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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국회, ‘상고법원’도 미뤄서 폐기시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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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수
사회부문 부장

과거보다 강압 수사가 줄었다지만 검찰이 수사 중인 피의자를 악의적으로 괴롭히려고 마음먹을 때 여전히 꺼내 드는 조사방식으로 ‘불러 조지기’와 ‘미뤄 조지기’가 있다. 구치소에 수감된 피의자를 조사할 게 있다며 아침 일찍 불러놓고는 실컷 기다리게 한 뒤 오후 늦게 “내일 또 나오세요”라는 말 한마디와 함께 돌려보낸다. 이걸 며칠씩 반복하면 털어놓을 게 없어도 털어놓게 된다는 게 불러 조지기다. 미뤄 조지기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사건을 종결하지도, 재판에 넘기지도 않은 채 질질 끌어 상대를 지치게 만드는 것이다.

 입법기관인 국회에서도 이 두 가지 방식이 사용된다. 불러 조지기는 지난달 국정 감사에서 재연됐다. 국감에서 추궁할 사안과 무관한 대기업 총수 등을 무더기로 증인으로 채택해 놓고 여야가 갑론을박했다. 국회의 미뤄 조지기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법안은 심사도, 상정도 하지 않은 채 자동 폐기되도록 하는 것이다.

 수사기관이나 국회에서 이런 방식이 통하는 건 조사(또는 국정감사) 대상자와 이미 견고한 갑을관계가 구축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법안 제·개정과 관련해선 최고 재판기관인 대법원도 예외가 아니다. 국회가 갑(甲)이고 대법원은 을(乙)이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지난해부터 총력을 다해 추진해온 상고법원 설치 관련 6개 법률안의 현 주소를 짚어보면 금세 알 수 있다.

 홍일표 새누리당 의원 등 국회의원 168명이 ‘법원조직법 일부개정법률안 등 6개 법률안’ 개정안을 발의한 건 지난해 12월이었다. 4개월 후 국회 법사위는 상고법원 설치안을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에 넘겼다. 이후 두어 차례 소위 안건으로 상정됐지만 논의가 겉돌며 흐지부지됐다. 심각한 건 지난달 20일 소위에 이어 지난 2일 다시 열린 소위에서도 안건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소위 위원장인 이한성 새누리당 의원 등 여야 의원 5명의 반대 입장이 확고해서인 것으로 분석됐다. 그간 대법원은 상고법원 법관들을 비법조인에서 임용하는 방안, ‘대법원 내 특별재판부 설치’ 등의 대안을 제시했지만 상황은 그대로다.

 이대로 가면 이번 19대 국회에서도 상고심 개선은 물 건너갈 가능성이 크다. 2005년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가 추진했던 ‘고등법원 상고부’ 설치 법안이 국회 임기 만료로 자동폐기된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얘기다.

 대법원의 상고법원 설치안이 ‘정답’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상고심 제도 개선은 더 이상 미뤄선 안 된다. 지난해 대법원에 접수·처리된 상고심 사건 수는 3만8000여 건. 한 명의 대법관이 3000여 건을 처리하는 셈이다. 상고심 사건의 급증은 부실한 심리와 ‘정의(Justice)의 지연’으로 귀결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특히 서민들에게 돌아간다. 소위가 법안 심사조차 하지 않는다면 직무유기에 다름 아니다.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지 연구하고, 토론하느라 눈이 충혈된 선량을 보고 싶어하는 건 나만의 바람일까.

조강수 사회부문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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