히트 상품인 ‘2.55’ 퀼트 핸드백에 쓰는 체인 끈이 한 가득 담겨있다. 클러치백이나 짧은 손잡이가 달린 토트백만 있던 시절, 샤넬 여사는 클러치백 양끝에 긴 체인을 달아 핸드백을 만들었다. 한 손을 차지하던 핸드백이 어깨로 옮겨가면서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두 손의 자유를 얻게 됐다.

 
샤넬의 세 기둥: 오뜨꾸뛰르, 파인 주얼리, 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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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디자이너의 이름을 딴 최초의 향수인 ‘샤넬 넘버 5’

전시회는 샤넬 브랜드의 세 아이콘인 오뜨꾸뛰르(고급 맞춤복), 파인 주얼리(고가의 보석으로 만든 고급 주얼리)와 향수에 초점을 맞췄다. 1921년 출시된 향수 ‘샤넬 넘버 5’는 샤넬의 혁신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다. ‘그 어느 향수와도 비슷하지 않은, 독특한 여성의 향기가 스며 나오는 향수’를 만들어달라는 샤넬 여사의 주문에 조향사가 몇 종류의 향수를 만들어왔다.

샤넬 여사는 이 가운데 다섯 번째 향수를 골라 ‘넘버 5’로 명명했다. 독특한 향 추출 방식을 이용해 정확히 어떤 꽃이라고 정의할 수 없는, 신비로운 조합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샤넬 넘버 5는 패션 디자이너의 이름을 딴 최초의 향수가 됐다. 향수를 패션의 일부로 끌어들인 첫 시도였다. 넘버 5 전시실은 향수를 구성하는 각각의 향을 담은 초대형 향료 통이 가득해 미래적인 분위기를 냈다. 재스민·일랑일랑 등 향 이름이 쓰여있는 금색 뚜껑이 돌아가며 열리면서 드라이 아이스와 함께 향을 내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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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모아젤 프리베’ 전시회 포스터. 트위드 수트를 입은 우아한 모습의 가브리엘 샤넬 여사 이미는 칼 라거펠트 샤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직접 스케치했다.

오뜨꾸뛰르 의상은 샤넬의 장인 정신과 기술을 함축한다. 그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몸통을 훤히 밝힌 마네킹 위에 오뜨꾸뛰르 드레스 12벌을 입혀 전시했다. 의상의 자수가 너무나 정교한 나머지 옷 안과 겉이 구별되지 않았다. 라거펠트가 올 가을·겨울 컬렉션으로 디자인한 고급 드레스 16벌 위에는 샤넬 여사가 디자인한 다이아몬드 주얼리 34점이 짝을 이뤘다. 샤넬의 과거와 현재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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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 여사가 1932년 디자인한 다이아몬드 목걸이


샤넬 여사는 1932년 다이아몬드 주얼리 전시회인 ‘비주 드 디아망’을 열었는데, 값비싼 다이아몬드를 하나의 패션 아이템으로 해석했다. 유리장 안에 모셔두지 않고 마네킹에 걸쳐 전시해 화제를 모았다. 샤넬 여사가 만든 세 아이콘은 라거펠트에 의해 되살아 났다.


과거와 현재를 디지털로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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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뜨꾸뛰르 의상(고급맞춤복)을 속이 훤히 보이게 전시했다. 기술이 정교해 드레스 안과 겉이 똑같았다.

샤넬은 럭셔리 기업 가운데 디지털 기술 활용에 있어서 가장 전향적이다. 이번 전시에서도 디지털 기술이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고 메시지를 전파한다. 전시회는 손에 스마트폰을 쥐고 사는 ‘스마트폰 세대’를 겨냥했다. 디지털 전시 기법을 총동원한 3D의 향연이 펼쳐졌다. 전용 앱을 다운받은 뒤 스마트폰을 허공에 대면 3D 파노라마와 배경 설명이 펼쳐졌다. 샤넬 여사의 아파트가 재현된 갤러리 입구에서 스마트폰을 허공에 대면 화면에 파리 아파트 안이 360도로 생생하게 나타났다.

브루노 파블로브스키 샤넬 패션부문 사장은 “디지털은 고객과 연결되는 가장 힘있는 도구”라면서 “디지털 기술이 콘텐트를 지원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콘텐트와 디지털 상상력이 함께 출발했다”고 말했다.

전시회 제목인 ‘마드모아젤 프리베(Mademoiselle Priv)’는 샤넬 여사가 방해받지 않고 일하기 위해 파리에 있는 아틀리에 문에 걸어놓은 표지판에서 따왔다. 겉으로 보이는 샤넬의 화려한 이면에 숨어있는, 문 안쪽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보여주자는 취지로 선택했다. 파블로브스키 사장은 샤넬의 창의성 원천을 따라가는 여정을 전시로 기획한 데 대해 “‘샤넬’하면 화려한 패션쇼를 떠올리지 무대 뒤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데, 이젠 몇 가지 비밀을 공개해도 될 시점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샤넬 여사는 여성에게 더 많은 자유를 주기 위해 디자인을 통해 각종 제안을 하며 시대를 앞서갔다”면서 “샤넬 여사와 라거펠트의 독창성과 대담함, 에너지, 반항 정신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샤넬 여사와 라거펠트는 최고의 콤비이지만 실제로는 서로 만난 적이 없다. 라거펠트는 샤넬 여사가 세상을 떠나고 12년이 지난 1983년 샤넬에 합류했다. 둘이 생전에 만났으면 어땠을까. 상상 속 장면을 라거펠트가 단편 영화로 만들었다. 살아 돌아온 샤넬 여사 역을 맡은 배우 제랄딘 채플린이 샤넬 브랜드의 전개 방향을 놓고 라거펠트와 설전을 벌인다는 설정이다. 샤넬 여사가 “그래서, 지금 자네 뭘 하고 있는 건가”라고 다그치자 라거펠트가 응수한다. “당신이 계속해서 살아있게 해주고 있소.” 라거펠트는 트위드 재킷을 입고 보터해트를 쓴, 가냘프면서 우아한 샤넬 여사의 이미지를 교본 삼아 샤넬의 혁신성과 창의성을 계승하고 있다.


런던=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사진=샤넬, 프랑스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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