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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텔링] 산재 판정 돕는 척 … 2억 챙긴 ‘친절한 사무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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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31일 이모(58)씨는 충남 아산의 한 건설현장에서 철근파이프 연결작업을 하다 사고를 당했다. 오른쪽 검지가 잘려 인근 정형외과에 실려갔다. 다행히 해당 업체가 산업재해보험에 가입했다는 말에 마음을 놓았다. 그런데 입원 중이던 이씨는 친절했던 병원 사무장 임모(41)씨 한마디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임씨는 “사고 상황을 듣고 보니 개인 과실이 커 장해등급이 낮게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이씨는 겁이 덜컥 났다. 치료비에 생활비 걱정까지 한꺼번에 몰려 왔다.

“장해등급 잘 받도록 힘써 주겠다”
병원환자 83명에게 ‘사례금 사기’
판정기준 엄격 … 개입 여지 없어
돈 받은 뒤엔 입단속도 잊지 않아


 안절부절못하는 이씨를 보자 임씨는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며 “장해등급 판정은 병원에서 어떻게 진단을 내리고, 서류를 꾸미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다급해진 이씨는 임씨의 말을 믿었다. 얼마 후 이씨는 장해 11등급 판정을 통보받았다. 근로복지공단은 그에게 장해급여로 1606만원을 지급했다. 그러자 임씨는 “장해등급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는데 서류를 잘 꾸며 등급이 높게 나왔다”며 300만원을 수고비로 요구했다. 산재사고에 대해 무지했던 이씨는 고마운 마음에 임씨에게 선뜻 수고비를 건넸다. 그러나 실제론 고용노동부가 고시한 ‘장해판정기준’에 따라 이씨의 장해등급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산재보험처리 과정을 잘 몰랐던 이씨는 법에 따라 주어진 치료와 요양비의 상당 부분을 고스란히 임씨에게 갖다 바친 셈이 됐다.

 임씨는 2004년 이 병원에 입사해 산재보험업무를 맡았다. 그러다 2008년 총무과장으로 승진했다. 이때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산재를 당한 근로자의 약한 심리를 파고들었다. 상담을 가장해 장해급여에 대해 설명하면서 “장해등급이 나오긴 나올 텐데 높게는 나오지 않을 것 같다”거나 “장해등급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식으로 환자를 슬쩍 떠봤다. 그러면 십중팔구 “장해등급을 잘 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부탁이 돌아왔다. 임씨는 “장해진단은 주치의가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병원이 어떤 서류를 꾸미느냐에 따라 장해등급이 달라진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그러나 고용부의 ‘장해판정기준’은 부위별 증상에 대해 자세하게 나열해 놓고 있다. 이에 따라 등급이 책정된다. 환자 대부분은 고용부 고시에 따라 등급이 거의 정해진 상태라는 얘기다. 사실 임씨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임씨는 환자의 장해등급이 근로복지공단 사이트에 올라오면 이를 확인하고 마치 자신이 힘을 써서 등급이 잘 나오도록 한 것처럼 말했다. 심지어 환자의 부탁을 받고 장해 12등급 소견을 10등급으로 허위청구하기도 했다. 심사에서 12등급이 나오면 “다른 사람에 비하면 높은 수준”이라며 생색을 냈다.

 피해자들이 순순히 돈을 건네자 그는 점점 대담해졌다. 자신의 은행계좌를 불러주거나 대담하게 휴대전화로 계좌를 찍어 환자에게 보내기도 했다. 그러곤 장해보상금의 5~50%인 40만~1000만원을 사례금 명목으로 챙겼다. 2008년부터 최근까지 근로복지공단이 밝혀낸 피해자만 83명에 피해액은 2억2600만원에 달했다. 환자별로 사례금 차이가 큰 이유에 대해 임씨는 “성격이나 성향 등을 봐서 금액을 제시했다”고 공단 조사반에 털어놓았다. 사람에 따라 뒤탈이 없을 정도만큼의 금액을 제시했다는 얘기다. 돈을 받은 뒤에는 입단속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공단 관계자는 “환자들을 찾아갔을 때 하나같이 준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고 전했다. 공단이 계좌추적 결과와 임씨로부터 자백받은 사실을 공개하면 그제야 사례금을 건넨 사실을 털어놓았다.

 근로복지공단은 임씨를 사기 및 변호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수사의뢰했다. 공단 관계자는 “계좌 입출금 기록에 입금자가 제대로 적히지 않은 미상의 현금입금 기록이 많아 여죄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공단은 임씨에게 금품을 준 산재환자도 부정수급 여부를 확인해 사실로 드러나면 환수조치할 방침이다.

김기찬 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근로복지공단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재구성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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